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무대에서 만난 사람]발레리노 김용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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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9.07.06 15:22:46
  • 조회: 458

 
ㆍ9년만의 귀환 “심장이 두근”
발레리노 김용걸(36)이 돌아온다. 그는 27세의 ‘늦은’ 나이에 파리국립오페라발레단에 동양인 최초의 남자 무용수로 입단, 최고의 발레리노인 ‘쉬제’ 자리까지 올랐던 ‘연습 벌레’였다. 이제 ‘김용걸’이라는 석자는 한국의 발레리노를 상징하는 하나의 표상으로까지 자리잡았다. 그가 9년간의 파리 생활을 접고 완전히 귀국한다. 이달 11~12일 LG아트센터에서 ‘김용걸과 친구들’로 귀국 인사를 치른 후, 9월에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로 부임해 지도자의 길을 걷는다. 같은 달 국립발레단의 ‘차이코프스키’ 무대에도 오를 계획이다.

 

귀국에 앞서 호주 브리즈번에서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시즌 마지막 투어를 펼치고 있는 그와 e메일로 먼저 만났다. 그는 진솔한 어투로 A4 용지 다섯장에 이르는 장문의 답변을 보내왔다. 지면상 전문을 소개하지 못해 아쉽다.

 

-파리에서 어렵게 올라간 최고의 자리를 접고 귀국하게 된 이유는.

“무용수는 언젠가 무대를 내려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몇해 전부터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고, 그래도 무대에서 다른 무용수들과 호흡할 수 있을 때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마침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임용 제안이 왔습니다. 2000년 파리로 떠나올 때 제 심장이 두근거렸던 것처럼 이번에도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파리를 떠나오는 심경은 어떻습니까.

“누가 그러더군요. 마지막까지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라고. 그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파리 무용수들은 7~8세에 오페라발레학교에 입학해 6년간 훈련을 받습니다. 그중에서 엄격한 오디션을 거친 2~3명만이 180명의 프랑스 국적 단원들로 이뤄진 파리국립오페라발레단에 입단합니다. 저는 그들을 상대로 싸움을 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서야 그 싸움이 무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자신과의 싸움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파리는 매혹적인 도시입니다. 떠나는 것이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요. 10년 가까이 이뤄놓은 모든 게 파리에 있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가더라도 한국 발레를 위해서라도 자주 와야 할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9년 세월에서 가장 기억나는 것은.

“부상을 당했을 때였습니다. 저는 그 부상을 빨리 딛고 일어서려고 몸을 혹사했습니다. 2~3개월이면 회복될 수 있었던 부상이었는데, 제 조바심 탓에 회복이 늦어져 1년이나 슬럼프를 겪었습니다. 현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무용수는 자신의 예술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부상’이라는 친구가 가끔 필요합니다. 저는 연습이라는 단어보다 부상이라는 단어가 더 친숙합니다.”

 

-지금 발레리노 김용걸의 ‘몸’은 어떻습니까.

“물론 20대 초·중반 때와는 비교하기 힘듭니다. 그때와는 다른 느낌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제는 몸을 움직이는 게 근육이 아니라 머리 속의 의식과 마음의 각오 같은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세상에서 제가 가장 아끼는 아들을 하나 키우는 마음으로 몸을 관리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제 몸이 내는 소리와 반응에 귀기울이는 겁니다. 그래야 몸도 마음이 하자는 대로 잘 따라와 주는 것 같습니다.”

 

-유럽에서 바라본 프랑스와 유럽 발레의 현황은.

“큰 예산이 소요되는 대작보다는 장르 파괴와 새로운 아이디어, 실험적 성격을 띤 소품들이 많이 공연됩니다. 유럽인들은 그것을 시대의 흐름으로 생각하며 즐기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한마디로 발레를 일상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경기 상황이 좋지 않으면 그 상황을 고민하고 걱정하기보다는 그저 잊어버리기 위해 공연장을 더 찾는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부럽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발레리나와 호흡을 맞췄는데, 가장 잘 맞는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많은 국내외 여성들과 호흡을 맞췄습니다만, 아무래도 1998년 파리국제발레콩쿠르에서 함께 입상했던 김지영씨가 아닐까 합니다. 2000년 이후 함께 공연할 기회가 없었다가 2004년 국립발레단의 ‘해적’으로 5년 만에 다시 만나 호흡을 맞췄습니다. 내심 걱정했었는데, 며칠간 연습 후에 서로가 놀랄 만큼 몸에 대한 감각의 기억을 갖고 있었던 사실이 무척 경이로웠습니다. 김지영씨야말로 호흡이 가장 잘 맞는 무용수였습니다.”

 

-귀국 후 ‘김용걸과 친구들’을 비롯해 국립발레단의 ‘차이코프스키’도 공연합니다.

“첫번째 공연은 한국을 대표해 해외에서 활약하는 무용수를 한 명씩 선정해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강수진씨가 첫 주자로 공연하셨고, 두번째 주자로 제가 선정돼 제안이 왔습니다. 뜻있고 감사한 공연으로 생각합니다. 국립발레단의 ‘차이코프스키’는 최태지 단장이 제안해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그분에게 많은 덕을 입었고 많은 걸 배웠습니다. 또 세계적 안무가인 보리스 에이프만의 작품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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