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그래도 꿈 꿀수 있다” 현실에 발 디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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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9.05.01 09: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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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한아씨(27)는 ‘젊은 작가’에 대한 통념을 여지없이 깨버렸다. 흔히 ‘올빼미형’으로 알려진 작가들의 생활과 달리 그는 보기드문 ‘아침형 작가’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오전부터 글을 쓰고 저녁에는 잠자리에 든다. 성실할 뿐 아니라 열심이다.소설을 쓰기 위한 취재와 공부는 기본이며 ‘위장 취업’도 불사한다.

정씨의 소설도 마찬가지다. 현실과 한뼘쯤 거리를 둔 환상의 세계를 그리거나 이미지 중심의 서사를 구사하는 ‘요즘 소설’과 달리 그의 소설은 현실에 발을 붙이고 모순과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세계의 어두운 모습을 사실적이고 핍진하게 그려내면서도 삶에 대한 반짝이는 희망과 긍정을 놓지 않는다.

2005년 등단, 2007년 <달의 바다>로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은 정씨가 첫번째 소설집 <나를 위해 웃다>(문학동네)를 펴냈다. 고통에 찬 현실 속에서도 삶의 희망을 잃지 않는 따뜻한 소설 8편을 엮었다.

“성장에 대한 소설입니다. 칼에 찔렸을 때, 그것을 맞받아치지 않고 부드럽게 껴안는 이야기예요.” 표제작이자 등단작인 ‘나를 위해 웃다’에 대한 작가의 설명은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로도 읽힌다. 성장을 멈추지 않는 거인병에 걸린 ‘엄마’는 비정상적인 키 때문에 버림받고 고통받지만 오히려 “크게 되는 것만은 나의 의지”였다며 삶을 긍정한다. 그의 큰 키는 삶이 준 고통을 온몸으로 앓은 ‘성장통’의 결과물인 것이다.

‘아프리카’는 성매매 여성의 이야기. 부모에게 버림받은 주인공은 집창촌으로 흘러들어와 몸을 팔지만 정부의 단속으로 그곳마저 폐쇄될 위기에 처하면서 다시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된다. “세상을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왠지 지고 싶지는 않아서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고 말하는 주인공은 현실의 고통을 세상을 건너기 위한 ‘뜨거운 징검다리’로 받아들인다.

‘아프리카’를 쓰기 위해 정씨는 직접 성매매 여성들이 다니는 피부관리실에 보조로 ‘위장 취업’하기도 했다. “집창촌의 일상과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었어요. 전업작가로서 경험의 폭이 제한돼 있다 보니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는 최선을 다해 취재하는 편입니다.” ‘천막에서’는 방수포 회사에 근무하는 주인공을 통해 세계화 시대 자본주의의 모순을 솜씨있게 그려낸다. 동남아를 휩쓴 ‘사이클론’ 때문에 구호단체의 천막 수요가 늘자 회사는 구호단체에 비싼 값으로 천막을 팔아 대형 마트의 납품가 인하로 인한 적자를 메우고, 마트 납품가 인하를 반대했던 주인공은 실직한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처한 막막한 현실에 마땅한 해결책이나 탈출구는 없다. 이들은 아프리카에 관한 책이나, 향이 좋은 마테차 한 잔에서 삶에 대한 희망을 찾는다. 미래를 낙관할 수 없지만 생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 낙천성으로 퍽퍽한 삶을 건너간다. 정씨는 “처음부터 선택의 여지없이 불리한 상황에 놓인 인생들이 고통에서 끝나지 않고 어디서 의미를 찾아야 할지를 고민했다. 정말 아름다운 것은 아직 오지 않았고, 그것을 꿈꿀 수 있는 능력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정씨는 개인적으로 현실의 고통을 해결하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사회적 해결 방법으로 관심을 확장한 장편소설을 집필 중이다. “규격화된 세계에 살면서 잊어버리거나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회의 이면에 대해서 독자들이 불쾌하더라도 기꺼이 보도록 만드는 게 작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많이 공부하고 있어요.” 20대를 온통 소설과 세상에 대한 성장통을 앓으며 보낸 작가의 또 다른 모습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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