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뼈가 자란 곳 다시 서다니 꿈만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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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9.04.27 09: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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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 노인과 그의 아들 맹 진사가 서울 명동 한 복판에 나타났다. 원로배우 장민호(85), 신구(73)의 얘기다. 두 사람은 34년 만에 복원돼 6월5일 문을 여는 명동예술극장의 개관작 <맹진사댁 경사>(이병훈 연출)에 나란히 출연한다. 아버지와 아들 역으로 늙은 몸은 매 한가지이지만 청춘을 불사른 옛 무대에 다시 선다는 설렘과 열정은 건각의 기세다. 지난 16일 <맹진사댁 경사>의 첫 연습을 위해 극장에 온 두 사람은 감회에 젖었다. 이날 장민호 선생은 눈꺼풀을 올리는 간단한 수술을 하고 나왔다. 이 모습을 본 신구는 “선생님 저도 요즘 할까 생각했는데, 잘 하셨어요”하며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관객 맞이를 앞둔 배우의 마음이 엿보였다.

“그때는 공연이 있든 없든 배역이 없는 사람도 극장에 나와 주변을 맴돌았지. 극장에서 아예 먹고 자고 했으니까. 거리에는 문인, 화가, 배우가 넘쳐났어요. 명동에 안 나오는 사람은 ‘문화인’ 취급을 못받았어. 그런 분위기에 발맞춘 공연들이 무대에 올랐던 거예요.”(장민호)

“극단 실험, 자유, 광장에 있다가 1971년 국립극단 연구생으로 들어가 명동 무대에 섰던 것이 까마득한 옛 일입니다. 한 10여년 연극 하다가 TV쪽으로 쓰러졌으니 장 선생과 비교하면 일천하죠. 40대 때 장 선생님은 눈 마주치기도 무서운 선배였어요.”(신구)

72년 <포로들>에서부터 4년 전 공연된 <떼도둑>까지 두 사람은 한무대에 간간이 서왔다. 신구는 틈틈이, 장민호 선생은 TV·영화 등에도 출연했지만 연극을 우선시해왔다.
“명동극장 시절에 연기 잘하는 사람은 TV에도 출연하느라 바빴어. 그때는 녹화나 편집 없이 생방송이었으니까. 그때 안 팔린 배우는 좀 따분한 배우였지. 신구씨는 깍뜻하게 제 몫을 해낸 연기 잘하는 후배였어요.”(장민호)

극장에 들어선 두 사람은 로비와 객석 등을 꼼꼼히 살펴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이 극장을 살렸다는 게 꿈 같아요. 그냥 있었으면 한낱 빌딩에 지나지 않았을 텐데….”(신구) “내 뼈가 자란 곳을 남산의 새 극장으로 이사간다고 뒤돌아 보지도 않고 갔었는데, 이제 이곳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연이 오르는 무대로 하나의 잣대가 됐으면 해요.”(장민호)

두 사람은 오후 4시 지하 1층 연습실로 향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두 사람은 연방 손목시계를 살폈다. “연습에 늦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연습실에는 마치 한국 연극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모여있는 듯했다. 개관작의 의미에 맞춰 노 배우부터 현재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배우와 오디션으로 뽑힌 새내기가 조화를 이뤘다.

장민호 선생이 일어서서 배우들을 향해 한마디했다. “장소는 2~3년 안에 쉽게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배우는 다르다. 적어도 10년은 지나야 발이 무대에 닿지 않나 싶다. 격조 높고 품위있는 인격자들이 모여서 공연하는 극장이 될 수 있도록 해달라.”

대본 읽기로 시작된 첫 연습. 장민호 선생은 연필과 돋보기를 꺼내들었다. 신구는 겉옷을 벗었다.
“(맹진사) 얘! 아무도 없느냐, 아무도 없어? 헛! 내가 어떤 길을 다녀왔다구 쥐새끼 한마리 얼씬 않느냐”. 인왕산에서 방금 내려온 호랑이의 포효처럼 맹 진사의 대사는 쩌렁쩌렁 연습실에 울려퍼졌다. 후배 연기자들은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맹 노인의 우스운 대사에서는 젊은 배우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호흡이 다르니 재미있을 수밖에!” 누군가 얘기했다. 절름발이 신랑 미언이가 멀쩡한 선남으로 등장하고 갑분 아씨 대신 입분이가 꽃단장을 하고, <맹진사댁 경사>는 이렇게 역사의 한장을 시작했다. 화창한 봄날 명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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