• [꿈/이야기] 김수미 “절대로 목숨을 끊어선 안돼요, 훗날 알게 될 겁니다”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9.07.23 11:39:16
  • 조회: 620

 
ㆍ연기생활 40년… 우울증 시달리는 이들을 위해 책
ㆍ시어머니 사고후 여러번 자살시도…껍데기깨고 털어놔야 살아
ㆍ근래 죽음 생각하는 청소년들 모아 청계산 올라볼 예정
ㆍDJ와는 깊은 인연…정치 모르는데 정치인 될 이유 없죠

 

연기자 김수미는 김치다. 그것도 몇해를 곰삭은 김치다. 소금, 고 춧가루, 젓갈에 버무려져 발효된 맛, 풋풋한 겉절이는 절대 낼 수 없는 깊은 맛을 낸다. 묵은김치는 김치찌개, 김치전, 볶음김치 등으로 다양하게 변신하고 삼겹살에, 그리고 고등어찜에 곁들여져 그 어느 것과도 조화를 이룬다. 하지만 아무 김치나 익었다고 제맛을 내는 것은 아니다. 좋은 배추에 적절한 양념배합, 그리고 시간의 풍화작용을 잘 이겨낸 김치라야 묵은지의 제맛을 낸다.
 
탁월한 연기력과 진솔한 글솜씨로 60세에도 꽃 같은 전성기를 구가하는 김수미씨. |사진 김영민기자

올해 환갑, 연기생활 40년을 맞은 김수미. 스물아홉에 MBC 드라마 <전원일기>의 일용어머니역을 맡아 수다스러운 시골할머니의 대명사였던 그는 얼마전엔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이사벨이란 처녀 유령역을 맡아 회춘하기도 했다. 영화 <맨발의 기봉이>의 순박한 촌부에서 <가문의 영광>의 조폭 보스에 이르기까지 그는 어머니 역할을 맡아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줘 드라마와 영화 섭외가 가장 많이 들어오는 연기자 중 하나다.

 

하지만 김장 배추에 뿌려지는 매운 고춧가루와 짠 소금만큼 그의 삶도 신산했다. 대학에 합격하고도 갑자기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고 한창 예쁜 청춘기엔 할머니역만 맡았다. 50대엔 빙의에 시달려 자살시도도 여러번했다. 그런 그가 다시 찾은 삶을 축복하며 자신의 지난날을 진솔하게 털어놓고 또 죽음의 유혹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이들을 위한 책 <얘들아, 힘들면 연락해>(샘터)를 펴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매일 일기와 글을 쓰고, 김치와 반찬 등 살림도 직접 챙긴다는 그를 만나 위기를 극복한 힘과 후배들에게 주는 이야기를 들었다.

 

-30년 전부터 할머니 역할을 맡아 이제야 60이라는 것이 오히려 신기합니다만 참 고우시네요. 나이를 의식합니까.

“제 나이를 말하다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밤샘할 때 체력이 작년, 재작년과 다른 걸 보면 나이든 게 확실한 것 같고…. 나이드니 감동과 감탄이 줄어들더군요. 꽃만 봐도 감격해 탄성을 지르고 노래만 들어도 금방 눈물이 났는데 감각이 무뎌져요. 그래서 감성을 살리려고 책도 읽고 여행도 다니고 합니다. 그리고 전 나이 순서대로 살아온 게 아니라 거꾸로 살았잖아요. 겨우 스물아홉에 일용어머니 역할을 했으니 제대로 된 청춘을 못느끼고 살아서 좀 억울했죠. 그런데 오히려 최근엔 뮤직비디오에서 20대 가수 이루랑 키스신도 해봤고 <안녕! 프란체스카> 이후엔 청소년들도 저보고 ‘수미언니’ ‘수미누나’라고 불러서 더 젊어진 것 같아요.”

 

-언젠가 동네 목욕탕에 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톱스타인데 목욕탕 때밀이 아줌마들과 함께 구석방에서 식사를 하더군요. 그분들께 물어 보니 수시로 반찬을 싸와서 같이 밥을 먹는다고 해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 정치인이나 재벌회장들과도 친분이 깊은데 그토록 다양한 분들과 소통하는 비결이 뭡니까.

“전 저와 필(feel)이 맞다고 느끼면 다 통해요. 필이 꽂히면 목숨바쳐도 아깝지 않고 이익을 따지지 않고 누구와도 친해집니다. 때밀이 친구도 그래요. 목욕탕에서 반찬해 먹기 힘들 것같아 우리집 반찬갖고 가서 같이 먹으니 제게 딸기도 갈아주고 보디로션도 잘 발라줘요. 제가 꽃을 좋아하는데 언젠가 때밀이 미스리가 ‘쉬는 날 화개장터에 놀러갔다 왔는데 꽃보고 미쳐 죽는 줄 알았어요’란 말에 필이 통해 친구가 됐어요. 쉬는 날에 꽃구경도 같이 가고 조용필 공연도 데리고 가고…. 저는 직업이나 재산보고 사귀질 않아요. 요즘 매일 가는 로데오하우스란 식당 주인도 부산에서 바자 행사할 때 우연히 만난 동생이에요. 개를 좋아하고 옷을 좋아하는 취향이 맞아 정이 들어서 지금껏 우정을 나눕니다.”

 

-유독 애향심이 큰 것 같아요. 전라도음식에 관한 요리책도 쓰시고 책이나 영화에서도 수시로 걸쭉하고 징한 전라도 욕을 퍼부으시고…. 또 쌍방울 등 전라도 기업을 살리는 일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 선거운동에도 앞장섰는데 ‘전라도의 힘’이 뭡니까.

“전라도는 제 고향이고 곧 부모님이에요. 제 생명이죠. 제가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연구를 해봤는데 과거에 선비들이 죄지으면 주로 전라도로 유배를 왔잖습니까. 머리는 좋은데 임금이나 상사에게 입바른 소리를 하다 쫓겨온 분들이 많죠. 전라도 사람들이 재능은 뛰어난데 공장 등 일자리도 없고 타지에선 배척받으니 한이 많았을 겁니다. 자기 일보다 남의 일에 더 나서서 자기 일처럼 돕는 것도 특징이죠. 무엇보다 풍요로운 땅에서 나온 온갖 식자재로 만든 전라도 음식은 세계 최고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위해 선거운동도 열심히 한 후에 정치권의 유혹도 컸다면서요.

“김 전 대통령과는 그전부터 인연이 있어요. 막상 그분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니 우리집에 별별 사람들이 다 찾아오더군요. 돈 싸들고 오고, 인사청탁도 하고요. 또 국회의원을 하라고 강권하는 이들이 많아서 청탁은 다 거절하고 저 역시 머리를 삭발하고 주변 사람들과 인연을 끊었죠. 정치를 모르는 데 정치인이 될 이유가 없고, 대통령이 되기까지 도왔으면 그뿐이고 그 후엔 물러나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어요. 장관 등 정치인 청문회를 보면 꼬치꼬치 캐물으며 범인 취급하던데 저같으면 ‘나 더러워서 안해!’ 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 거예요. 유인촌 장관과도 <전원일기> 때부터 참 친했는데 장관이 된 후엔 잘 안봐요.”

 

-김혜자씨는 글을 통해 김수미씨의 훌륭한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알려줬습니다.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자선활동을 하는 김혜자씨가 아프리카에서 납치되면 대신 인질로 포로교환하자고 할 만큼 우정이 깊은데요.

“제 삶을 30년째 지켜봐주는 분이 혜자언니예요. 드라마에서 아무리 천사 같은 모습을 보여도 그 언니의 진짜 모습은 따라갈 수 없어요. 언젠가 남대문시장에서 언니를 만났는데 크리스마스 무렵이라 고아원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사서 낑낑거리고 있더군요. 평소에 정말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는데 아이들 생각해서 그 번잡한 시장에 가는 분이 그분이에요.”

 

-김수미씨께도 천사역할을 해주나요.

“그럼요. 제가 빙의로 고생하다 천신만고 끝에 병세가 나아져서 다시 재기할 무렵, 저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달라져 있었어요. 모든 가족이 손을 놓고 틈만 나면 죽을 생각뿐인 제게만 매달렸던 터라 금전적인 문제도 심각했답니다. 은행은 이제 돈 갚으라고 난리고, 작가 김정수 선생님과 고두심·나문희 언니에게 몇백만원씩 꾸어 급한 일들을 해결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혜자언니가 ‘너 왜 나한테는 얘기 안 하니? 추접스럽게 몇백만원씩 꾸지 말고, 필요한 액수가 얼마나 되니?’라고 하더군요. 그리곤 화장품 케이스에서 통장을 꺼내시며 ‘이게 내 전 재산이야. 나는 돈 쓸일 없어. 다음달에 아프리카에 가려고 했는데, 아프리카가 여기 있네. 다 찾아서 해결해. 그리고 갚지 마. 혹시 돈이 넘쳐 나면 그때 주든가’ 하셨어요. 전 염치없이 통장 잔고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털어 은행 문제를 해결했죠. 언니와 제 입장이 바뀌었다면 전 그렇게 못해요. 몇년 후에 돈을 갚으며 이자를 드리겠다고 하니까 특유의 아이 같은 목소리로 ‘이씨이~’라고 해요. 배울 걸 배우셔야지, 저한테 욕하는 걸 배우면 어쩌려고….”

 

-2003년에 <그해 봄 나는 중이 되고 싶었다>란 책에서도 소개했지만 ‘빙의’를 겪은 이야기를 들려 주세요.

“12년 전에 시어머니가 제 자동차의 급발진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평소 저를 너무 아껴주던 분이셨는데 너무 상심이 컸는지 그후에 우울증에 시달렸어요. 새벽이면 귀가 아플 정도로 가슴이 쿵쾅거리고 마음이 그네타듯 흔들려 빈속에 소주를 두병씩 들이켜야 겨우 취해 잠이 들었습니다. 한달 간격으로 입퇴원을 반복하고 유명하다는 신경정신과에 다녀도 점점 악화되더군요. 그 무렵 <전원일기>는 보름에 한번 녹화인데 극중 대사없이 눕거나 앉아있는 것으로 처리했죠. 끝내는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들더군요. 눈에 넣어도 안아픈 아들 딸이 아직 미혼이고 엄마가 누구인지도 아는데 제가 자살하면 아이들의 장래가 어떨지는 눈곱만큼도 생각이 안들고 그저 죽고만 싶었어요. 제 병명은 의학적으로는 ‘포제션’이라고 한답니다. 영혼이나 신격 등 어떤 보이지 않는 강력한 힘의 영향으로 새로운 인격이 나타나 전혀 다른 사람의 행동을 하게 되고 가만 두면 폐인이 되거나 자살에 이른대요. 수면제를 너무 먹어 혀가 말리니 약을 주지 않아 잠도 못자고 누워만 지내니 체중이 38㎏까지 줄더군요. 그런데 기치료사와 묘심화 스님이 퇴마의식을 해준 후에 병이 나았어요. 저는 모태신앙인데 저도 궁금해요. 왜 하나님께서 기치료사와 스님을 통해 저를 치료해주셨는지….”

 

-빙의는 물론 다른 병도 환자만큼 가족들이 겪는 고통도 클 텐데요. 가족들이 지극정성으로 돌봐주셨더군요.

“그 과정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 특히 남편의 사랑을 확인했어요. 사실 결혼생활을 35년 했는데 아프기 전까진 남편도 시들하고 그냥 혼자 편하게 살았으면 싶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수면제를 너무 먹어 입 주변 근육이 마비돼 밥을 먹을 때 음식이 줄줄 새는데도 남편은 얼굴색 하나 안 붉히고 다 닦아주고 목욕은커녕 머리도 안감아 온몸에 냄새가 나는데도 절 안아서 뉘어줬어요. 새삼 결국 남편밖에 없다는 걸 알겠더군요. 물론 저도 아무리 바빠도 김치며 반찬은 직접 만들고 남편이 밥먹을 때는 곁에 앉아서 밥동무해주고 살림도 잘하니까 제게도 잘해주는 거겠지만….”

 

-요즘은 우울증으로 보통사람은 물론 최진실씨 등 톱스타들도 자살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절대로, 절대로 목숨을 끊어서는 안 됩니다. 안 될 이유를 훗날 마법처럼 기적처럼 알게 될 겁니다. 일단 본인이 우울증이라고 생각되면 먼저 치료해야 해요. 선진국은 대통령도 톱스타도 수시로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해요. 그래야 가족에게도 못 털어 놓는 속마음을 얘기할 수 있고 털어놓고 나면 위로가 됩니다. 대개 우울증 환자들은 주위 사람들이나 가족들 앞에서는 만사를 잘 처리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해요. 그런 껍질을 깨고 나와야해요. 친구든 정신과 의사에게든 가서 ‘죽고 싶다’ ‘살기 싫다’고 털어놓고 약을 받아 와야해요. 그리고 잠을 좀 잔 후에 등산을 하거나 자연 속에서 자신을 바라봐야 합니다. 전 곧 자살을 생각하거나 마음이 나약해진 젊은이들을 모집해서 같이 청계산에 오르고 그들에게 삶의 용기를 주는 행사를 가질 예정입니다.”

 

-김혜자씨 등 주변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신인 때부터 하늘 같은(?) 제작진들에게도 화내고 심지어 욕도 했다던데 어떻게 지금까지 버텼습니까. 장자연 사건을 보면 단역 하나 맡으려 해도 로비를 하고 술자리에도 나가야한다는데요.

“만약 제가 고분고분 말을 잘 들었다면 이렇게 성격배우가 아니라 멜로물의 주인공이 됐을 거예요. 젊을 땐 나탈리 우드 닮았다고 할 만큼 소문난 미모였는데도 서른이 되기 전에 맡은 역이 일용어머니나, 화순이란 하녀역이니…. PD가 차 마시자, 밥 먹자고 하는 것이 배역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는 말인데 눈치없는 저는 ‘차 마셨어요‘ ‘동기들이랑 칼국수 먹으러 가요’라고 말하고, 화 나면 전라도 특유의 욕설을 내뱉었으니…. 그래도 제 재능과 성격을 인정해준 분들 덕분에 이 자리까지 왔죠. 후배들에게 주고 싶은 조언은 빨리 스타가 되려는 조급함을 버리고 죽을 때까지 연기할 것이란 천직의식을 가지면 언젠가 기회가 온다는 겁니다. 연예인은 기다림의 직업입니다. 타고난 재능도 중요하지만 꾸준히 실력을 기르면서 때가 오기를 기다리면 꿈을 이룰 겁니다.”

 

-후배들은 촬영장에 가져 오고 수시로 집에도 보내주는 맛있는 김치와 반찬에도 감동하던데요.

“한번 김장하면 배추 200포기, 무 300개는 기본이고 수시로 갓김치, 열무김치, 오이지를 담그죠. 우리집엔 김치냉장고만 여섯개예요. 맛있는 것 나눠서 사람들이 즐겁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이 행복입니다. 참, 우리 동네 산다고 했죠. 주소 좀 알려줘요. 묵은지랑 우거지 볶은 거 보내줄게요.”


[김수미는 누구인가]촌부에서 조폭보스까지 탁월한 연기… 소설 등 책 8권 낸 작가이기도

1949년 전라도 군산에서 태어났다. 막내딸을 끔찍하게 아끼는 아버지 덕분에 중학때 서울로 유학, 1970년 MBC 탤런트 공채 3기로 입사했다. 드라마 <전원일기>를 비롯, 영화 <가문의 위기> <맨발의 기봉이> <마파도> 등에 출연한 탁월한 연기자. 1987년 첫 에세이집 <그리운 것은 말하지 않겠다>를 비롯해 소설과 요리책까지 8권의 책을 펴낸 작가이기도 하다. 김혜자씨는 “수미는 세상에 겁이 없다. 불의를 보면 정의의 편에 서서 쳐부술 것처럼 화를 내지만 대부분 수미가 편드는 쪽이 옳다”고 하고 이외수씨는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인데도 우리 편을 들어줄 것 같다”며 그의 의협심을 칭찬한다. 꽃을 좋아해 온 집안에 꽃장식을 하고 명함에도 나팔꽃 사진을 담은 그는 묘비명 역시 ‘나팔꽃을 사랑한 여자, 잠들다’로 정했단다.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