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흑과 백의 절제 조선선비 옷차림이야 말로 최고의 모던 디자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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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 [http://www.khan.co.kr]
  • 09.05.27 09:5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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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디자이너 이진윤(31)의 이름은 낯설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유럽 패션업계로 눈을 돌리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이진윤은 지난 1~2주일간 유럽의 패션 잡지들이 가장 많이 거론했던 인물 중 하나였다. 전도유망한 세계 각국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30만유로(약 5억원)의 상금을 놓고 겨루는 ‘제2회 망고 패션 어워드(MANGO Fashion Awards)’에서 내로라하는 경쟁자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이 대회는 스페인의 중저가 여성 의류 브랜드 ‘망고’가 재능있는 패션 디자이너를 발굴, 지원할 목적으로 개최하는 의상디자인 경연 대회다. 망고는 한국을 비롯해 세계 100여개국에 1250여개 매장을 두고 있을 정도로 브랜드 영향력이 크고, 상금 규모도 타의 추종을 불허해 패션 디자이너라면 누구든지 욕심낼 만한 행사다.

지난해 5월 시작된 이번 대회에는 200명 이상의 디자이너들이 도전장을 냈다. 망고는 1차 서류심사로 50명을 선발하고, 유럽의 5대 패션 디자인 학교가 2차 서류심사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다시 10명을 추려낸다. 이들 최종 후보 10명만이 실제로 의상 10벌을 만들어 망고에 제출하게 된다. 이진윤은 이 과정을 거쳐 지난달 29일 우승자로 확정됐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시상식을 마치고 금의환향한 그를 지난 7일 만났다. 그는 이번 대회를 통해 “‘프라다’나 ‘구치’, ‘에르메스’ 같은 브랜드들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망고가 국내에서 판매 중이지만 ‘망고 패션 어워드’라는 대회는 조금 생소합니다.
“최근 제일모직이 망고 매장을 오픈하기는 했지만 처음 망고가 우리나라에 수입됐을 때는 반응이 별로 없었어요. 당시엔 수입업체가 작은 곳이라 마케팅이 약했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던 거죠. 하지만 세계적으로 봤을 때 망고는 굉장히 큰 브랜드예요. 판매하는 옷의 가격은 저렴해도 영향력은 대단하죠. 망고처럼 중저가 의류를 파는 스페인의 ‘자라(ZARA)’, 스웨덴의 ‘H&M’, 영국의 ‘톱숍(Top Shop)’도 마찬가지예요. H&M은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와 손잡고 ‘칼 라거펠트 for H&M’ 라인을 만들기도 했잖아요. 이런 브랜드들과 일한다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더욱이 이 대회는 상금이 가장 커요.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가 주관하는 대회도 이렇게 많은 금액을 주진 않죠.”

-최종 후보에 오른 10명의 디자이너들 모두 쟁쟁한 사람들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각국의 컬렉션 무대에서 작품을 발표했고 수주가 있었던 35세 이하 디자이너들에 한해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있어요. 아마추어나 학생들은 제외되죠. 그래서 최종 후보에 올라온 디자이너들은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이에요. 특히 2위를 차지한 피터 필로토, 3위 장 피에르 브라간자를 포함해 영국에서 온 디자이너 3명은 ‘스타일닷컴(유력 패션잡지 ‘보그’의 웹사이트)’에 등재돼 있을 정도입니다. 역시 10위 안에 들었던 조쉬 구트도 유명한 디자이너죠.”

-심사위원장이 저명한 패션 디자이너 오스카 드 라 렌타였습니다. 심사평이 궁금한데요.
“제가 한국을 떠나기 이틀 전에 망고가 심사위원을 발표했는데 오스카 드 라 렌타가 위원장이라서 좋았어요. 드 라 렌타가 제 작품에 대해서 ‘고급스러운 간결함(simplicity with luxury)’이라고 했는데 그게 바로 제가 추구하는 디자인 방향이에요. 심사위원 중에는 <프로젝트 런웨이>라는 TV 프로그램으로 유명해진 패션 에디터 니나 가르시아도 있었는데, 디자인을 보는 관점이 저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던 터라 역시 반가웠습니다. 1위 시상식이 끝난 후에 니나 가르시아가 제 손을 잡으면서 ‘이런 작품을 만나게 돼서 영광’이라고 하는데, 정말 좋았어요.”

-대회에 출품했던 작품의 주제는 무엇이었습니까.
“이번 작품은 조선 선비들의 옷차림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습니다. 금기숙 교수님의 저서 <조선복식미술>이 큰 도움이 됐죠. 우리 선비들은 옷을 입을 때 흰색으로 고름을 매고 검은색 대를 허리에 매고 상투를 묶고 갓을 써요. 어떻게 우리 조상들이 블랙과 화이트의 모던함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걸까요? 저는 감동 받았어요. 갓과 상투도 감동적이에요. 빛이 갓을 투과하면서 갓 속의 상투가 은은하게 비치잖아요. 어떻게 하면 갓 속의 상투처럼 보일 듯 말 듯 인체의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블랙과 화이트의 절제되면서도 모던한 느낌을 살릴 수 있을까. 그리고 이것을 어떻게 여성복에 적용할 수 있을까. 저는 이런 것들이 한국적인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해요. 한글을 천에 프린트하거나 한복을 화려하게 만드는 게 한국적인 것이 아니라, 한국적인 이미지를 전 세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디자인으로 구현하는 것이 진정한 한국적인 아름다움인 거죠. 한국의 디자이너로서 한국적인 메시지를 띤 작품으로 1위가 됐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의상을 어떻게 제작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신다면.
“한복 소재인 오간자로 옷을 만들었어요. 한복 소재 중에서도 구하기 힘든 건데, 경북 상주에 할머니들이 모시와 실크를 섞어서 직접 짜는 소재가 있어요. 19세기 말 느낌을 내고 싶어서 코르셋을 만들었는데 이 코르셋은 선비들의 상투를 나타냅니다. 코르셋 위에 입는 오간자 소재의 검은색 상의가 갓인 거죠. 오간자 상의를 자세히 보면 0.35㎝ 간격으로 맞주름을 박아 넣었어요. 이렇게 맞주름을 박아서 블라우스를 하나 만드는 데 15일이 걸려요. 간단한 작업이 아니죠.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도 주름을 주제로 한 ‘플리츠 플리즈’ 라인을 만들었지만 그건 기계 주름을 잡은 거니까 제 작품의 공정이 더 까다롭다고 보시면 됩니다. 사실 이세이 미야케, 정말 대단해요. 존경해요. 플리츠 플리즈로 전 세계를 사로잡았잖아요. 제 특유의 주름으로 이세이 미야케와 경쟁해보고 싶어요.”

-2001년 파티 청바지 이후 국내에서 어떤 활동을 했습니까.
“2004년 가을·겨울 시즌부터 2007년까지 매 시즌 전투하는 기분으로 서울컬렉션에 참가했어요. 그렇지만 컬렉션을 통해 옷을 팔아본 적은 없습니다. 우선은 제 실력이 부족했고, 한국 패션업계는 신인 디자이너가 커나가는 데 한계가 있어요. 예를 들자면 제1회 망고 패션 어워드에서 1위를 차지한 해외 디자이너는 한국 청담동의 편집 매장(다양한 해외 브랜드제품을 소량으로 수입·판매하는 곳)에 옷을 납품해요. 그런데 서울컬렉션에 참가한 이진윤은 한국에서 판매할 수가 없어요. 해외 디자이너들이 저보다 실력이 뛰어나서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기회가 없었던 거죠. 그리고 백화점이나 편집 매장에 납품하라는 제안을 받았어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수수료가 비싼 것을 떠나서, 국내 디자이너의 제품은 이른바 완사입을 해주지 않거든요. 외국 디자이너의 경우엔 백화점이나 편집 매장이 이윤까지 계산해서 100% 가격을 지불하고 옷을 구입해요. 재고가 생기면 백화점과 편집 매장이 알아서 처리하는 거죠. 그런데 한국 디자이너한테는 옷을 걸 수 있는 자리만 내줘요. 재고가 생기면 디자이너가 재고까지 처리해야 하는 겁니다. 이런 구조 때문에 국내 신인 디자이너는 클 수가 없어요. 돈의 회전이 없으니 쇼를 중단하게 되는 거죠.”

-이번 대회를 통해 해외 무대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돌아오는 시즌은 시간이 없어서 안 될 것 같고 그 다음 시즌에는 뉴욕 컬렉션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프라다’ ‘구치’ ‘에르메스’ 같은 브랜드의 스토리와 인지도는 제가 감히 따라갈 수 없는 것들이에요. 그러나 프라다와 구치의 상표만 보고 구입하는 시대는 지났어요. 우리나라도 좋은 상품이면 외국 것이든 한국 것이든 상관없이 구입하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유럽에서는 ‘프라다’ ‘구치’와 경쟁해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요. 다만 아쉬운 것은 스페인의 ‘망고’라는 브랜드가 유망한 디자이너들을 후원하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의류 브랜드가 디자이너들을 지원하는 풍토가 뿌리내렸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제가 뉴욕 컬렉션에 출품할 때 한국 의류 브랜드가 그 과정을 함께 준비해준다면 서로 상승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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