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뜰정보] 거기, 600년 한양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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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9.05.07 08:5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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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아는 방법 중 하나는 성곽길을 걸어보는 것이다. 성곽에서 서울을 보면 “왜 서울인가?”가 보인다. 산으로 둘러싸인 조선의 수도 한양이 어떤 곳이었는지, 경복궁 자리터는 어땠는지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풍광도 좋아서 한나절 걷기여행으로 이만한 곳도 없다. 그럼 성곽의 길이는 얼마나 될까? 조선시대엔 18.2㎞였다. 지금 남아있거나 복원된 성곽은 10.4㎞에 불과하다. 문화재청과 서울시는 서울 도심 등 복원이 불가능한 5.1㎞를 제외하고 나머지도 모두 복원할 계획이다.

성곽길에서도 경관이 좋다는 와룡공원~창의문 코스를 다녀왔다. 경복궁과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 자락이다. 한양의 진산이었는데도 북악산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많다. 하기야 서울에 성곽이 있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는 마당이니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조선시대의 서울, 즉 한양은 바로 이 성곽 안을 뜻했다. 사극에 나오는 도성이 바로 한양이다. 북악산이 서울을 조망하기 좋은 것은 바로 임금의 눈으로 서울을 볼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기점은 성북구 와룡공원으로 삼는 게 좋다. 이 코스가 훨씬 쉽다. 창의문에서 오르는 길은 성곽길 꼭대기까지 가파른 계단길이어서 버겁고 힘들다.

운동 삼아 오르려면 굳이 성곽길 외에 다른 코스도 많다. 입구부터 경관이 좋았다. 성 밖 잘생긴 산자락 아래엔 성북동의 고급주택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반대로 성곽 안쪽은 서민주택이 많다. 예전엔 성안 사람을 ‘성안 분’, 성밖 사람을 ‘성밖 놈’으로 나눠 불렀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4대문 안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자랑거리였다. 세상은 변했다. 말바위 쉼터에서 성곽 안으로 놓인 나무육교를 넘어서 올라가면 안내소가 나온다. 안내소에서 신청서를 작성해서 제출하면 출입증을 준다. 원래 여기부터 숙정문을 지나 창의문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2007년 봄 개방됐다.

1968년 김신조가 특수부대원 30명과 함께 침투했다. 자하문에서 경찰의 검문에 들켰고, 수류탄을 터뜨리고 총격전도 벌였다. 성곽길엔 1·21 소나무가 있다. 총탄자국을 톱밥으로 때워놓았다. 어쨌든 이후 39년 동안 일반인의 출입은 엄격하게 금지됐다. 성곽길엔 군인으로 보이는 경비원이 배치돼 군사시설에 대해선 촬영을 하지 못하게 한다. 숙정문은 1·21 소나무 못미처 있다. 숙정문은 쉽게 말하면 북대문이다. 조선시대엔 이 문을 항시 막아놨다고 한다. 출입을 못하게 관원들이 지켰다. 남대문을 막고 숙정문을 열었을 때는 가뭄이 심할 때뿐이었다. 대체 가뭄과 북대문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남쪽은 양기, 북쪽은 음기가 많다고 믿었다. 그래서 가뭄이 심하면 음기를 통하게 해 비가 오기를 바랐다. 이게 바로 풍수다.

도시도 풍수지리설에 따라 만들었다. 소나무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북악마루 조금 못미처 탁트인 공터가 나오는데 바로 여기서 ‘풍수설이란 이런 거구나’를 느낄 수 있다. 서울이 어떤 자리에 세워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포인트다. 광장공사를 하고 있는 세종로와 경복궁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도심을 둘러싼 주변의 산들도 잘 보인다. 풍수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무지렁이라도 “거 참, 서울 포근하고 아늑하게 보인다”고 할 만하다. 그럼 동서남북을 보자. 왼쪽 좌청룡은 대학로 뒷산격인 낙산이다. 우백호는 인왕산이다. 남주작은 남산이 되겠다. 경복궁에서 보자면 북현무는 ‘내가’ 밟고 서있는 백악산이다. 서울을 둘러싼 산은 한꺼풀이 아니다. 홑꽃이 아닌 겹꽃처럼 이중으로 수도를 싸고 있다. 인왕산, 남산, 북악산, 낙산 너머에 북한산, 덕양산, 관악산, 용마산이 겹겹이 서있다. 최준식 교수는 <서울 문화순례>란 책에서 “중국은 수도에 정궁을 지을 때 북경에 있는 자금성의 경우처럼 수도 한가운데 궁궐을 짓는다. 그런데 조선은 그 예를 따르지 않고 풍수설에 입각해서 서북쪽으로 치우쳐서 경복궁을 지었다”고 썼다. 황제는 세상의 중심이 자신이기 때문에 궁궐을 한가운데 배치했고, 조선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게 도시를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철학이 서로 다르다. 조금 더 오르면 성곽길의 정상인 백악마루다. 포대가 있던 자리로 사방팔방이 다 보인다. 오른쪽 인왕산이 특히 잘 생겼다. 약간 베이지색이 섞인 듯한 바위절벽은 미끈하다. 바위표면을 자세히 보면 그 위로 성곽이 놓여있다.

바로 탕춘대 성곽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 수도방어를 위해 성곽보강이 필요해 탕춘대성을 세웠다고 한다. 서울성곽과는 별도로 북한산성과 이어진단다. 성곽길은 조선을 아는 첫걸음이다. 1년 동안 서울 성곽길을 답사한 녹색연합의 노상은씨는 “성곽길이 서울의 생태축”이라며 “경주하듯 걷는 길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 생태, 경관 같은 자원을 만나는 길”이라고 했다.성곽에선 서울이 제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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