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원작을 파고드니 ‘비극’이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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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 [http://www.khan.co.kr]
  • 09.06.10 12: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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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오셀로’ 연출가 심재찬] 그는 연출가로서는 좀 손해를 보는 축이다. 중견 연출가로 꾸준히 화제작을 무대 위에 올리고 있지만 문화예술위원회 초대 사무처장 등을 맡은 경력으로 ‘예술행정가’ ‘연극계 마당발’ 등의 이미지 또한 강하다. 오롯이 연출가로서 평가받는 몫이 작다. 그가 현재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서울연극제도 어느 때보다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으며 오랜만에 대학로를 축제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고양문화재단·대전문화예술의전당 공동제작 연극 [오셀로]가 끝난 후에는 연출가 심재찬(56)에게 더욱 집중해야 할 것 같다. 그는 집요하게 원작을 파고들어 얻어낸 한 모금의 정수로 관객의 가슴을 적시는 힘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원작에 충실했을 뿐”이라는 그의 [오셀로]는 오히려 “새롭다” “비극이 살아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동안의 <오셀로>에서는 흔히 강한 남성성을 지닌 장군 오셀로와 너무나 연약하고 아름다운 아내 데스데모나에게 치중해왔다. 오셀로는 그의 부하 이아고의 간괴에 빠져 아내가 부정을 저지른 것으로 오해하고 아내를 죽인다. 오셀로는 모든 것이 거짓임을 아는 순간 자신의 목숨도 끊으며 비극으로 치닫는다.

“여태껏 서너편의 [오셀로]를 봤는데 힘있는 남자가 힘없는 여자를 죽이는 것 같다는 느낌 정도였죠. 솔직히 비극성이 못 느꼈어요. 이번에 희곡을 다시 들여다보며 아내 데스데모나가 그저 연약한 인물은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자신의 사랑에 당당하고, 오셀로가 자신을 의심하고 버리는 순간까지도 변치 않는 강한 사랑을 지닌 인물로 그려내게 됐죠.” 반면 오셀로는 근육질의 장군이 아닌 남성성과 여성성이 묘하게 중첩되는 배우 이남희를 통해 사랑에 나약한 한 인간으로 담아냈다. 사랑으로 더욱 강해지고 또 사랑으로 무너져내리는 두 사람의 대조는 일순간 무대를 비극의 냄새로 진동시킨다.

“이번 공연의 또다른 수확이라면 ‘이남희표 오셀로’를 만든 것과 데스데모나의 이소영, 이아고 역의 김수현이라는 배우를 발견한 것입니다.” 신인에 가까운 이소영은 이 작품을 통해 주목받게 됐고, 김수현은 명동예술극장이 준비 중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의 주인공 온달을 맡게 됐다. [침향][방문자][오셀로] 등의 연이은 작품으로 바쁜 그는 6월5일 통영연극예술축제 개막작 [태풍이 온다]를 준비 중이다. [태풍이 온다]는 극작가 김수미의 제1회 동랑희곡상 수상작이다. 끌어안으려고 애쓰지만 어쩔 수 없이 해체되어가는 현대 가정의 모습을 담담히 그릴 예정이다.

“마음 반쪽이 허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연출하기 싫어하는 작품류인데 선생님들이(원로 연출가들) 저한테 맞는다고 하네요, 허허….” 그 또한 자신을 ‘반쪽 인생’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일까. “2~3년 전부터는 극장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행복감에 빠져든다”는 그이지만 마음 한쪽은 언제나 허전하고 시리다고 털어놨다. 현재 중학교 3학년인 딸과 헤어져 살고 있기 때문이다. 때론 ‘태풍’처럼 다가오는 연극에 인생을 내맡기고 살아온 상처이기도 할 것이다. 1991년 극단 마당을 만든 그는 몇년 전 대표 직을 후배에게 물려주고 보통 갖게 되는 예술감독 직함을 버리고 단원 심재찬으로 돌아왔다. “정신 차려서 열심히 매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극단이 허가제로 몇개 되지 않을 시절인 77년 극단 고향에 입단한 후 차범석·표재순·임영웅·손진책 등 걸출한 연극가들의 조연출로 내공을 쌓아왔다. 30여년을 훌쩍 넘긴 중견이 내비친 신출내기 연출가의 그것과도 같은 열정에 다음 작품들이 기대됐다. [가을 소나타][바냐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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