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갑판엔 왁자한 별빛, 올레엔 설레는 봄빛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9.04.28 09:04:03
  • 조회: 10610
여행은 방법이다. 여행만큼 ‘어떻게’가 중요한 것은 없다. 여행방법에 따라 감동도 재미도 달라진다. 같은 목적지라도 기차를 타고 가는 여행과 자동차를 타고 가는 여행은 완전히 다르다.

△ 배 타고 제주 가기
배 타고 제주도에 가봤다. 인천에서 오하마나호라는 배가 제주까지 다닌다. 지중해를 오가는 호화크루즈와는 다르다. 그렇다고 정기 여객선 정도로 표현하기엔 부족하다. 여객선+유람선+화물선+…. ‘짬뽕 크루즈’ 정도로 보면 되겠다. 오후 7시.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배가 떠났다. 뱃고동이 울리자마자 서해의 일몰이 아름다우니 선상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붉은 햇덩이는 뿌연 해무 속으로 아쉽게 사라졌지만 봄날 저물녘 갑판은 선선했다. 배는 빠르지 않았다. 한창 공사 중인 인천대교 아래를 지나 어둠 속에서 파도를 밀고 갔다. 캔맥주를 사들고 온 등산객과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갑판에 삼삼오오 모여 앉았다. 오후 8시. 보물찾기가 시작됐다. 용인에서 온 중학생을 위해 열리는 행사.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복도를 굴러다녔다. 오후 10시.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선상에서 보는 불꽃놀이는 특별했다. 선사 측은 매번 하는 행사는 아니고 승객이 절반 이상 되거나 단체여행객이 많을 경우 하는 ‘서비스’란다.

여행의 묘미는 ‘설렘’과 ‘어울림’이다. 소풍 가는 날보다 가기 전날 배낭을 싸는 게 더 즐겁다. 배 타고 가는 여행도 여기에 비교할 수 있겠다. 친구들과 부대끼는 여행이다. 여럿이 모여 한판 놀아봐야겠다는 사람에게 적당하다. 빠르고 쾌적하며 편안한 여행을 원하는 사람에겐 불편하다.

배 타고 가는 게 경제적일까? 패키지는 싸다. 저가항공도 왕복 15만원 정도 하는데 2박3일(선내 2박)에 왕복 9만9000원이다. 가장 많이 찾는 고객층은 한라산 등산객, 그 다음은 수학여행단이다. 이튿날 오전에 제주에 도착하면 버스편으로 성판악으로 이동해 한라산을 등반하고 다시 배로 돌아온다. 점심 한 끼도 제공된다. 청해진해운 김영붕 상무는 “한라산뿐 아니라 제주도 올레길과 연계한 패키지 상품도 개발 중”이라고 했다. 주말에 떠나는 상품은 왕복 12만9000원이다.

배는 꽤 컸다. 6300t급 오하마나호다. 오하마나란 경상도 사투리로 ‘아니 벌써’란 뜻이라고 한다. 크루즈가 얼마나 고급인지는 승객 인원당 승무원 수를 보면 안다. 호화크루즈는 2대1~4대1 정도. 오하마나호의 승무원은 30명에 불과하다. 크루즈라기보다는 여객선 수준이다. 수영장이나 ‘자쿠지’ 같은 시설은 없다. 가족실과 로열실은 화장실 겸 객실 내에 샤워룸이 따로 붙어 있다. 3등실은 찜질방을 연상시켰고, 공동화장실을 이용했다. 온수는 잘 나왔다. 기업체 구내식당처럼 식판을 쓰는 식당도 한산했다. 알뜰 여행족들은 식사 때 식당보다는 컵라면을 사 먹었다. 맛 때문이라기보다는 어울려 먹는 재미 때문일 것이다.

배는 새벽녘에 추자도 해협을 지났다. 해무가 끼어 일출은 볼 수 없었다. 손깍지를 낀 연인들만 갑판에 앉아 검은빛에서 푸른빛으로 물들어가는 바다를 바라봤다. 8시30분. 제주항. 밤새 객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새벽녘에야 눈을 붙였음직한 여행자들은 토끼눈으로 버스에 올랐다.

△ 올레길 걷기
제주도에선 한라산 대신 올레길을 택했다. 2007년, 2008년 최고의 제주 히트상품은 ‘제주 올레’다. 서귀포시청은 2008년 올레길을 찾은 사람이 3만명 정도라고 했고, 올레사무국은 올레여행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했다. 제주도의 해안 구석구석을 훑으며 제주도를 다시 보기엔 올레만 한 게 없다. 현재는 12개 코스가 개발됐다. 올레사무국은 가장 인기 있는 코스를 “성산포 코스와 외돌개 코스”라고 했고, 제주토박이는 “외돌개”를 첫손에 꼽았다.

7코스 외돌개~돔베낭길~월평포구길을 택했다. 절벽을 따라 이어진 길은 제주사람들이 오가던 산책로였다. 서명숙 제주 올레 이사장은 <제주 걷기 여행>에서 돔베낭길을 두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책로’라고 썼다. 그만큼 풍광이 뛰어나다. 절벽 가장자리를 따라 길이 나 있다. 산책로가 파도처럼 섬의 옆구리로 밀고 들어왔다가 등대처럼 바다로 쑥 밀고 나간다. 푸른 봄바다가 발밑에 펼쳐지니 걷는 기분이 난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솔숲은 서귀포 초·중·고교생들의 사철 소풍장소였다. 시내중심가의 학교에서 외돌개까지 가는 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어린 시절에는 미처 몰랐다. 동무들과 재잘재잘, 와글와글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으니. 이제 어른이 되어, 마흔이 넘고 오십 줄에 들어서서 외돌개로 가는 길을 홀로 걷고 있노라면 절로 눈물이 난다.’(<제주 걷기 여행>)

나비 잡으러 숲을 뛰어다녀봤던 40대 이상이라면 올레길에선 그런 옛 시절을 떠올릴 수 있다. 눈만 즐거운 게 아니라 풀냄새도 느끼게 되고, 길가의 소나무도 만져볼 수 있다. 여행자의 숨구멍이 모두 열려서 자연을 받아들이게 된다. 여행은 과정이다. 즐거움이 목적지에만 있지 않다. 방법이 다르면 즐거움도 달라진다.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글수정
  • 글삭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