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연극이야 말로 인간이 가진 위대한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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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 [http://www.khan.co.kr]
  • 09.05.28 13:4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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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광장><회색인><화두> 등의 작가 최인훈(73)은 주옥 같은 극문학 작품도 여럿 갖고 있다. 올해는 그의 희곡을 좋아하는 관객에게 특별하다. 희곡 3편이 약속이나 한 듯 나란히 공연되기 때문이다. 국내 공연계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 그의 작품은 지독한 문학성으로 웬만한 연출가들은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특히 서울연극제 참가작으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15일 막 내리는 <한스와 그레텔>은 1984년 초연 후 25년 만에 관객과 만났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는 34년 만에 복원된 명동예술극장 개관 기념작으로 7월에, <둥둥 樂浪둥>은 오는 9월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의 국내 대표작으로 공연될 예정이다. 70년대 그는 극작가로서 10년간 희곡만을 썼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로 희곡의 문을 열었고 <한스와 그레텔>은 소설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작품이다.

최근 고양시 은빛마을 자택에서 만난 그는 말쑥한 정장 차림이었다. 따뜻한 커피와 집에서 구운 딱딱한 쿠키를 손수 내왔고 한 낮의 거실은 적당히 밝았다. 올해 문단데뷔 50주년을 맞은 그는 “연극이야말로 인류문화와 마찬가지 연령을 가진 ‘위대한 예술’로, 그렇기 때문에 사회가 상업적인 수지(계산)없이 뒷받침하는 것 아닌가”라면서 “우연이지만 희곡 세 편이 한꺼번에 공연돼 연극계가 50년의 모양새를 만들어줘 기쁘다”고 말했다.

-소설이 아닌 희곡을 쓰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삼국사기>의 평강공주 이야기를 읽으면서 희곡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온달과 평강 두 사람의 만남이 연극적인 무대를 떠올리게 했죠. 공주와 나무꾼의 평범하지 않은 만남, 평민이 용감한 장수가 됐다는 이야기, 온달이 죽은 후 그의 관이 움직이지 않은 공주와의 로맨스 등 모든 게 나를 만족시켰어요. 인간의 꿈과 신비함을 간직한 옛날 이야기에 매료됐고 이를 바탕으로 첫 희곡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를 썼어요.”

-이 작품의 초연 풍경이 궁금합니다.
“70년 옛 명동국립극장에서 공연했어요. 온달의 어머니로 박정자씨가 나왔죠. 매표구를 향한 긴 줄이 골목으로 굽이친 모습이 떠오릅니다. 초연된 극장이 사라졌다가 다시 복원됐고 또 이 작품을 올린다니 우연이 겹쳐 흥미로워요. 그때 온달모 박정자씨가 40여년 만에 다시 나온다고 들었습니다.”

-‘자명고’ 이야기가 담긴 <둥둥 樂浪둥>처럼 설화 바탕의 작품이 많은데요.
“저는 역사소설은 쓰지 않고 현대소설만 썼어요. 그런데 다른 시점에서 예술적 생각을 하게 됐죠. 종교적이고 신비한 옛날 이야기들이 나에게 호소하는 바에 대해서요. 물론 현대인들이 교회나 절에 가고 있으니 종교와 신비한 것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점점 그들의 촉감이나 감수성이 옅어지지 않나, 우리의 ‘척수’가 무뎌지지 않나 싶어요. 인간은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신비한 존재인데, 우리가 스스로를 신비한 것으로 여기지 않찮은가, 그것이 인간의 ‘마지막 감각’으로 괜찮은 것인가? 문득 심각하게 느낀 것이죠.”

-<한스와 그레텔>은 왜 25년 만에 공연되나요
“밀실 같은 한 장소에서 30년간 갇힌 사람과 간수의 대화를 그린 작품입니다. 연극으로 하기에는 좀 껄끄러운 작품이죠. 실제로 세계2차대전 후 정치적인 유폐 상태에 놓인 히틀러 정권의 한 고위 간부 이야기가 바탕입니다. 실제 인물은 94세에 자살로 유폐를 마감했어요. 우리는 비전향장기수를 북한으로 보냈지만 문명국이라고 하는 유럽은 결국 그렇게 한 개인이 생을 마감하도록 했죠. 제 작품에서는 석방돼 평생을 기다려온 아내 그레텔에게 돌아갑니다. 유럽의 휴머니즘이 하지 않은 잔인한 실화를 작품을 통해 석방되도록 한 것이죠. 선물을 주고 싶었어요. 그 이상의 예술적 승리는 없으니까. 역사의 책임에 비해 과연 한 개인이 인생을 걸고 걸머져야 할 책임이 무엇인가, 얘기하고 싶었죠.”

-50주년이 실감납니까.
“50년이란 시간은 함부로 얘기할 수 없는 시간인데, 반세기 동안 독자와 관객의 언저리에 남아 있었던 것에 대해 감사해요. 25편의 미발표작을 갖고 있습니다. 작가는 은퇴가 없잖아요. 머릿속으로는 밤낮 작품이 왔다갔다 합니다. 하지만 물건이 될 만하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계속 해봐야지요.”

-요즘 일상은요.
“책 보는 일에 가장 많은 시간을 배당합니다. 새벽 3시 정도까지 책을 봅니다. 요즘은 ‘금주의 베스트셀러’ 같은 것을 꼽기도 하던데 어디 장마다 꼴뚜기가 나나요. 주로 옛날에 읽던 책들이죠. 생활면에서 나를 가장 강력하게 지배하는 것은 역시 손녀들(은규·혜규)입니다. 젊었을 때는 몰랐던 세상이에요. 인생의 가장 심오한 뿌리(울타리)를 알게 된 것 같아 제 자식들도 새롭게 보게 됐습니다. (그는 서울대 법대 4년 당시 자퇴를 했다. 이유가 궁금해 물었다.) 취미가 썩 들어맞지 않았어요. 졸업이 얼마남지 않았지만 나는 못 참았던 거예요. 생애를 통해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돌이켜보면 좋은 배움의 자리였지요. 그땐 인생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젊은날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어요. 다 후회스러워요. 작품을, 공부를 더 죽기 살기로 사람도 더 사랑하고 모든 걸 더 더 더…. 그런데 나만 그랬겠어요. 사람이 그렇게 만들어져 있는 걸. 그러니 다시 성찰하라고 예술도 있는 것이겠죠. 마르지 않는 깊이가 있는 것이 이 세상 꾸밈새인 것 같아요. 용맹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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