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詩 쓰는 의사 - 노래하는 공학박사 ‘특별한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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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 [http://www.khan.co.kr]
  • 09.06.09 17:2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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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나이차 마종기·루시드폴 ‘공동 서간집’
마종기 시인(70)과 공학박사 출신 가수 루시드폴(34·본명 조윤석)의 관계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미국에서 40여년을 살며 훌륭한 의사이자 시인으로 평가받는 마 시인은 스위스에서 연구와 음악활동을 병행하던 루시드폴에게 인생의 선배로서 진심어린 조언을 건네는 ‘멘토’였다. 의사와 시인, 공학도와 가수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 영역을 넘나드는 두 사람이 예술관을 얘기하고 공감하는 모습을 보면 36년의 나이차를 무색하게 하는 ‘예술적 동지’로 보인다.

두 사람이 2007년 8월부터 최근까지 2년간 미국과 스위스에서 편지를 주고받으며 나눈 ‘특별한 교감’이 <아주 사적인, 긴 만남>(웅진지식하우스)으로 출간됐다. 두 사람을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마 시인은 지난 3월 현대문학상 시상식 참석차 잠시 한국을 찾았고, 루시드폴은 박사학위를 딴 뒤 올해 초 한국으로 돌아왔다. 마종기=윤석군의 음악이 천천히 다가왔어요. 처음엔 어리둥절했죠. 그러다 가사와 곡을 함께 듣고 이해하면서 조금씩 가까워졌어요. 또 공학도로서 예술을 하는 사람에 대한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한 세대 아래인 사람이 어떻게 삶에 대한 고민, 예술과 전공에 대한 고민을 하는지 흥미로웠습니다.

루시드폴=저야 워낙 선생님 시를 좋아했습니다. 유학을 시작하면서 선생님 시를 읽게 됐는데 시를 읽으면서 위로도 받고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제가 외국에 있을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때 선생님의 <동생을 위한 조시>를 보고 위로를 얻기도 했죠. 마종기=의사가 안 됐다면 시인이 되지 못했을 거란 생각을 합니다. 수련의 시절 시체 해부를 하고 죽음을 지켜보면서 시에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시는 외국에서 의사로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었죠. 그래서 내 시가 다른 분들의 시와 좀 다른 것 같아요. 일부러 꾸미기보다는 마음을 달랠 수 있고, 주위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었습니다. 윤석군의 가사를 보고 자신의 이야기를 꾸미거나 감추지 않고 말하는 자신감과 배포가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루시드폴=제 음악이 시라면 선생님 같은 것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누구처럼 되고 싶다는 말을 싫어하는데, 선생님이 음악을 했다면 그냥 마음속으로 흠모하고 말았을 거예요. 다행히 비껴나 음악을 하다 보니 시에서 받은 영향을 음악으로 풀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책에는 루시드폴이 박사 학위를 따고 귀국을 결정하기까지의 고민과 마 시인의 진심어린 조언이 담겼다.

루시드폴=선생님은 타국 생활에서 오랜 시간 싸워오시면서 지금까지 오신 것 같고 저는 싸움에서 진 것 같습니다. 외국에서 살면서 고독을 이겨내고 더 커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딱 5년 반쯤 지나 보니 안은 텅 비어 있고 한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차 당황했습니다.

마종기=그건 진 게 아닙니다. 현명하게 자기가 원하는 것을 알고 결정했다는 것은 이긴 것과 마찬가지죠. 자기가 어떤 인간인지를 안 것 아닌가요. 자기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마 시인은 미국으로 다시 돌아간다. 루시드폴은 당분간 음악에 열중하며 ‘아마추어 화학자’로 남고 싶다고 했다. 시인이 되고 싶다는 루시드폴에게 마 시인은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선물했고, 루시드폴은 대화 도중 피아노 왈츠곡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의 대화는 천천히 추는 왈츠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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