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국보 무구정경의 제작연대는 742년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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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9.04.16 09: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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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불국사 석가탑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하 무구정경·국보 제126호)이 발견됐다. 무구정경은 석가탑이 건립된 751년(경덕왕 10년) 이전에 제작된 세계 최고의 인쇄물이라는 흔들림 없는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는 중국 둔황 출토 금강경(868년)보다도 110년 이상 앞선 것. 당대에 건립된 석가탑이 이후엔 한번도 중수된 적이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런데 1966년 발견 당시 무구정경과 함께 발견된 묵서지편(墨書紙片)이 판독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변하고 만다.

떡진 상태로 보관돼 있던 묵서지편은 ‘무구정광탑중수기’와 ‘보협인다라니경’ ‘서석탑중수형지기’ 등 4종의 문건으로 이뤄져 있었다. 그런데 이 문건을 판독한 결과 석가탑이 고려시대인 1024년과 1038년 두차례에 걸쳐 수리된 것으로 일단 밝혀졌다. 이로 인해 무구정경이 창건 당시인 8세기 중반이 아니라, 11세기에 봉안된 것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는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인쇄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어서 충격이 컸다.

그런데 불교서지학 전공자인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은 7일 “묵서지편 내용으로 볼 때 무구정경의 제작 연도는 통일신라 시대가 확실하며, 연대도 당초 알려진 751년 무렵이 아니라 742년 이전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석가탑에서 나온 ‘무구정광대다리니경 목판본’은 원래 742년 이전 제작돼 다보탑에 있던 것을 석가탑 수리 때(1038년) 옮겨 봉안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 석가탑에 봉안돼 있던 ‘다보탑중수기’
처음 묵서가 판독될 때만 해도 ‘무구정광탑중수기(1024년)’와 ‘서석탑중수형지기(1038년)’는 모두 석가탑 중수와 관련된 것으로 짐작됐다. 석가탑에서 나온 문서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젊은 연구자들은 이 가운데 ‘무구정광탑중수기’는 석가탑이 아니라 ‘다보탑중수기’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즉, “중수기에서 탑의 해체를 기술한 부분을 보면 대롱 모양의 기둥과 꽃술 모양의 기둥, 연꽃 모양의 통주(筒柱)가 보인다”면서 “이는 우리가 볼 수 있는 다보탑의 형상임이 분명하다”고 밝힌 것이다. 또한 다보탑은 일제시대 때(1925년) 해체됐는데, 이때 반출된 오쿠라컬렉션(도쿄박물관 소장)의 금동원통형사리함 등이 문제의 ‘무구정광탑중수기’ 기록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박상국 원장은 “이런 연구를 토대로 볼 때 훨씬 정교하게 만들어진 다보탑은 그만큼 붕괴 위험에 쉽게 노출돼 1024년에 수리했으며, 이보다 튼튼한 석가탑은 지진 등에 의한 손상을 입은 1038년 수리했음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 무구정경의 제작 연대는 742년 이전
다보탑중수기(무구정광탑중수기)와 석가탑중수기(서석탑중수형지기)를 보면 천보(天寶) 원년, 즉 742년이라는 창건 연대와 함께 285년 만에 수리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박상국 원장은 “지금까지는 다보·석가탑의 창건 연대를 751년 이전이라고 했지만, 이들 중수기 명문을 보면 742년 이전임이 분명히 드러났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다라니경 역시 그때 집어넣은 것일까.

박 원장에 따르면 1024년 다보탑 중수 때 다보탑에는 742년 이전에 제작된 무구정경 2종류가 봉안돼 있었다. 이것은 ‘다보탑 중수기’에 나오는 기록이다. 그런데 1038년 지진으로 붕괴 위기에 놓인 석가탑을 중수하는 과정에서 다보탑에서 나온 무구정경 가운데 1종류와 다보탑중수기(무구정경중수기), 그리고 새롭게 보협인다라니경을 석가탑에 봉안한 것이다. 이때 석가탑에 봉안한 무구정경이 바로 우리나라 최고의 목판 인쇄물인 것이다.

◇ 무구정경은 고려 때 유행하지 않았다
무구정경은 고려 때 제작되지 않았다는 것이 박 원장의 흔들림없는 주장이다. 즉, 이 경전은 당나라 측천무후 때인 704년 이후 신라에 들어와 대유행한 것이다. 8~9세기 탑을 세울 때는 어김없이 무구정경을 봉안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석가·다보탑이 중수됐던 고려 때에는 탑을 만들 때 무구정경이 아니라 다른 경전인 보협인다라니경을 봉안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박상국 원장은 “유행이 지난 무구정경을 굳이 만들어 봉안했을 리 없다는 것”이라며 고려시대 제작설을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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