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겸재와 계승자들의 ‘진경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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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 [http://www.khan.co.kr]
  • 09.05.18 10:4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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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1676~1759)의 그림이 ‘진경산수(眞景山水)’란 명칭으로 불린 것은 1980년대 초반부터이다. 겸재 연구의 산실인 간송미술관이 첫 정기전(1971년)으로 정선의 작품을 선보일 때는 ‘겸재전’이었다. 그후 1981년 ‘진경산수화전’이란 명칭을 사용했으며 ‘진경시대전’(1985), ‘진경풍속전’(1988), ‘겸재진경산수화전’(1993), ‘대겸재전’(2004) 등 6번의 겸재 전시가 마련됐다. 겸재 서거 250주년인 올해 ‘겸재서법이백오십주년기념겸재화파전’이 이달말까지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열린다.

최완수(67) 연구실장은 11일 전시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겸재는 먹의 번짐을 이용한 묵법과 필선을 중시한 필법에 정통해 필묵을 이상적으로 조화시키는 방법으로 진경산수화법을 창안한 동양화의 대성자”라며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작품과 진경산수의 화맥을 계승한 심사정·김희겸·강희언·김홍도·김득신·신윤복 등 다른 화가들의 작품을 비교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겸재 작품은 80여점, 기타 작품은 20여점이 나올 예정이다.

겸재는 율곡의 학맥에 속한 성리학자로, 가장 어렵다는 <주역>에 능통해 30대 중반의 나이에 음양조화와 음양대비의 원리를 깨달았다. 그 결과 암산절벽은 필법으로 처리하고, 토산수림은 묵법으로 처리하되 토산수림이 암산절벽을 감싸서 음양조화를 이루게 하거나, 토산과 암산이 마주보게 하여 음양대비를 이루게 하는 화면구성법을 구사했다. 최실장은 이에 대해 “인문학이 획기적인 화법 창안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보여주는 본보기”라고 말했다.

겸재는 젊은 시절부터 ‘인왕재색도’ ‘금강전도’ 등의 빼어난 그림을 내놓았지만 작품세계가 난만한 경지에 오른 것은 64~70세때다. 64세때인 1739년 청운동 일대를 그린 작품 ‘청풍계’는 분수령이다. 63세에 그린 <관동명승첩> 중 ‘해산정’ ‘시중대’와 양천현령으로 재임하면서 1740~41년 한강의 명승지를 그린 <경교명승첩>의 ‘독백탄’ ‘목멱조돈’ 등도 주목할 만하다. 72세때는 아우를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 36세때 그린 금강산을 다시 화제로 삼아 <해악전신첩>을 낸다. 여기 실린 ‘총석정’ ‘사인암’ 등을 보면 30대의 겸재가 금강산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면 70대의 겸재는 세부를 과감하게 생략하면서 추상의 경지를 향해 나아간다.

“간송미술관에서 처음 ‘겸재전’을 할 때만 해도 ‘진경산수’란 말은 많이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1970년대를 지나는 동안 궁궐의 석상 등 비슷한 시기의 작품을 연구하면서 조선사람의 얼굴이나 풍경과 닮은 경향을 발견했지요.” 최실장은 “당대의 여러 화가들이 겸재를 배우려고 했으나 필법·묵법을 모방하는데 그친 경우가 많다”며 “학문적 경지에서 나온 화면구성원리와 필력 등 전반적으로는 겸재를 따를 자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최근 강서구 가양동에 겸재정선기념관이 문을 연데 이어 국립중앙박물관도 가을쯤 겸재 전시를 계획중이어서 올해는 겸재 작품을 볼 기회가 많다. 매년 봄·가을에 2주일씩 정기적으로 마련되는 간송미술관 전시는 무료인데 장시간 줄을 설 각오를 해야 한다. 신윤복의 ‘미인도’가 전시됐던 지난해 가을에는 신윤복 바람이 불면서 관람객이 20만명에 달했다. (02)762-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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