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아/교육] “국제 소통형 인재 키우려면 쓰기훈련부터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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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9.07.16 09:5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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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총장출신 교장’ 2002년 부임 3년간 인생상담 등 교육혁명
ㆍ교과서 자체제작 등 공교육 새 실험 … 명지고 박성수 교장

 

공교육이 제자리를 잃은 지 오래고 사교육 위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학교는 아름다운 사제 간의 정이 넘치고 인성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학원 수업에 지친 학생들이 잠자는 곳, 졸업장을 따는 곳으로 전락했다. 선생님들의 위상도 마찬가지. 스승이나 선생님이란 말보다 ‘교원’으로 불리며 학생들에게 교훈을 주기보다 좋은 대학을 많이 보내느냐로 실력을 평가받는다. 하지만 선생님들의 노력으로 새로운 교재를 만들고, 수능 성적만이 아니라 사회생활에 필요한 자질을 개발해 학생들과 학부모로부터 인정을 받는 학교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자체적으로 개발한 교과서와 글쓰기 수업, 직업 교육 등으로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는 박성수 명지고 교장을 만나 우리 시대의 공교육이 갈 길을 들었다.


-명지고는 ‘명지 교과서’로 불리는 새로운 교과서로 유명해졌습니다. 교과서를 새로 만들게 된 동기가 뭡니까.

“2002년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3 담임 수학선생님이 수업 중 사망했습니다. 순직 처리과정이 너무 눈물겹더군요. 몸이 아팠다는데 지난 4년간 건강검진 한 번 안 받았답니다. 다른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아프면 휴직해라, 월급도 그대로 주겠다고 해도 ‘병원에 갈 시간에 아이들에게 한 자라도 더 가르쳐야 한다. 그게 선생이 할 일이다’라고 하더군요. 일선 선생님들은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데 왜 학생들은 수업에 열중하지 못하고 과외다, 학원이다 사교육을 받는 걸까 답답했습니다. 살펴보니 문제는 교과서였어요. 우리 교과서가 일본, 중국과 비슷한데 지나치게 핵심적 내용만 간추려서 참고서 없이는 이해가 어렵고, 참고서를 익히자니 학원이나 과외를 따로 받을 수밖에 없죠.

 

선생님들 역시 한정된 시간에 교과서에 담긴 내용을 다 가르치려면 무조건 주입식 교육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보통의 독해력을 가진 학생들이 교과서만 읽어도 그 과목이 이해가 되는 교과서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죠. 선생님들께 그런 제안을 하니 ‘뜻은 좋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며 회의적 반응이었어요. 일단 그 자료를 모으는 것도 너무 힘들고, 교과서 전문출판사에서도 한 권을 만드는 데 수억원의 비용이 든다. 그런데 수십과목의 교과서를 우리 학교가 어떻게 만드느냐는 겁니다. 일단 학교법인을 찾아가 취지를 설명하고 선생님들이 방과후에 만드니 식사비 정도라도 보조해달라고 해서 승낙을 받았습니다.”

 

-참고서가 필요 없는 교과서를 만들기가 쉽진 않았을 텐데요.

“선생님들의 땀과 열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2003년부터 선생님들의 교재 개발을 돕기 위해 국내 도서 1000권과 외국 도서 350여권 등 각종 참고서적을 사들였고, 1층에 따로 교재개발실을 마련했죠. 10여개 과목(국어 영어 수학 국사 지리 등) 교사 80여명으로 교재개발팀을 꾸려 2년여간 작업한 끝에 2005년 1학년 학생용 교재를 완성했습니다. 참고서가 필요 없는 교과서인 만큼 기존 교과서 내용뿐 아니라 이해에 필요한 배경지식과 심화학습 자료까지 학습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이 망라됐습니다. 국어의 경우엔 학생들이 수준별로 학습할 수 있도록 ‘준비-토대-심화 학습’ 3단계로 나눠 만들었고 교과서에 나온 작품 이외에 다양한 작품이 수록돼 폭넓은 학습이 가능합니다.

 

사회와 윤리 등에는 기존 교과서 내용 이외에 다양한 시사자료를 넣어 이해를 돕게 했습니다. 어려운 개념이나 모호한 용어는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 학생들이 일일이 사전을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을 줄였고요.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수학은 단원마다 앞부분에 실생활과 관련된 얘기를 수록해 수학에 대한 두려움을 없앴죠. 사실 미분, 적분을 무조건 배우고 공식만 암기했지 그걸 배워 어디에 쓰이는지는 모르지 않습니까. 수학과 야스포츠, 수학과 음식 등의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 자연 친근하게 되고 수학에 대한 공포심도 줄이도록 했습니다. 문제는 보충 자료를 충실히 넣자는 선생님들의 욕심 덕분에 교과서가 엄청나게 두꺼워졌어요. 그래서 4등분해서 수업을 합니다.”

 

-새로운 교과서는 발상은 참 이상적이긴 한데 결과도 만족스러웠습니까.

“모든 학생에게 강요하진 않았습니다. 2005년, 그해 신입생 중 희망자 170명을 대상으로 ‘과제반’을 꾸려 수업에 들어갔죠. 왜 과제반이라고 이름을 붙였나 하면 수업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교과서는 너무 분량이 많아 학생들의 철저한 예습과 복습을 바탕으로 진행돼야 해서 선생님들이 수업 일주일 전 수업 내용과 관련된 과제를 내주고 학생들은 교재를 예습하기 때문입니다. 수업 시간에는 학생들이 해온 과제 내용을 확인하고 중간중간 선생님의 부연 설명을 들으며 확실한 개념을 잡아갑니다.

 

교과서에 많은 내용을 담다보니 설명 시간이 줄어 토론식 수업도 가능하게 됐어요. 자연 학생들의 수업 집중도가 높아지고,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호응해주니 더 신명나게 지도를 하게 됐다고 하더군요. 4년간 꾸준히 하다보니 과외 학생 20% 정도 감소되었고 과목별 평균이 10점 상승했어요. 어떤 반은 18점이나 상승해서 다들 놀랐죠. 그리고 학생들에게도 수업 중에 ‘이 부분은 시험에 나온다’ 등의 전략적 미끼도 던지고, 지난 5년간 우리 학교에서 출제된 시험문제들을 문제집으로 만들어 나눠줬습니다. 학원에서 가르치는 게 결국 시험문제풀이인데 그걸 학교에서 해준 거죠.”

 

-반대나 부작용은 없었습니까.

“처음엔 학부모들의 항의나 원성이 많았습니다. 학원에서 늦게 집에 온 아이가 자야 하는데 학교 숙제해야 한다며 새벽까지 공부하니 안쓰럽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나 봅니다. ‘이렇게 학교 숙제를 많이 내주면 언제 학원에 가느냐?’고 하기에 ‘학원에 보내지 말라고 숙제를 내준 겁니다’라고 답했습니다. 학원들도 만만치 않았어요. 이상한 교장이 와서 명지고를 망친다면서 그런 실험적 수업은 곧 실패로 돌아갈 거라고 음해성 소문을 내기도 했지요. 하지만 학생 전체가 과제반이나 영어로 수업하는 영어반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고 학년 초에 아이들이 스스로 자원해서 반을 운영합니다. 그런데 학원에 안 다녀도 교과서 수업만 충실히 듣고 예습과 복습을 잘한 학생들이 성적이 좋아지니까 다른 학생들의 참여도 늘어난 겁니다. 물론 따로 교과서를 구입해야 하니까 비용은 들지만 그저 프린트값 정도만 받고 있어요.”

 

-공교육을 살리기 위한 방법이라지만 너무 수업이나 성적에만 치중하는 건 아닙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명지 교과서는 우리가 시도하는 교육 방법의 하나일 뿐이지 주체는 아닙니다. 저는 교장으로 부임하면서 무체벌·무촌지·무탈락의 ‘3무(無)’를 선생님들에게 주문했습니다. 제자를 때리지 말고, 학부모에게 돈 받지 말고, 한 명의 학생도 중도에 포기하지 말자고 당부했지요. 학생을 때리는 선생님이 눈에 띄면 교무회의 때 ‘때려서 가르치는 게 선생이면 아무나 선생 하겠네’라며 주의를 환기했더니 3년이 지나자 체벌은 사라졌습니다. ‘무탈락’을 위한 비책은 3년에 걸친 ‘인생 상담 프로젝트’입니다.

 

우리 학교에 배정받은 학생들은 입학 전에 먼저 내주는 숙제가 있어요. 관심 있는 직업과 학과 200개씩을 적어내는 겁니다. 그 뒤 분기별로 정규수업 한 시간씩을 할애해 ‘어떤 학과에 진학해 어떤 직업을 가질지’ 고민하게 해요. 3학년이 되면 희망사항은 5개로 줄어들고 자신이 꿈꾸는 직업에 집중된 전공을 선택하도록 돕습니다. 저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대학생들의 40%가 전공을 잘못 선택했다고 후회하고 재수를 하거나 편입을 하는 등 엄청난 시간과 돈을 낭비합니다. 꾹 참았던 학생들도 결국엔 엉뚱한 직장을 찾아 평생 후회합니다. 학생들에게 우리 학교에 들어와 뭐가 제일 자랑스러우냐고 물으면 이 과정이 제일 유익하고 좋다고 합니다.”

 

-지난 7년간 제일 자랑할 만한 업적은 뭡니까.

“학생들에게 글쓰기 교육을 한 거예요. 그동안은 그저 서울대에 많이 보내는 국내 경쟁시대라면 글로벌시대엔 국제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국제무대에서 성공할 인재를 키우는 데 가장 필요한 경쟁력은 첫번째는 의사소통 능력입니다. 그것도 영어로 자신과 일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영문과 전공 학생조차 2의 5승을 영어로 뭐냐고 하면 잘 몰라요. 영어로 수학을 말해보지 않아서죠. 과학도들이 연구는 잘해도 과학적 글쓰기가 안 되면 세계적인 과학저널에 논문이 수록되지 않아요.

 

입시에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누굴 만나도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는 진정한 선진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쓰기교육만 잘해도 국제적 위상이 높아져요. 전공이 무엇이건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글로 표현할 줄 알게 한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논술이나 신문기사 쓰는 것이 글쓰기는 아니거든요. 미국의 글쓰기 책 등을 참고해서 분야별로 글쓰는 방법에 관한 책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훈련을 받으면 대학 논술은 물론 취직할 때 자기소개서 쓰기, 그리고 정책제안서 등까지 잘 쓰는 유능한 리더가 많이 배출될 겁니다.”

 

-학생교육도 중요하지만 요즘은 문제학생보다 문제학부모들이 더 많지 않습니까.

“아마도 학부모들이 외동아들, 딸에 대한 지나친 사랑과 학벌사회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너무 대학 입시에만 신경을 쓰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학부모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뇌공작’을 합니다. 아이들이 공부 잘해서 명문대학에 합격하는 것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회생활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가정생활을 충실히 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서울대학교에 간다고 다 성공하거나 행복한 것은 아니니 너무 아이들을 밀어붙이지 말라고 하죠. 제발 아이들을 저녁에 푹 재우라고 하면 부모들이 어이없어 하더니 이젠 학교수업만 충실히 해도 성적이 오르니 호응이 좋습니다.”

 

-너무 늦은 질문입니다만 대학 총장을 하다 고교 교장을 자원하게 된 동기가 뭡니까.

“제 전공이 교육학이고 ‘청소년대화의 광장’(현 한국청소년상담원)의 원장으로 일하면서 청소년 문제와 교육에 관심이 많았어요. 청소년기란 사람이 죽을 때와 더불어 가장 중요하고 가장 급박하게 돌아가는 때인데 그 격랑의 시기에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가가 정말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고등학교 교육을 맡아서 대학 입시만이 아니라 제대로 된 삶을 준비하는 대안 교육을 시도해보고 싶어서 명지학원의 권유를 받아들였습니다. 아직은 그저 씨뿌리는 단계죠. 지금 우리 사회는 새로운 것을 창출할 수 있는 지식과 인재가 필요합니다. 그런 학생들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직 해야 될 과제가 너무 많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의 중요성은 누구나 인식하지만 여전히 대학 입시 성적에 따라 명문고로 여겨집니다. 대학입시제도의 문제점을 비판하시던데 가장 큰 문제점은 뭡니까.

“우리 수학능력 시험은 ‘눈금 없는 막자’예요. 아무런 기준도 없고 변별력도 없죠. 지난해에 비해 어떤 수준인가를 파악하거나 학생들의 학습능력이 전혀 반영되지 못합니다. 지난해보다 수능 문제가 쉽다, 어렵다고들 하지만 제대로 맞은 적이 있나요? 그래서 미국의 SAT처럼 표준화검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표준화검사란 눈금이 정교해서 여러번 검사해도 큰 차이가 없고 학생들마다 학력의 비교가 가능하거든요. 그런 표준화된 시험을 1, 2년에 걸쳐 수시로 봐서 자신이 가장 좋은 컨디션에서 본 가장 좋은 점수를 선택해야 아이들이 시험의 노예가 되지 않고 고등학생 시절에 우정도 나누고, 책도 읽고 장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요. 초등학교부터 12년 동안 공부한 것을 하루에 한 번 시험 쳐 인생을 결정짓는 것은 너무 부당합니다. 우리 학생들, 여러 가지도 너무 불쌍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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