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잘만든 창극, 서양 뮤지컬 부럽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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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9.05.06 10:4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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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의 대표작 ‘청’이 50회 공연과 6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판소리 ‘심청가’를 음악극으로 재구성한 ‘청’은 2006년 9월 전주 세계소리축제에서 초연됐고, 다음달 2일부터 9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제47회 공연의 막을 올린다. 국립창극단 유영대 예술감독(54·고려대 교수·사진)은 “이번 공연으로 6만 관객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한다”며 “뮤지컬 ‘명성황후’가 10년간 공연되면서 100만 관객 기록을 세웠지만, 창극이 4년 만에 이런 기록을 세운 것은 처음”이라면서 창극이 ‘청’을 통해 부활했다고 자평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고작 200명 정도의 관객 앞에서 공연했던 게 현실이었습니다. 거의 고사 직전까지 갔었지요. 그래서 ‘우리 시대의 창극’을 고민해야 했습니다. ‘청’은 음악극으로서의 재미와 대중성, 세련된 무대 등 새로운 창극의 요소를 제대로 갖췄습니다. 우리 창극도 잘만 만들면 서양 뮤지컬에 뒤지지 않습니다.” 창극의 뿌리는 판소리다. 창극 초창기의 원각사 무대는 기존의 판소리 다섯바탕을 부분창으로 나눠 공연했고, 1908년에는 최초의 창작 창극이었던 ‘은세계’가 공연됐다. 창극은 1950년대 말까지 가장 인기있던 대중예술이었다. 유 감독은 “흥행업자들이 돈을 가마니로 담아갔을 정도로 창극의 인기가 대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인기는 60년대로 접어들면서 시들해졌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새로운 대중문화가 유행하면서였다. 그러다가 62년에 국립창극단이 창단됐다. 설 자리를 잃은 창극을 국가가 보호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그렇게 창극의 주도권이 민에서 관으로 넘어갔고 관객들은 점점 줄었다.

“가끔 창극을 일본의 가부키나 중국의 경극과 비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가부키나 경극은 300년 넘는 세월 동안 양식화됐죠. 하지만 창극의 역사는 이제 겨우 100년이거든요. 그래서 가변적으로 새로운 양식을 만들 수 있고 해석도 자유롭습니다. ‘청’은 심청이가 주인공이지만, ‘효녀’라는 기존의 틀을 벗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고뇌,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의 갈등과 번민, 이런 것들에 초점을 맞췄지요.” 무대도 현대적이다. 뮤지컬 무대에 버금갈 정도로 화려하고 연극적이다. 경사진 무대, 회전 무대 등으로 긴장감과 속도감을 더했다. 그뿐 아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역시 음악이다. ‘청’은 기존 창극들이 고수해왔던 수성(隨聲)음악을 배제했다. 창자(唱者)가 소리를 하면 악기가 즉흥으로 화답하는 수성이야말로 우리 음악의 본류. 하지만 유 감독은 이 원칙을 과감히 뒤집었다. 국악관현악단이 지휘자의 지시에 따라 악보를 보며 연주했고, 소리꾼(배우)들도 당연히 지휘자의 손끝을 바라봐야 했다. 논쟁의 여지가 다분한 처방이었다.

“말도 마십시오. 창극 배우들과 지휘자가 한바탕 붙었지요. 우리가 언제 지휘자를 보고 소리했느냐, 그냥 예전처럼 수성으로 가자… 배우들의 불만이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대중적 음악극으로 가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습니다. 서주와 간주를 적절히 넣고, 선율에 화성을 풍부하게 썼지요. 관객들은 이런 음악을 훨씬 좋아합니다.” 관객 반응이 가장 뜨거운 장면은 1막의 마지막이다.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 홀연히 다시 나타나 해금 반주에 맞춰 객석을 처연하게 바라본다. 그때 하늘에서 꽃 한 송이가 나비처럼 떨어진다. 유 감독은 “몸은 죽었지만, 삶에 대한 미련 때문에 차마 떠나지 못하는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2막에서 해금과 첼로의 이중주에 맞춰 심청과 아버지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장면에서는 객석 곳곳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작창 안숙선, 작곡·지휘 이용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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