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이 길을 따라가면 특별시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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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 [http://www.khan.co.kr]
  • 09.05.26 09:05:26
  • 조회: 11841
전남 나주 여행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깐, 하나만 짚고 가자. 나주의 슬로건은 ‘천년 목사의 고을’이다.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목사라고 하면 옛날 벼슬아치인지 알겠지만 일반 여행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기 십상이다. 여기서 뜬금없는 질문 하나. 차장검사가 높을까, 부장검사가 높을까? 답은 차장검사다. 신문·방송에 숱하게 나오는 검사들이지만 직급은 검찰 관계자 아니면 잘 모른다. 병장이 높은지 하사가 높은지 모르는 여자도 많다. 아니, 관심도 없다는 게 맞겠다. 그런데 장삼이사들이 목사를 얼마나 알까? 목사든, 부사든, 현감이든 관심없다.

두번째 질문. 목사는 얼마나 높은 직책인가? 고려 성종 때인 998년 전국의 12개 주요 고을에 12목을 설치했다. 목사는 지금으로 치면 도지사쯤 되겠다. 나주 슬로건을 요즘 말로 풀면 ‘나주는 1000년 동안 도청소재지였다’쯤 된다. 이에 대한 여행자의 반응? ‘됐거든…, 난 왕도 서울에서 왔다고!’ 도청소재지보다 급이 높은 서울과 광역시 인구만 합쳐도 전인구의 절반 가까이 된다. 물론 나주시의 찬란한 역사를 깔보는 것은 아니다.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를 합친 말이고, 호남의 웅도라는 것도 안다. 나주사람들 자부심 가질 만하다. 다만 여행자의 입장에선 ‘천년 목사의 고을’이란 슬로건은 호소력 없다. 생뚱맞다.

그럼 여행자들은 무엇에 감동을 받을까? 서울서 아니, 대도시에서 볼 수 없는 것이다. 전라도에 다녀온 사람들이 가장 놀란 것은 음식이다. “정말이라니까. 라면집에도 반찬이 대여섯개 나오더라고….” 이런 거다. 음식은 전라도가 특별시다. 호남의 맏고을 나주 역시 음식문화가 발달됐다. 이유는? 들이 넓다. 가장 높은 산이 450m 금성산이다. 바다가 가까워 해산물도 풍부했다. 과거엔 영산포까지 배가 들어왔다. 나주배 같은 특산품을 제외한 나주의 3대 먹거리를 꼽는다면 ①영산포 홍어 ②나주 생고기와 곰탕 ③구진포 장어라고 할 수 있다.

홍어 하면 신안 흑산도 아닌가? 맞다. 거기서 홍어가 많이 잡힌다. 하지만 과거 최대 소비처는 나주 영산포였다. 양양, 울진, 봉화가 송이버섯 주산지이지만 많이 팔리는 곳은 강남의 백화점인 것과 같은 이치다. 흑산도 앞바다에서 잡은 홍어를 배로 나주까지 가져오는 데 달포 걸렸다. 이때 홍어가 저절로 삭는다(발효한다). 정약전의 <현산어보>(자산어보)에는 ‘나주 고을 사람들은 삭힌 홍어를 즐겨먹는데 배에 복결병이 있는 사람은 국을 끓여먹으면 낫고, 숙취를 없애는 데 효과가 있으며, 뱀에 물린 데에는 껍질을 붙이면 낫는다’라고 나와있다. 복결병은 배 속에 어혈이 생긴 병이다.

나주 영산포에 홍어의 거리가 있다. 4~5년 전만해도 식당이 네댓개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은 수십개다. 수도권에서도 홍어를 찾는다. 과거 식당이 많지 않았던 것은 홍어가 식당에서 먹는 음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반찬으로 내놓은 식당 많다.) 전라도에선 집안 잔치를 앞두고 ‘떡 맞추듯이’ 홍어를 예약해서 사갔다. 홍어집은 식당이라기보다 홍어판매상에 가까웠다.

홍어는 혀로 먹는 게 아니다. 오감을 자극한다. 소설가 황석영은 1970년대 홍어를 처음 먹었던 경험을 이렇게 썼다. ‘한 입 ○○○자마자 그야말로 오래된 뒷간에서 풍겨 올라오는 듯한 개스가 입 안에 폭발할 것처럼 가득 찼다가 코를 역류하여 푹 터져 나온다. 눈물이 찔끔 솟고 숨이 막힐 것 같다. 그러고는 단숨에 막사발에 넘치도록 따른 막걸리를 쭈욱 들이켠다. 잠깐 숨을 돌리고 나면 어쩐지 속이 후련해진다. 참으로 이것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혀와 입과 코와 눈과 모든 오감을 일깨워 흔들어 버리는 맛의 혁명이다.’

홍탁삼합(홍어+막걸리+신김치)은 이제 서울서도 먹을 수 있지만 나주가 아니면 맛보기 힘든 것은 홍어애보릿국이다. 봄철 보리수확 전 홍어내장과 보릿잎을 함께 넣고 끓인 된장국으로 지금이 제철이다. 생고기도 유명하다. 큰 고을엔 큰 우시장 하나는 달려있는 법. 영산포 우시장도 컸다. 나주 사람들은 “막 잡은 소의 엉덩이살을 잘라 생선회처럼 먹은 것에서 생고기 문화가 시작됐다”고 자랑했다. 양념육회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DJ 시절 김성훈 장관이 소를 잡고난 뒤 하루가 지나야 먹을 수 있도록 법령을 개정했어요. 그때 이곳 사람들이 왜 생고기를 못먹게 하느냐고 데모를 했다니까요. 글쎄.”(이광형 나주부시장) 당시 물먹인 소가 사회문제였다. 그래서 농림부는 도축 후 하루 이상 숙성기간을 두도록 했다. 나주 사람들은 전통 식문화를 무시한 조치라며 반발했다. 해서 생고기 부위 엉덩이살은 예외로 한다는 조항이 들어갔단다. 나주곰탕은? 이름난 곰탕집들은 대개 3대 이상, 40~50년 이상된 집들이니 검증받은 셈이다. 장어는? 바닷물과 강이 만나는 곳, 즉 풍천에서 난 것을 제일로 친다. 바닷물이 영산강따라 밀려왔으니 장어도 좋았을 게 분명하다. (지금은 대부분 양식이다.)

이제 볼거리 딱 세 가지만 얘기하자. ①불회사와 운흥사 ②메타세쿼이아길 ③다야뜰은 빼놓지 말자. 나주에 이름난 대찰은 없다. 불회사와 운흥사는 작다. 한데 역사는 깊다. 동진의 마라난타가 불교를 처음 전해준 곳이 영광 불갑사. 그 다음에 지은 절이 불회사다. 운흥사와 불회사는 언덕 하나 사이. 꼭 봐야 할 것은 두 절 어귀의 석장승이다. 유쾌하게 웃고 있다. 표정이 해학적이다. 불회사길은 편백나무 숲이 좋다. 운흥사는 터만 남았던 자리에 10년 전 주지 혜원이 들어와 법당을 세웠다. 다성 초의선사가 출가한 절. 발효차까지 만드는 혜원 스님의 차 이야기가 구수하다. 마지막 전남산림환경연구소의 메타세쿼이아길. 직선길 400m 정도로 사진찍기 좋다. 올해만 두어 번 왔다는 부산 사진동호회원들을 여기서 만났다. 다야뜰엔 10만평이나 되는 양귀비꽃밭이 조성됐다. 이번 주말(16일)쯤 절정이란다. 영상테마파크가 다야뜰을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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