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의학] “거시적 질병관리 추세… 예방사업에 더 투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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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 [http://www.khan.co.kr]
  • 09.06.02 11:4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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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인플루엔자 A’(신종플루)가 창궐한 뒤 이종구 질병관리본부장(53)은 한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주변에서는 “대통령보다 더 자주 TV에 나온다”는 말을 듣는다. 국내 모든 전염병 관리의 최고 실무책임자인 이 본부장은 전국 각지에 흩어진 검역소와 보건소 등을 ○○○아 하루 몇백리 길을 돌며 환자발생 상황을 챙긴다. 휴일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본부장을 만났다.

- 요즘 유명 탤런트들보다 더 바쁜 것 같습니다.
“정말 바쁩니다. 질병관리본부에서만 하루에 회의를 3~4번 해요. 회의가 밤낮을 가리지 않습니다. 새벽에 할 때도 많고요. 신종플루중앙대책본부와 검역소, 일선 보건소 등도 들러야 하는데 이러다 보면 하루가 모자랄 지경입니다.”

- 집에 못들어가는 직원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직원들 대부분이 거의 못들어 갑니다. 저는 전병율 전염병센터장이랑 돌아가면서 당직을 하는데 둘이 함께 근무하는 날이 많습니다.”

- 특별히 회의를 많이 하는 이유가 있나요.
“걱정이 많아서입니다. 환자가 증가하면 대책을 수립해야 하고 병상이나 격리시설도 마련해야 합니다. 진단시약이 부족하지 않을까, 일선 검시관들 교육훈련이 미비해서 실험 정밀도가 낮아지지 않을까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하다 보면 이런저런 걱정이 많아지지요. 초기에 공항검역에서 환자를 못 잡았다는 지적을 많이 받아 마음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 공항검역에서는 왜 환자를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나요.
“좀 억울한 측면이 있습니다. 첫번째와 두번째 확진환자 모두 입국 때 해열제를 먹고 들어왔더군요. 해열제를 먹게 되면 열이 가라앉아 적외선 열감지기로 찍어도 나오지 않습니다. 공항검역의 한계점이기도 하지요.”

- 5월 들어 수족구병에 A형 간염까지 마치 전염병이 창궐하는 듯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A형 간염은 감염자가 좀 늘기는 했지만 특별한 정도는 아닙니다. 교통·무역의 발달로 세계 각국의 인적, 물적 교류가 활발해졌습니다. 언제라도 전염병이 유입될 수 있는 상황이지요. 이제는 1년 내내 전염병과 싸워야 합니다. 보건체계나 국민 위생수준이 선진국 수준이 되면 전염병 발생이 줄어드는데, 우리나라는 선진국으로 가는 과도기쯤에 와있는 것 같습니다.”

- 수족구병은 첫 사망자가 나왔는데, 보건당국의 대책이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사망자가 나왔고 바이러스가 중국형이라는 사실 외에는 밝혀진 게 없는 상황이어서 공식적인 발표를 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었습니다. 통계가 있거나 역학조사를 통해 감염경로가 밝혀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따로 자료를 내지 않다 보니 오해가 발생한 것 같습니다.”

- A형 간염은 더 확산될 가능성이 있습니까.
“확산되고 있습니다. 환자가 얼마나 늘어날지 예측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환자 동향이나 통계가 잘 파악돼 있어야 합니다. 법정전염병으로 지정돼야 조사도 강제로 하고 보호, 격리도 할 수 있지만 A형 간염은 아직 법정전염병이 아닙니다.”

- 신종플루와 전투를 하는 동안 특별히 눈에 띄는 일이 있었습니까.
“첫 확진환자인 수녀님이 기억이 많이 납니다. 이 수녀님은 복지부 공무원들이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고아원을 돌봐주는 분입니다. 이 때문에 신고도 빨리 하셨고 협조도 잘해주셨습니다.”

- 직원들은 연일 밤샘 근무를 한다 하는데 인력이 부족한가요.
“부족합니다. 신종플루 검역대상이 늘면서 다른 곳에서 한시적으로 사람들을 끌어와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사실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지요. 요즘은 훌륭한 인력들이 배치돼 효율적인 일처리가 가능해졌습니다.”

- 인력 중에 비정규직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실험실 등에 있는 연구인력의 3분의 2가 비정규직입니다. 검역소를 포함해 본부 전체 연구인력이 450명 정도인데 정규직은 150명밖에 안됩니다. 연구직의 경우 신분보장을 해주면 경쟁의식이 저하되고 새로운 지식 습득이 더뎌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새로운 공부를 하고 온 사람들의 유입이 차단되는 부분도 있고요. 하지만 신분보장이 되면 좋겠지요.

- 에볼라 같은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창궐하면 통제가 가능하긴 합니까.
“상당히 많은 시설과 장비가 필요한데 지금은 미흡한 게 사실입니다. 에볼라를 다루려면 ‘생물안전성 4단계’급 실험실이 필요한데 국내에는 없습니다. 한국 기후가 아열대 기후로 바뀌면서 과거에 없던 황열·댕기열·열대성 말라리아 같은 질병들이 토착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에볼라도 요즘은 오지에 다녀오는 사람도 많아 국내 상륙은 시간문제입니다.”

- 백신개발 등 연구분야에 소홀하다는 게 사실인가요.
“국내에 예방접종이 필요하면 백신을 개발하기보다는 사와서 쓰자는 결론이 나올 때가 많습니다. 빨리 문제를 해결하자는 생각 때문일 겁니다. 현대의학에서 가장 큰 문제가 백신생산인데, 10년 이상 장기 투자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예산도 없고, 시간도 없다. 일단 있는 것으로 사업은 하자. 문제는 해결해야 하니까.’ 뭐 이런 식으로 종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서울대 의대 출신인데 의사의 길로 갔으면 돈을 많이 벌었을 텐데 후회하지 않습니까.
“어느날 갑자기 공무원을 하게 된 건 아닙니다. 의대 다니면서 학문적인 일과 실무적인 일을 다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의대랑 세계보건기구(WHO)가 우리나라 의료체계 개편에 대한 시범사업을 했는데, 관심이 생겨 그 일을 해보려다 공무원이 아니면 안된다고 해서 공무원이 됐습니다. 이렇게 오래 공무원 생활을 할 줄 몰랐습니다.”

- 왜 이렇게 오랫동안 공무원 생활을 하게 됐습니까.
“뭔가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의료체계 개편하면서 농촌을 많이 다녔는데, 말단에서 일해보니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은 게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답답해서 복지부에 전화해서 물어보면 앵무새처럼 지침만 말하지 제대로 답을 해줄 만한 전문성을 가진 공무원이 없었습니다. 행정에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요.”

- 그래서 뭔가를 바꾸셨나요.
“2007년에 본부장으로 오면서 여러가지 변화를 추구했습니다. 본관 1층은 행정부서로 통일하고 2~3층은 질병관리 사업부서로 꾸몄습니다. 조직도 전염병대응센터 같은 센터 중심으로 모아 전문성을 높이려 애썼습니다. 사무실내 칸막이도 없애고 층별로 회의실을 만들어 커뮤니케이션도 활성화했습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틀이 잡혔다고 생각합니다.”

- 전염병 관련 업무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입니까 .
“2000~2001년에 5만명의 홍역환자가 생겼을 때입니다. 당시 680만명분의 백신을 인도에서 수입해왔습니다. 항공기로 들여오면 밤새 아이스팩으로 싸서 시·도에 보내고 아침에 접종하도록 했습니다. 국내 최초의 일제 예방접종이었죠. 접종사업이 잘돼서 세계보건기구에서 모범사례로 소개됐습니다. 2003년 사스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현재 운영되는 전염병 대응체계나 관련 시설 등은 거의 다 사스 이후에 생긴 것들입니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큰 경험들을 한 게 지금 일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됐습니다.”

- 국내 질병관리체계에서 개선돼야 할 점도 적지 않을텐데요.
“지금은 지역사회 내 질병 발생이나 역학적 관계 등 거시적인 관점에서 질병관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건강관리와 같은 질병 예방사업에 더 많은 투자가 돼야 합니다. 예방사업은 국가가 인프라를 잘 만들어야 하지만 등한시돼왔습니다. ‘아프면 치료해서 나으면 된다’는 생각보다는 사전에 사회시스템을 바꿔 ‘아예 아프지 않는’ 건강한 사회로 만들 필요가 있지요. 이런 부분은 보험이나 의료기술로 해결되는 부분이 아닙니다. 좀더 투자가 필요한 분야입니다.”

- 최근 의료서비스 분야에선 건강관리 사업이 민영화되는 추세에 있습니다.
“국가가 인프라를 다 조성하면 좋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미국은 지역에 있는 헬스장에서 여러 건강관리시스템을 운영하고 주민들이 운영하면 국가가 ‘바우처’ 형태로 이용비를 지원해줍니다. 민간 인프라를 활용하는 것이지요. 국내에서도 이 같은 시스템 도입이 필요합니다.”

- 그러나 건강관리 비용을 지원할 예산이 부족하지 않나요.
“건강증진기금을 목적대로 사용하면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습니다. 현재 1조3000억원 규모인 기금의 65%가량을 건강보험 재정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보험과 증진기금은 다릅니다. 기금을 예방 등을 위한 원래 목적으로 돌려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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