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억울해, 남은 ‘인생의 반’도 이렇게 살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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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9.06.23 09:37:14
  • 조회: 11929

ㆍ중년 남성 집단 자폐·탈진증…40 이후를 고민하다
ㆍ치열한 경쟁, 억눌린 감정, 자기시간 부재
ㆍ아픔 다 털어놓고 자신을 리모델링하라

“지갑에서 내 돈을 꺼내면서도 기가 죽을 것 같아요. 세종대왕이 그려진 1만원권이 제일 고액권이었는데 이젠 신사임당이 도안된 5만원권이 등장하니 지폐에서도 여성상위시대란 걸 확인시켜주잖아요. 이젠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남자들이 큰소리 칠 곳은 없습니다. 정말 우울해요.”


재미나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는 것이다. 나이나 직위 등의 굴레에서 벗어나 수시로 자신을 자유롭고 즐겁게 해주는 훈련과 일상의 행복을 찾는 습관이 중년 남성들의 우울증을 이겨내는 치료제다. 사진은 50대에도 발랄한 복장과 마음으로 젊음을 유지하는 한양대 홍성태 교수.

대기업 간부인 노승석씨(48)는 요즘 ‘우울하다’는 말을 습관처럼 반복한다. 직장에선 구조조정을 앞두고 언제 퇴출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가정에선 아내·자녀들과의 대화도 원만치 않아 ‘왕따’가 된 듯한 느낌이다. 신문을 펼쳐보면 ‘40, 50대 남성 자살 급증’ ‘40대 남성 사망률 세계 1위’ 등의 기사뿐이고 어쩌다 동창들을 만나면 ‘기러기아빠 영수가 암수술을 받았다’ ‘석호가 퇴직했다’ 등 역시 암울한 이야기들만 들린다. 명치 끝에 가시가 걸린 듯 늘 가슴이 답답하다. 성실히 일만 한 것밖에 없는데 자꾸 불안하고 억울한 마음이 든다. 그래도 마땅히 하소연할 곳조차 없다.


그동안 중년 남성들은 노씨 같은 불안감과 아픔에 시달리면서도 한번도 제대로 ‘나 아프다’고 소리치질 않았다. 그저 겉으론 슈퍼맨처럼 자신있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래도 내가 사내 대장부인데…’라고 허세만 부렸다. 하지만 최근 중년 남성들의 불안한 심리와 안쓰러운 모습이 서서히 밖으로 드러나고 있다.
우리 사회상을 가장 잘 반영하는 CF와 드라마에 등장하는 중년 남성의 모습은 중후한 매력을 자랑하는 성공남이 아니다. 생일에 혼자 라면을 끓여 먹는 기러기아빠가 외국의 아들과 전화하면서 “아빠 맛있는 것 많이 먹었어”라고 말하거나 딸을 껴안아주려다 “징그럽다”며 거부하는 딸의 말에 상처 받고 “이젠 무슨 낙으로 사나”라며 슬퍼하는 궁상맞은 모습이 대부분이다. 43세의 기러기아빠가 실직한 후 우연히 동생 공장의 네팔 노동자 장례식에 갔다가 그의 유골을 들고 네팔로 떠나 자아성찰을 경험하는 영화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전수일 감독, 최민식 주연)도 11일 개봉되었다.

 

요즘 유행하는 중년 남성이 주인공인 유머는 웃으면서도 코끝이 찡해진다. 50대 아줌마들이 친구들과 여행가면서 남편 보라고 냉장고에 써붙인 말 ‘까불지마라’( (까)스 조심, 불조심, (바지)지퍼 조심, 마누라 찾지말고 라면이나 끓여 먹어라), 또 남자들은 나이들면 모두 성직자, 즉 집사(갈 곳이 없어 집을 사랑하는 사람), 장로(일이 없어 장기간 노는 사람), 목사(목적 없이 사는 사람)가 된다는 우스갯소리 등이 대표적이다.


출판계도 마찬가지다. <남자심리학>(우종민 지음, 리더스북), <남자리뉴얼>(이의수 지음, 청림출판), <남자, 그들의 이야기>(스티브 비덜트 지음, 젠북) <남자를 두렵게 하는 것들>(헤르만 에만 지음, 해토), <여자에게 다 줘라>(이상화 지음, 솔), <중년예찬>(한근태 지음, 미래의 창),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김정운 지음, 샘앤파커스) 등의 책이 최근에 출간됐다. 남성심리를 다룬 책들이 이렇게 봇물을 이룬 것은 처음이다. 심리학자, 신경정신과 의사 등 남성심리전문가들은 “몸에 문제가 생기면 수술을 하고, 집에 문제가 있으면 리모델링해야 하듯 우리 중년 남성들도 자신의 아픔을 솔직히 털어놓고 이제라도 건강한 생존법을 터득해야 남은 노후를 편히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아직까지 가정과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던 ‘남자답게 사는 법’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할 때라고 강조한다.

중년 남성들의 공통 질병 자폐증과 탈진증
신경정신과 전문의 우종민 교수(인제대 서울백병원)는 대한민국 중년 남성들이 ‘집단 자폐증’과 ‘집단 탈진증후군’에 빠져 있다고 진단한다. 워낙 경기가 나빠 힘들다는 소리도 못하고 자리 보존이나 생계를 위해 넥타이와 허리띠를 조이고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적 증상이다. 집단자폐증 환자는 자기자신을 잘 들여다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상태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상사에게 아부 잘하고 이해관계도 잘 따지지만 아내와 자녀, 부하의 마음을 읽는 데는 젬병이다. 말을 하면 소리부터 지르고 자기 감정처리에 익숙하지 않으니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못하고 귀를 막아 인간관계가 단절된다. 또 중년 남성들은 과도한 책임감, 가정에서의 소외, 동료들의 퇴직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 은퇴 후의 생활대책 등과 같은 문제로 허탈감과 무력감이 특징인 탈진증후군을 보인다.


우 교수는 남성들이 스스로 만든 세가지 감옥에 갇혀 자신을 더욱 괴롭힌다고 한다. 치열한 경쟁, 감정표현의 억눌림, 자기집중 시간의 부재가 그 감옥들이다. 이 감옥에서 탈출하는 것이 중년 남성들에게 자유와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말처럼 쉽고 또 가능하기는 할까. 우 교수는 감옥 탈출 이전에 대한민국 남성들의 또다른 질병인 상사병(上司病)을 치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상사병은 떠난 임 때문에 생긴 병이 아니라 내 곁의 윗사람 때문에 얻은 병이다. 말도 안되는 지시를 하고,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개인감정을 퍼부어대고, 툭하면 반말에 무시하는 상사, 공은 자신의 것이고 잘못은 아랫사람 탓으로 돌리는 상사 때문에 얻은 상사병은 뜻밖에 심각하다. 당장의 고통뿐 아니라 난치병이라 치료도 쉽지 않다. 우 교수는 상사병에 대한 예방책 및 치유법으로 철학자 쇼펜하워의 말을 소개한다.


“어떤 야비한 일을 당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고민하지 말라. 단지 아는 것이 하나 더 늘었다고 생각하라. 즉 인간성을 연구하는데 필요한 새로운 자료라고 생각하라. 이상한 광물표본 하나를 우연히 발견한 광물학자의 태도를 닮아야 한다.” 방송작가이며 ‘미래성문화연구소’를 개설한 이상화씨는 현재 40, 50대의 중년남성들이 과거 남성들에 비해 스트레스가 더 큰 것은 이들이 성인이 된 후 두 차례의 큰 시련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10여년 전 사회생활을 막 시작했거나 꿈을 펼치려 할 무렵 외환 위기가 터져 고난을 당했다.

 

부모나 상사가 직장을 잃었고, 자신들도 크게 위축된 사이에 여성들이 나섰고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발언권이 세졌다. 다시 자리를 잡으려 하는 요즘,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경제위기가 시작되었고 이젠 더 냉정하고 잔인하게 휴대폰 문자로 해고를 통고받는 신세가 됐다. 심지어 해외에서 들려오는 소식도 흉흉하기만 하다. 2007년 영국의 ‘선데이타임스’는 “남자들이 여성들과의 성대결에서 항복을 선언하고 내조 역할을 받아들였다”며 수컷의 몰락을 선언했다.


그럼 중년 남성들은 40대 이후에 이런 압박감과 상실감에 시달리면서 남은 40여년의 여생에 대한 아무런 기대없이 죽음만 기다려야 할까. 남성사회문화연구소 이의수 소장은 위기가 오히려 기회라고 강조한다. 인생의 무게가 어깨와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고 가장 절실히 느끼는 중년의 나이가 거울을 꺼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전면적으로 되돌아보기에 가장 적당한 때라며 이런 조언을 한다.


"40대 이후엔 인생에서 5가지의 치명적 D가 시작되는 시기다. 쇠퇴(Decline), 질병(Disease), 의존(Dependency), 우울(Depression), 노망(Decrepitude)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치명적 D가 꿈틀대기 시작하는 40대가 되었다고 해서 슬퍼할 필요가 없다. 소나기와 무지개가 함께 다니듯 치명적 D 옆에는 에너지 넘치는 R가 있기 때문이다. 갱신(Renewal), 갱생(Rebirth), 쇄신(Regeneration), 원기회복(Revitalization), 회춘(Rejuvenation)을 갖고 미래를 설계한다면 좌절할 필요가 없다. 또 D의 끝은 죽음(Death)이지만 R의 끝은 재생(Reviva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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