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일그러진 얼굴·벌거벗은 육체… 소외의 고통을 견뎌낸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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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9.04.22 09:2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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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할렘의 작은 아파트 안에서 막 소리치고 뒹굴었어요. 돈은 없고 말은 안 통하고 마음은 증오로 가득 찬 시절이었지요. 그런 나를 그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오치균) “독일 유학 시절 인종차별을 느끼면서, 그들과 무엇이 다를까 고민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식당에서 남자도, 여자도 아닌 형태를 그렸고 그것이 작품으로 발전했지요.”(변웅필)

내면의 고통을 극복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된 자화상 전시 2개가 열리고 있다. 뉴욕·서울·사북·산타페 등 풍경 시리즈로 유명한 중견작가 오치균(53)의 자화상 모음전 ‘소외된 인간’(16일~5월10일 갤러리현대), 자신의 얼굴을 일그러뜨림으로써 정체성의 의미를 묻는 변웅필(39)의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 1과 1/4’(7~26일 갤러리현대 강남)이다.

■오치균 ‘소외된 인간’
오치균의 자화상은 음울하다. 침대와 조명등, 텔레비전 밖에 없는 좁은 실내에서 벌거벗은 남자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누워 있거나 쪼그려 앉아 있다. 머리를 감싸 쥐거나 절규하는 장면도 있다. 남자의 온몸에서 고통이 뚝뚝 떨어지는 듯하다. 거친 붓질은 남자의 삭막한 내면을 표현하며 색조도 중간톤으로 가라앉아 있다. 이 작품들은 작가가 1986~89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대학원 유학 시절에 그렸다. 90년 귀국전시 때 몇 점 선보였지만 당시 작품을 집중적으로 선보이기는 처음이다.

“대학(서울대) 때부터 고학을 했는데 미술학원 운영으로 어렵사리 만든 유학자금을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사기당해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믿었던 사람에게요. 돈은 없지, 언어는 통하지 않지, 증오는 끓어오르지…. 유학 시절이 지옥 같았어요.” 그는 방안에만 처박혀 있었다. 무엇이든 그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몸만이 오브제가 됐다. 그의 부인은 남편이 몸부림치는 장면을 수없이 사진으로 촬영했고, 그중 몇 장면이 그림으로 탄생했다. 고통에서 나온 모노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 시절이 떠올라서 괴롭다”고 한다.

자화상 시리즈는 최근 오치균의 작품과 거리가 있다. 이젠 인체가 아니라 풍경으로 옮아갔고, 붓을 던져버린 채 손가락으로 그린다. 색조도 훨씬 밝아졌다. 그의 작품은 최근 몇년간 국내외 컬렉터들의 이목을 끄는 블루칩이다. 그런 오치균의 인간적 내면을 드러내는 이번 전시는 ‘소외된 인간’이란 주제처럼 인간의 보편적 고통의 형상으로 다가온다.

■ 변웅필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 1과 1/4’
변웅필도 유학 시절에 스스로의 정체성을 고민했다. 그는 대학(동국대) 졸업 직후인 96년부터 2006년까지 10여년간 독일 뮌스터에 체류했다.
“인종차별을 당하다 보니, 어떤 부분이 사람을 차별하게 만들까 고민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눈썹·머리카락·옷 등 개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표지를 없애버리고 손으로 얼굴표정마저 자의적으로 망가뜨린 작품을 시도하게 됐습니다.” 유학 초기,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시간 날 때마다 노트에 단순한 선으로 인물을 그렸다. 드로잉 속의 인물은 남자도, 여자도, 어른도, 아이도 아니었다. 디테일을 없애고 단순한 선으로 표현한 드로잉은 버리고 비움으로써 특정한 개인의 얼굴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의 얼굴이 된다.

그의 자화상은 사진과 회화, 평면과 설치의 경계선에 걸려 있다. 전시장은 두 개로 나뉘어 있다. 한쪽에는 180×150㎝의 큰 그림 16점이, 다른 한쪽에는 큰 그림의 4분의 1 크기(90×75㎝)인 작은 그림 16점이 걸려 있다. 손가락으로 일그러뜨려 각기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16종의 자화상들은 크기만 다를 뿐 똑같은 순서로 양쪽에 걸려 있다. 작가는 셀프카메라로 찍은 자신의 얼굴을 빔 플레이로 캔버스에 투사해 드로잉을 한 후 유채물감으로 칠한다. 조각을 전공한 그는 일관되게 가로로 붓터치하며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만든다’는 느낌으로 완성해 나간다.

“회화의 오리지널리티를 질문하고 싶었습니다. 빔 플레이를 활용해 드로잉을 하면 얼마든지 같은 작품이 나오잖아요. 크고 작은 한 세트의 작품을 만든 건 복제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똑같이 그려진 큰 그림과 작은 그림을 따로따로 본 관객들은 두 그림이 서로 다르다고 느낍니다.”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매체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작가는 묻는다. “지금 벽에 걸린 건 내 모습인 동시에 관객 각자의 모습입니다. 5년 후 똑같은 작업을 하더라도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 달라졌을 텐데 그것이 꼭 나라고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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