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콩쿠르 소녀, 비상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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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9.06.23 09:4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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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신현수는 말수 적고 싱거워 보이는 외모 속에 묘한 불꽃을 품었다. 그렇다고 그 불꽃이 활활 타오르기만 하는 건 아니다. 순식간에 얼음처럼 싸늘해지면서 음악의 상승과 하강을 멋들어지게 오간다. 이제 겨우 스물두 살. 하지만 음악을 조절하는 능력은 ‘나이’를 훌쩍 웃돈다. 지난해 11월 프랑스의 롱 티보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살바토레 아카르도(68)는 “그가 연주를 시작하면 비행기가 땅을 떠나 하늘로 오르는 것처럼 비상한다”고 극찬했다. 어떤 이들은 그에게서 젊은 시절의 정경화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싱겁게 웃으면서 “그저 음악에 몰입할 뿐이에요”라고 말했다. 그 신현수가 19일 고양 아람누리에서 이반 피셔가 지휘하는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와 협연한다. 롱 티보 콩쿠르 우승으로 언론의 조명을 한 몸에 받았던 그가 ‘프로 연주자’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내딛는 셈이다. 신현수는 “이반 피셔는 열정과 카리스마가 대단한 지휘자. 그래서 연주회가 더 기대된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정동 경향신문사 근처 커피숍에서 마주앉은 신현수는 “오히려 인터뷰가 더 긴장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특유의 웃음을 잃지 않았고, 질문에 답변하기 전에 머릿속으로 생각을 요리조리 정리하는 표정을 짓곤 했다. “이 거리에 두번째예요. 초등학교 다닐 때 이화경향콩쿠르에서 우승했거든요. 그때 처음 왔고, 이번이 두번째예요.” 마침 커피숍 아래로 일군의 중학생들이 지나갔다. 정동길에 자리한 명문 학교 학생들. 현재 한국의 젊은 연주자 대다수를 배출해내고 있는 유명한 학교다. 하지만 신현수는 그 학교 출신이 아니다. 그는 피아니스트 손열음, 김선욱과 더불어 최근 한국예술종합학교가 거둔 최고의 음악적 성과임에 틀림없지만, 전북 전주의 ‘동네 학원’에서 바이올린을 배웠던 ‘비주류’ 학생이었다. 그 때문에 롱 티보 우승은 더욱 화제가 됐고, ‘어린 현수’의 마음을 “불편하게까지 만들”면서 ‘불우한 환경을 이겨낸 인간 승리의 주인공’으로 묘사됐던 게 사실이다.


“솔직히 좀 힘들었어요. 물론 아빠가 안 계신 탓에 엄마가 많이 고생하시긴 했지만, 저희가 그렇게까지 가난하다고 생각하진 않았거든요. 저희보다 어려운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그래도 저희 엄마는 언니(바이올리니스트 신아라)와 제게 바이올린을 가르쳐 주셨잖아요. 처음엔 유치원에서, 조금 재능을 보이니까 동네 학원에서 바이올린을 배우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에 들어갔어요. 언니 덕을 많이 봤죠. 예비학교에 먼저 들어간 언니가 바이올린 연습하는 걸 듣는 것만으로도 저한테는 공부가 됐거든요.”


신현수는 “처음 갖고 놀았던 바이올린은 ‘과자 상자’였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금새 알아 듣기 어려웠다. 그러자 “진짜 바이올린이 아니고요, 그냥 과자 상자예요. 모양은 바이올린처럼 생겼지만 종이로 만든 거죠. 그 속에 사탕이랑 과자가 들어 있어요”라고 말했다.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이어 그는 “엄마랑 네 살 위의 언니가 방문을 아예 닫아놓고 바이올린을 연습했어요. 그러면 저는 그 방문 앞에서 잠들곤 했대요”라고 말했다. 이 ‘아련한’ 기억은 그의 잠재의식 속에 어떤 모습으로 남았을까. 신현수는 오랫동안 ‘콩쿠르의 소녀’로 살았던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돌이켰다.


“그게 저한테 중요한 발판이 돼줄 거라고 믿었어요. 엄마도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1년에 하나씩 출전했죠. 국내 콩쿠르에선 모두 1등을 차지했어요. 그러다가 영국 메뉴힌 콩쿠르에서 2등을 했어요. 2등은 처음이었죠. 좀 충격이었어요. 역시 세계무대는 만만치 않구나 라는 것도 느꼈죠. 그래서 더 열심히 했나 봐요. 다음해에 미국 요한슨 콩쿠르에서 1등을 했죠.”


하지만 그것은 모두 ‘주니어 부문’에서의 영광이었을 뿐. 이후 그는 2004년 파가니니 콩쿠르 3위, 2005년 티보 바가 콩쿠르 3위, 시벨리우스 콩쿠르 3위, 하노버 콩쿠르 2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5위 등을 차지하면서 ‘1등’의 영광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약이었을까. 그는 ‘연습 벌레’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롱 티보 콩쿠르에서 2위없는 우승을 마침내 거머쥐었고, 그것은 결국 그의 기대처럼 ‘발판’의 역할을 톡톡히 해줬다.


“콩쿠르 때는 귀도 잘 안 들리고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어요. 이름을 불리고 나서야 겨우 한숨을 내쉬죠. 롱 티보 때는 더 심했어요. 6등부터 호명을 하는데 끝까지 저를 안 부르는 거예요. 프랑스어를 못 알아 들은 거죠. 옆에 있던 친구가 ‘네가 1등이래’라고 알려줬어요. 마치 꿈꾸는 것 같았어요. 1시간 후에 엄마한테 전화했죠. 엄마는 계속 울기만 했어요.”


신현수는 롱 티보 콩쿠르 직전에 실제로 꿈을 꿨다고 했다. 꿈속에서 여러마리 뱀에게 물렸는데, 하나도 아프지 않고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는 것. 결과적으로 길몽이었다. 그는 “요즘 끌리는 음악은 프로코피에프, 바르토크, 쇼스타코비치처럼 근육질의 음악들”이라면서 “롱 티보에서 프로코피에프를 연주할 때는, 장갑차가 돌진하고 폭탄이 터지는 전쟁터의 이미지를 상상했다”고 말했다. 오늘 저녁 워싱턴 심포니와 협연할 곡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워싱턴 심포니는 이밖에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 전주곡과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도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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