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1억4000만년의 고요 저 안에 잠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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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9.04.15 09:3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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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여행에는 공통점이 있다. 궁합도 맞다. 안목을 키워줘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게한다. 뿐만 아니라 여행의 재미를 배가시켜 준다. 이를테면 풍경과 잘 어울리는 글을 현지에서 읽으면 자연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책 밖의 세상에서 글의 깊은 맛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여행 배낭엔 책 한 권 정도는 넣고 다니는 게 좋다. 이번 우포늪 여행엔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를 들고 갔다. ‘늪’이란 단어에는 일단 태초의 원시성, 시간의 영속성, 도시와의 단절감이 느껴진다. 이런 이미지들과 어울리는 것 중 하나가 침묵이라고 생각했다.

정작 우포늪은 많이 변해 있었다. 침묵의 세계와는 한참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해마다 35만명이 다녀간단다. 지난해엔 ‘람사르 습지총회’까지 열려 80만명이나 왔다갔다. 늪이 관광지가 된 것이다. 처음 우포늪을 찾았던 1996년 5월과는 딴판이었다. 당시엔 ‘고무 대야’를 허리춤에 매고 반쯤 몸을 담근 채 우렁을 줍던 아낙들의 발소리만 들렸다. 잉어의 자맥질처럼 가끔씩 ‘첨벙’ 하는 짧은 소리만 늪에서 파문처럼 퍼져나갔다.

그래도 늪과 침묵은 어울린다. 일단 먼저 우포늪의 역사를 추적해보면 원시성을 알아낼 수 있다. 우포늪 주변엔 고목 한 그루 없지만 1억4000만년 전에 탄생했다. 이 지역을 흐르던 강줄기가 움푹 내려앉아 늪이 됐다. 1억년의 시간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시간이다. 현생인류, 즉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태어난 것은 4만~5만년 전에 불과하다. 최초의 인류라고 불리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나온 것은 겨우 300만년 전이다. 우포늪은 사람이 태어난 것보다 훨씬 전 탄생했다.

늪은 넓다. 231.4㏊(69만9985평)이다. 창녕 대합면과 이방면, 유어면 일대에 늪이 펼쳐져있다. 처음 늪을 찾은 사람들은 놀란다. “어라…, 늪이 아니라 호수야. 여기가 늪 맞아?” TV영화 <타잔>에 빠져봤던 40대 이상이라면 진흙수렁을 떠올렸을 것이다. 기자도 처음엔 그랬다. 한 번 발을 디디면 헤어나지 못하고 악당들이 빠져죽던 그런 늪 말이다. 늪과 호수는 수심으로 분류된다. 깊이가 5m 이상이면 호수다. 늪은 보통 수심이 2m 이하다.

우포늪은 생태계의 자궁이란 표현이 어울린다. 그 역사를 감안하면 많은 미생물들이 우포늪에서 처음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DNA가 우포늪에서 적응하며 변화해갔을 것이다. 우포늪에는 수많은 생물들이 기대어 산다. 이제 봄물이 올라 수양버들이 여리디 여린 새순을 냈고,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5월이 되면 물풀들이 여기저기서 고개를 내밀 게 분명하다. 부들, 창포, 갈대, 줄, 물방개, 붕어마름, 벗풀…. 이런 물풀은 생명고리의 밑바탕이다. 그 틈에 붕어가 살고, 개구리가 연잎 위에서 햇살을 즐기고, 붕어는 늪의 어느 귀퉁이에 알을 낳을 것이다. 수생식물 34종, 수서곤충 35종, 조류 350종 이상이 살고 있다. 먹이사슬 속엔 사람도 포함돼 있다. 과거엔 어업권을 가진 주민들이 120명 가까이 됐지만 지금은 9명만 물고기를 잡고 있다.

새벽 우포늪은 고요했다. 고요해서 아름다웠다. 늪이 늪다웠다. 피카르트는 <침묵의 세계>에서 ‘자연의 침묵은 인간을 행복하게 한다. 왜냐하면 자연의 침묵은 말 이전에 있었고, 모든 것이 발생한 저 위대한 침묵을 예감하게 해주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그는 또 ‘침묵 속에서 인간은 다시금 시원적인 것 앞에 서게 된다’고 했다. 하기야 우포는 태초라고 할 만한 시기에 태어났다.

어부는 쪽배를 흔들어댔다. 한 번 흔들 때마다 생긴 파문은 여러 겹을 이뤄 호수로 퍼져나갔다. 소리는 여렸지만 흩어지지 않고 전달됐다. 고요한 새벽 아침에 들리는 물소리는 음악처럼 아름답다. 밤이나 낮이나 자동차 소음으로 가득한 도심에서 살다가 고요함과 맞닥뜨리면 세상이 달라보인다. 도회지에선 소음들이 넘쳐나 소리를 구분할 수 없다. 하지만 고요한 새벽 늪에선 물고기가 첨벙거리는 소리, 수달이 헤엄치는 소리, 새가 우짖는 소리가 다 들린다. 침묵의 부피가, 소리의 부피보다 크다. 고요함이 소리를 도드라지게 돕는다. 하여 피카르트는 ‘미는 침묵 속에 일차적으로 존재한다’고 했다.

그나저나 어부는 왜 배를 흔들어댈까? 잠든 물고기를 깨우기 위해서다. 물고기가 움직이면 ‘가래’라고 불리는 통발을 물에 박는다. 그리고 손으로 통발 속을 뒤져 붕어를 잡아내는 것이다. 우포식 고기잡이다. 과거 우포 주변에는 50여개의 크고 작은 늪이 있었는데 개발과정에서 대부분 사라졌다. 일제 때는 일본인들이 논밭을 늘리겠다고 우포 귀퉁이에 둑방을 만들어 늪 한 조각이 날아갔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습지 한쪽에서 논밭을 부쳐먹기도 했다. 당시엔 1억년이 넘은 나이테를 가진 늪이 얼마나 귀중한지 몰랐다. 1억년을 살아온 늪이 사라질 수 있다면 수백만년을 살아온 인류도 멸종할 수 있다는 것을 정말 몰랐다. 우포늪에선 보아야 할 것이 아름답고 추하고가 아니다. 고요함 속에서 태어난 우포가 생명 그 자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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