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변방의 더블베이스 중심을 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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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 [http://www.khan.co.kr]
  • 09.05.28 13:3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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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블베이스의 진보를 꿈꾼다.” 더블베이스 연주자 성민제(19)의 행보가 눈부시다. 그는 2006년 독일 슈페르거 더블베이스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거머쥔 후, 2007년에 러시아 쿠세비츠키 콩쿠르에서 또 한번 우승을 차지하면서 국제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세계적 음반사인 도이치그라모폰(DG)에서 첫 앨범을 내놨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김영욱, 지휘자 정명훈, 소프라노 조수미,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여섯번째 ‘등판’이다.

게다가 이번 앨범 ‘더블베이스의 비행’(Flight of the Double B)이 더욱 특별한 것은, 그동안 ‘변두리 악기’로 치부돼온 더블베이스로 음악의 중심에 들어섰다는 점 때문이다. 높이 2m에 무게 20㎏이 넘는 거구의 악기. ‘악기가 아니라 가구’라는 농담까지 들어가며 ‘오케스트라’라는 계급사회의 오른쪽에 엉거주춤 서 있던 악기. 하지만 이제 성민제라는 어린 연주자가 더블베이스의 위상을 서서히 바꿔가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성민제를 만났다. 아버지이자 첫번째 스승, 서울시향의 더블베이스 연주자인 성영석씨(48)도 자리를 함께했다. 아버지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는 “아들 얘기를 하면 자꾸 눈물이 나서, 오늘 인터뷰 자리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나왔다”면서 “어린 아들에게 고생을 너무 시켜 미안할 뿐”이라고 했다. 성민제는 아버지 덕택에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더블베이스 소리를 들었고 열 살 때 처음 활을 잡았다. 말하자면 더블베이스로 대를 이었다. 하지만 아들이 가야 할 길은 아버지가 걸어온 길보다 험했다. “고교 시절에 대학을 가려고” 악기를 시작했던 아버지는 1984년 서울시향에 입단, 지금까지 현역으로 뛰고 있다. 성씨는 “나는 더블베이스를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한 세대”라고 자탄했다. 악기의 위상이 그랬고, 한국적 여건에서 제대로 배우기 힘들었다는 뜻이다. 성씨는 “한국에서 더블베이스 연주자로 산다는 건 서글픈 일”이라면서 “직업연주자로 무대에 서면서도 늘 마음이 허전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아들 앞에서, 마치 고해성사하듯이 그렇게 말했다. 그것이 바로 “(아들을) 제대로 가르쳐 세계적 연주자로 키우고 싶다”는 욕심을 품은 이유였다.

“민제가 열한 살 때부터 제 연습실에 나오기 시작했어요. 아직 초등학생이던 아이가 밤 12시 전에 집에 들어가본 적이 없어요. 방학 때는 해외 마스터클래스에서 레슨을 받곤 했는데, 공항에서 아이를 배웅한 다음 저 혼자 벤치에 망연자실 앉아있곤 했지요. 생각해보세요. 자기 키보다 훨씬 큰 악기를 갖고 혼자 비행기 타는 걸 지켜봐야 했으니까요. 2006년에 독일 슈페르거 콩쿠르에 나갈 때는 공항에서 그러더라고요. ‘아빠, 너무 떨려요’라고요. 할 말이 없었어요. 그냥 안아줬지요. 며칠 후 새벽 3시 반에 전화가 왔어요. ‘아빠, 1등 했어요’라고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나왔다는 아버지는 이 대목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공항에서 아들과 여러번 ‘작별’하면서 “다음에는 악기 말고 배낭을 메고 와보자”고 아들을 위로하곤 했지만, 아직까지 그 약속을 한번도 못 지켰다고 했다. 옆자리의 아들은 “때때로 더블베이스가 지겨울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걸 잊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말수가 적었다. 어린 나이에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 다소 기분이 고조될 만도 한데, 성민제의 말투와 표정에는 그런 기색이 없었다. “2006년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비로소 음악에 대한 자신감 같은 게 생겼어요. 외국에는 더블베이스 솔리스트들이 간간이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사실 제가 처음이라서 부담이나 두려움 같은 게 있어요. 바이올린이나 첼로는 솔로악기로서의 위상이 완전히 서 있지만 더블베이스는 아직 그런 단계가 아니잖아요. 아무래도 어깨가 많이 무거워요.”

세계의 중요한 더블베이스 콩쿠르를 석권하고 도이치그라모폰 레이블로 음반까지 낸 19세의 연주자.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그는 올해 9월 독일 뮌헨 음대 입학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오케스트라의 다른 악기를 받쳐주는 역할을 넘어, 더블베이스만의 독자적 경지를 펼쳐보고 싶다”는 그는 다음달 19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연주회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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