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그림같은 정원, 게으른 산책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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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9.05.11 09:4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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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개장하는 충남 연기의 베어트리파크에 다녀왔다. 베어트리파크는 동물원을 겸한 수목원이다. 희귀종의 번식과 연구목적으로 설립된 천리포수목원 등과는 달리 거제의 외도 해상공원이나 밴쿠버의 부처드 가든을 연상시킨다. 물론 부처드 가든 수준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조경수는 잘 다듬어져 있다. 이 때문에 희귀한 나무나 꽃을 찾아다니는 전문가보다는 그저 아름다운 정원에서 머리나 식히고 가자는 보통 사람들에게 더 어울려 보였다. 수목원에는 동물도 꽤 많다. 반달곰 150마리를 비롯해 사불상, 엘크, 공작, 사슴, 금계와 은계 등이 있다. 비단잉어도 4000마리나 되는데 좋은 품종의 종모어는 수천만원을 호가한단다.

수목원 내부엔 잘 생긴 가이스카 향나무가 유난히 많았다. 과거엔 꽤 비싼 정원수였다. 대학본부 건물 앞이나 중·고교 교무실 앞에 한두 그루씩 심어져있던 그 향나무 말이다. 향나무는 몇 그루나 될까? “1만그루 정도 될 거예요. 최소 수령이 40~50년부터 150년 정도 되는 것까지….” 성우경 부원장은 “회장님이 수십년간 공을 들여온 수목원”이라고 했다. 회장님이란 대림그룹 이재준 회장의 동생인 이재연 전 LG그룹 고문(79)이다. 베어트리파크는 재벌가의 개인정원이었다. 이 회장의 부인은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여동생인 고 구자혜씨. 베어트리파크는 4월 중 개장할 예정이었으나 구씨가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개장을 미룬 것이다. 현재 대표는 아들 이선용씨(48)다. 이 회장은 젊은 시절부터 주말이면 수목원에 머물며 꽃과 나무를 다듬었다고 한다. 이 회장이 처음 나무를 키운 것은 1963년부터라고 한다. 당시엔 경기 의왕에 송파원을 개원했다. 장호원에도 나무를 심었다가 79년부터 충남 연기군으로 수목원을 옮겨왔다고 한다. 수목원은 10만여평. 1000여종 40만본의 꽃과 나무가 있다.성 부원장은 수목원은 돈 버는 사업은 아니라고 했다.

어쨌든 나무나 꽃에 빠진 사람들은 못말린다. 카렐 차페크는 <원예가의 열두달>에서 “진정한 원예는 목가적인, 세속을 버린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것은 그만두려 해도 그만둘 수 없는 하나의 정열이다”라고 썼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예쁘고 귀여운 꽃을 심고는, 애쓰면서 어렵고 힘겹게 가꿔 본 적이 없는 사람은…(중략), 이런 식물들을 한 번도 재배한 적이 없는 사람은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 단지 그런 인간은 황량한 지구가 어떤 부드러운 사랑의 한순간에 탄생시킨,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 위로하고 싶을 뿐이다.”([원예가의 열두달]) 원예가들은 이렇게 고집쟁이다. 실제로 이 회장이 일본까지 달려가 양란재배기술 등을 직접 알아오기도 했단다.

가장 볼 만한 곳은 약 500평의 유리온실인 만경비원과 오색연못, 베어트리 정원, 반달곰동산이다. 만경비원은 인도네시아에서 들여온 나무화석을 배치하고 이곳에 분재와 꽃, 나무를 적당하게 섞어놓았다. 분재로 꾸민 정원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가든에 대해 애착이 많기로 유명한 영국인들은 이런 스타일의 록가든을 좋아한다. 록가든은 큰 정원이 아니라 바윗돌 사이에 꽃과 나무를 아름답게 배치하는 것으로 알프스 가든이라고도 한다. 차페크는 알프스가든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를 잔디며 꽃을 하나라도 다치지 않기 위해 좁은 공간에서 엎드리고 웅크린 채 흙을 묻혀가며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는 재미를 주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물론 이곳은 전문 조경사들이 했다. 꽤 예쁘다.

입구의 오색연못은 비단잉어 500마리를 풀어 놓은 곳이다. 자그마한 인공섬에 정자를 세우고 다리를 놓았는데 다리 위에서 박수를 치면 잉어가 먹이를 주는 줄 알고 몰려든다. 베어트리 정원은 에버랜드의 포시즌스 가든과 비슷하다. 가운데 독일가문비 나무가, 그 옆에는 오엽송이란 나무가 서있다. 위로는 수목원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초등학생 아이와 같이 간다면 반달곰 동산이 인기가 높을 듯하다. 홋카이도 노보리베츠의 곰 동물원을 떠올리게 한다. 100마리 가까운 곰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앉아있는 놈, 누워있는 놈, 쳇바퀴를 돌리는 놈, 철제구조물에 올라가있는 놈…. 곰들이 다양하다. 이밖에도 고종수 작가가 곰의 일생을 조각으로 꾸며놓은 곰조각공원, 수목원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 얼굴은 말, 뿔은 사슴, 몸은 당나귀, 발굽은 소를 닮은 사불상 같은 희귀동물도 있다.

베어트리 가든은 잘 꾸며져있다. 하지만 창의성은 조금 부족해 보인다. 이를테면 오색연못의 다리와 정자는 이시카와현의 리쓰린정원을 떠올리게 하는 일본풍이다. ‘왜색이 다 싫다’는 것이 아니라 뒤에 있는 남유럽풍의 웰컴하우스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씩 따온 것들이 이리저리 섞여있다. 차라리 건축가의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건축물이나 기념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랬다면 수목원이 더 돋보였을 것이다. 아니면 동물원 대신 조그마한 미술관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어땠을까 상상도 해봤다. 일본의 아다치 미술관처럼 아름다운 정원을 쉬엄쉬엄 걸어보고 예술작품도 감상할 수 있는 그런 공간 말이다. 베어트리파크는 정원과 동물원이 섞인 작은 테마파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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