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한 코 한 코 정성 모아 이웃 감싸는 ‘갸륵한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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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9.06.23 09:3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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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시내 이주여성들로 구성된 봉사모임 ‘코코’의 회원들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선물할 목도리와 모자를 뜨개질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이주여성들이 이렇게 모인 이유다. 한국에 정착해 살아가는 것 자체가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 이주여성들은 한국 사회, 이웃을 위해 무엇인가 베풀겠다는 당찬 목표를 갖고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코코와 울랄랄’. 바로 이들 이주여성의 모임 이름이다. ‘코코’는 사랑의 뜨개질을 의미하고, ‘울랄랄’은 문화공연팀이다. 뜨개질과 문화공연 등을 통해 새로 사귄 이웃들에게 받은 사랑을 조금이라도 돌려주고, 나아가 홀로 사는 노인 등 그늘에 가려 소외된 사람들에게는 이웃 사랑을 베풀겠다는 의지다.


코코에는 우즈베키스탄과 러시아, 캄보디아, 베트남, 중국 출신 등 2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지난 2월부터 매주 두 차례씩 모이거나, 각자 집에서 잠을 아껴가며 뜨개질을 한 이들은 이미 300여개의 목도리, 모자 등을 만들었다. 이주여성들은 9월쯤 800개가 만들어지면 군산시내 고아원과 양로원, 영아원, 환경미화원 아저씨 등을 찾아다니며 모자와 목도리를 나눠줄 예정이다.


베트남에서 온 규마이씨(27)는 “내가 한 올 한 올 뜨개질한 모자와 목도리가 외롭고 힘든 분들에게 전해질 것을 생각하면 잠이 잘 오지 않는다”면서 “시어머니께서도 정성이 갸륵하다며 많이 도와주셔서 힘이 된다”고 말했다. 임신 7개월째인 그는 “뜨개질로 태교를 해 이웃을 도울 줄 아는 심성 고운 아기가 태어날 것”이라며 웃었다. 코코팀에는 규마이씨 외에도 임신 중인 여성이 4명이나 된다. 이들은 때때로 손이 퉁퉁 부을 정도로 힘겹기도 하지만 오히려 “좋은 일에 쓰여질 것이기 때문에 태교에도 그만”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나같이 당당하고 활기찬 모습이지만 사실 이들에게는 갖가지 아픈 사연도 많다. 그래서 이들의 정성이 더 귀하다. 2년 전 캄보디아에서 온 바나위씨(23)는 한국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자신이 혈액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퇴원후 투병 중인 그는 1주일에 2~3개의 뜨개작품을 내놓는 열혈 주부다. 그는 “아프다고, 힘들다고 우울해 하는 것보다는 씩씩한 목소리로 인사를 나눌 때 삶의 희망을 찾는다”며 “작은 정성이나마 이웃 사람들에게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게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26명의 이주 여성이 참가해 노래와 춤, 기타 공연 등을 하는 ‘울랄랄’도 맹연습 중이다. 비록 한국말은 서툴지만 흘러간 트로트는 물론이고 신세대 히트곡도 부른다. 매주 1시간30분씩 자원봉사자의 지도에 따라 장단을 맞추는 이들은 이미 첫 공연도 펼쳤다. 지난달 31일 군산시 옥산면 당북리 사보리 베이커리 마당에서 열린 ‘다문화가정과 함께 하는 글로벌잔치’에 참가한 것. 이들은 초청된 가족들과 각국의 이주노동자, 한국 이웃들 앞에서 지금까지 닦아온 기량을 남김없이 뽐냈다. 첫 데뷔무대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중국 출신의 전옥란씨(31)는 “아침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긴 후 오전엔 한글을 배우고, 오후 4시부터 새벽 3시까지 식당에서 생활비를 벌고 있다”며 “몸은 피곤하지만 댄스와 노래팀의 리더로 몸이 열개라도 부족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전씨는 결혼 후 아들을 낳자마자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 남편의 무관심과 방치로 위자료 한 푼 없이 척박한 한국 땅에 정착했다.


‘울랄랄’ 소속의 이주여성들이 문화공연을 선물하기 위해 기타 연습을 하고 있다. 더욱이 국적 취득이 안돼 아이가 세대주가 되고, 자신은 동거인이 돼 있는 신세다. 그러나 그는 “이웃을 즐겁게 하는 것은 큰 보람”이라며 늘 씩씩하다.코코와 울랄랄의 결성 뒤에는 ‘군산 여성의 전화’가 있다. 그동안 이주여성들의 폭력피해 등을 상담하던 여성의전화 측은 수많은 사연을 접하면서 이주여성들의 ‘자존감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들의 잠재력을 끌어내자고 의견을 모았다. 윤난영 이주여성지원사업부장은 “이주여성이 수혜만 받는 대상자라는 인식에서 탈피해 그들의 잠재력을 개발·향상시켜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공헌할 수 있도록 해보자는 취지에서 발족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의 활동은 우리 사회에 만연된 이주여성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 장벽을 허물고 그들의 인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뜨개질이 선택된 것은 한 코 한 코 정성과 사랑이 담기는 상징성에다, 연령과 학력이 다양한 그들을 하나로 끌어내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소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기도 하다. 민은영 사무국장은 “한국 사회에서 적응 자체가 힘든 이주여성들이지만 이들의 따뜻한 마음이 지역사회에 어떤 식으로든 기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다”며 “당사자들의 자존감도 높이면서 이주여성을 바라보는 편견을 깰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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