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이상’과 날자꾸나~ ‘이상’ 품은 두 야심가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 [http://www.khan.co.kr]
  • 09.05.14 08:48:55
  • 조회: 11834
[“fun and sad!” 연극이 끝난 후 한 관객이 “웃기고 슬프다”고 평하자 연출가 리 브루어(72)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 1일 명동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이상, 열셋까지 세다>가 막을 올렸다. 두달 가까이 한국에 머물며 작품을 만들어온 리 브루어는 관객들의 반응을 유심히 살폈다. 객석에는 이 작품을 쓴 재미교포 극작가 성노(42)도 뉴욕에서 날아와 앉아있었다. 이 연극은 공연 전부터 화제를 낳았다. 주변극장으로 소외된 70석 초미니 소극장에 세계적인 연출가가 찾아와 작품을 올린 것이 하나요, 그 희곡이 하버드대 물리학 전공의 재미 극작가가 쓴 작품이라는 것이 둘이요, 시인 이상을 세계적인 작가로 부상시키겠다는 야심이 셋이요, 뉴욕의 상업 프로듀서들이 현지 공연을 판단하기 위해 작품을 보러올 예정이라는 것이 넷이다.

리 브루어는 “아방가르드적인 시인 이상의 머리 속을 무대 위에 그리려고 했다”면서 “이 작품은 한국의 시인이 아닌 랭보, 카푸카와 같은 초현실적인 작가 이상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이 연극은 자신이 올라탄 말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 정도는 짐작하는 수준의 관객(창의적인 사람)이 봐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 열셋까지 세다]는 이상의 작품 [날개] [오감도] [꽃나무] 등에서 모티브를 따온 실험극이다. 빨강, 파랑 두 남자와 초록이라는 여자, 이상을 연상케하는 폐병 3기의 또다른 남자가 등장한다.

무대는 갤러리의 설치미술을 옮겨놓은 듯한 강렬한 이미지와 영상들로 가득 채워진다. 핏물같은 붉은 꽃이 피어나기도 하고 한바탕 소나기가 퍼붓는 것 같기도 하다. 창고극장의 숨은 매력을 찾아낸 기발한 연출이 재미있다. 유성기에서 흘러나온 듯한 해방기의 음악이 덧붙여져 부조화를 이룬다. 가벼우면서도 심각하고 비극과 희극이 뒤엉켜 있으며 난해하다. [오감도] 중 시제1호 ‘열세명의 아해’를 형상화한 장면은 처연하다. 보는 이에 따라 찬사와 혹평이 갈라질 듯하지만 새삼 이상에 대한 강한 탐구심이 인다. 성노는 “대학 졸업후 영문번역된 [날개]를 처음 읽고 아름다우면서도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이상은 지적이면서도 극단적이고 미스터리한 사람으로 지금도 굉장히 현대적인 인물이다. 일제시대를 겪어서인지 성적불구와도 같은 느낌도 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의 전기적 작품은 아니고 그의 시가 문장, 의미, 형식을 거부하듯 비전통적인 연극적 방법으로 쓴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물리학자 아버지와 연극평론가 어머니 슬하에서 자란 그는 하버드대에서 물리학 공부를 마치고 브라운대에서 극작을 전공하며 인생을 바꿨다. 그는 “사물이나 사람이 어떻게 움직이고 작용하는가에 대한 관심은 물리학이나 연극이나 마찬가지로 통한다”고 말했다. 황순원의 [소나기] 등에서 모티브를 따와 작품을 쓰기도 한 그는 오는 가을에는 연극 [웨이브]를 런던에서 공연할 계획이다.

리 브루어와 성노는 1998년 뉴욕에서 처음 만났다. 리 브루어가 이끄는 극단 마부마인의 워크숍 때 성노가 [이상, 열셋까지 세다]를 시연했다. 리 브루어는 당시 낯선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고 특히 다이어트 콜라로 다도하는 장면에서 박장대소했다고 한다. 이번 공연에서도 나오는 ‘콜라 다도’ 장면은 재미있고도 강한 상징성을 드러낸다. 리 브루어는 “연극을 보러 오기 전 이상의 몇몇 작품 구조를 알고 오면 더 재미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무대미술은 ‘719제작소’가 맡았다. 김소진·이창수·신동력·임영준 등이 연기한다. 6월28일까지 (02)319-8020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글수정
  • 글삭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