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아르헨 어머니 한국에 모셔와 안심”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9.07.01 13:18:49
  • 조회: 409

지난 25일 경기 용인 마북리의 KCC 체육관.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가운데 김민수(27·SK)가 가방을 메고 들어왔다. 다음달 대만에서 열리는 존스컵에 대비한 훈련을 하기 위해서다. 더운 날씨 때문인지 얼굴은 땀범벅이었다. 이국적인 외모와 팔에 새긴 문신은 언뜻 외국인 선수를 인터뷰한다는 착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한국남자농구대표팀의 주전 센터 겸 포워드다.


김민수는 얼마 전 끝난 동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대표팀의 주득점원으로 활약하며 우승을 이끌었다. 4경기 중 3경기에서 팀 내 최다득점을 기록했다. 하승진, 김주성 등이 빠진 센터진의 공백도 훌륭히 메웠다. 프로무대에선 이제 갓 데뷔한 신인이지만 벌써 대표팀에 없어선 안 될 보배가 됐다. 그는 “이번 대회를 뛰면서 많은 걸 느꼈어요. 아시아 선수들과의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을 자신감도 생겼고요. 허재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슛이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자신감을 가지라고 독려한 게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우리에겐 김민수란 이름이 더 친근하지만 그는 ‘훌리안 파우스토 페르난데스’라는 이름을 가진 아르헨티나인이었다. 아르헨티나 아버지와 한국 어머니 사이의 3형제 중 막내였던 그는 학교 클럽에서 농구 잘하는 유망주였다. 어머니 김윤숙씨는 아들에 대해 “농구뿐만이 아니라 매번 성적 우수상을 타 올 정도로 공부도 잘했어요.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았고요. 다른 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와 감독이 비상회의를 소집할 정도였죠”라고 기억한다.


김민수는 15살 때 아버지가 심장질환으로 세상을 떠나자 학교를 그만두고 1년 정도 방황했다. 그때 그를 잡아준 것은 농구였다. 어려운 집안사정도 그를 성숙하게 만들었다. 취미 정도였던 농구로 꼭 성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이즈음이었다. 그는 “어머니와 큰형이 고생을 많이 했어요. 힘들게 살아서 원하는 걸 산 기억이 없죠. 그래서인지 SK에 입단한 다음 1년간 돈을 정말 많이 썼어요. 에어컨도 가장 비싼 걸로 사고, 가구랑 MP3플레이어 같은 것도 샀죠. 이젠 돈을 모아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가족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지난해 9월 한국에 들어온 어머니는 현재 아들이 구해준 잠실의 전셋집에 머물고 있다. “어머니가 아르헨티나에 계셨을 땐 어디 아픈 데 없나 걱정이 됐는데 이젠 안심이 돼요. 큰형도 얼마 전에 들어와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죠.” 무뚝뚝해 보이지만 어머니에겐 애교도 부린다. 어머니 김씨는 “아들이 ‘엄마’ 하고 불러서 쳐다보면 ‘그냥 불러봤어’라면서 웃어요. 이젠 다 컸구나 싶다가도 이럴 땐 아이 같죠”라고 했다.


2008년 KBL 신인드래프트에서 하승진에 이어 전체 2순위로 SK에 입단한 그는 눈부신 활약을 보였다. 국내선수 중 평균득점은 서장훈, 주희정에 이어 3위(14.30점), 리바운드는 국내 센터 빅 3인 하승진, 서장훈, 김주성에 이은 4위(5개)였다. 팀 내에서의 공헌도 역시 단연 독보적이었다. 그러나 신인왕 투표에선 하승진에게 밀렸다. “물론 아쉽죠. 아마 한 해 일찍, 혹은 늦게 데뷔했으면 신인상을 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런데 승진이가 워낙 잘했어야죠. 대신 앞으로 잘해서 MVP를 타고 싶어요.” 프로무대에서의 각오를 물었다. “지난 시즌 초반에 농구가 잘 안 되고 득점도 못할 땐 많이 힘들었죠. KBL이 나랑 안 맞나 하는 생각까지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팀 동료들과 손발이 맞으면서 좋아졌어요. 다음 시즌엔 더 잘할 자신이 있습니다. 팀도 부상선수들이 많아 힘들었지만 이제 (주)희정이 형도 합류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