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뜰정보] 동·서양의 ‘개념’ 소통은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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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9.05.06 10:4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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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사 연구는 개념의 역사와 맥락을 고찰하는 작업이다. 단순히 어원사나 개념 도입 경로사를 연구하는 게 아니다. 개념은 역사 속 주체들의 치열한 사고 과정의 산물이다. 개념을 분석한다는 것은 개념을 매개로 정치·사회의 역사와 전개과정을 분석한다는 뜻이다. 개념사 연구 없이 인문학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연구가 불가능한 이유다. 서구에선 수십년 전부터 심도있는 연구가 이뤄져온 개념사가 국내에 자리잡기 시작한 지는 10년 안팎. 지난해 9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개념사 국제학술대회’가 열리면서 본격적으로 조명을 받았다. 학계에선 특히 하영선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를 중심으로 한 ‘전파연구’ 모임과 ‘한국개념사총서’ 작업 등을 진행 중인 한림대 한림과학원(원장 김용구)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한반도에서 일어난 개념들의 충돌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왔는데 최근 그간의 연구 성과들을 담은 책 출간과 학술대회가 잇따르고 있다.

<근대한국의 사회과학 개념 형성사>(창비)는 1995년 시작된 ‘전파연구’ 모임이 15년 동안 한국 사회과학 개념들의 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다. 문명·권력·부국강병·세력균형·평화·국민·민주주의·경제·개인 등 근대 서구의 개념들이 19세기 한국에 전파된 후 변형·수용된 과정을 밝히는 동시에 개념들을 둘러싼 치열한 담론싸움을 역사적으로 탐구했다. 책에 따르면 주권 개념이 처음 전해진 것은 윌리엄 마틴의 국제법 번역서인 <만국공법>의 전래와 함께였다. 신욱희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는 “당시 주권 개념의 도입과 사용은 청을 중심으로 한 사대와 조공의 전통질서에서, 조약과 국제법의 서구 근대질서로의 이전을 의미했고, 이는 ‘세계관의 충돌’ 형태를 띠었다”고 밝혔다. 그는 “개념으로서의 근대적 주권이 실제 현실과 큰 차이가 있음을 알게 해준다”면서 “19세기 조선은 대외적이고 형식적인 주권에 기대게 되었지만 이와 관련된 대내적이고 실질적인 주권의 조건은 충족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19세기 일본에서 ‘individual’을 옮긴 ‘개인’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 개화파였던 박영효와 유길준은 대체로 그 의미를 파악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개인이 당시 현실적인 주체로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석근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강사는 “개인의 과제는 자주독립, 부국강병 등의 절박한 과제 뒤념의 문명사적 각축, 서양 근대개념 도입의 국제정치적 싸움, 국내 정치·사회 세력 간 대결 등 개념논쟁의 삼면전에서 완패했다”면서 “개념화의 21세기적 식민성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채 21세기의 변화를 어설프게 개념화한다면 19세기적 난관을 반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한림대 한림과학원은 지난 24일 한국관광공사에서 ‘개념소통의 철학적 기반과 역사적 경험’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동·서양의 개념론을 비교하고 소통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자리였다. 이경구 한림과학원 HK교수는 “조선 후기 북학파의 타자 인식은 근대와 탈근대, 일원적 가치와 다원적 가치가 혼재하는 현재에 나와 타자 사이의 소통에 대한 긍정적 전망을 보여준다. 나의 존재가 타자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우주, 자연, 인간, 개인을 포함한 영역에서 고민하고 상호 의존에 대한 사유를 정밀히 전개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림과학원이 지난해부터 내놓고 있는 ‘한국개념사총서’ 시리즈 세 번째 <헌법>(소화)도 최근 출간됐다. 김효전 동아대 교수가 19세기 중엽 ‘만국공법’과 함께 전래된 ‘헌법’ 개념이 종래의 개념과 만나 충돌·침투·갈등·저항을 거치며 선망·수용·모방·편입으로 이르는 과정을 역사적·실증적으로 추적했다. 김 교수는 “헌법 개념은 국가의식이나 국가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서 “서구의 헌법 또는 입헌주의 개념은 조선의 정치현실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수구 반동이나 전제군주권의 강화로 좌절되었지만 권리사상이나 민권의식의 보급이라는 시대의 도도한 흐름은 막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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