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산길물길 따라 ‘목판에 새긴 향수’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자료제공 : 뉴시스[http://www.newsis.com]
  • 09.04.14 09:20:36
  • 조회: 11813
목판 화가 김억씨(53)가 경기 파주시 헤이리의 북하우스 아트스페이스와 갤러리 한길에서 ‘국토백경(國土百景)’전을 열고 있다.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작업한 크고 작은 작품 77점이 5월3일까지 관람객을 맞는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부감의 각도로 전국의 아름다운 산하와 마을, 문화유적을 세밀하게 묘사한 그의 작품은 마치 고향에 온 듯한 푸근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요즘처럼 어려울 때일수록 국토로부터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직후 힘든 상황에서 나왔거든요.”

이렇게 말한 사람은 작가가 아니라 출판사 한길사의 김언호 사장(65)이다. 올해 창립 33주년을 맞은 한길사 부설 전시공간에 김씨를 초청했다. 김 사장은 “엄혹했던 80년대 중·후반에 김정한·고은·박석무 등 선생을 모시고 우리 국토를 탐험하는 ‘한길역사기행’을 했다”며 “역사와 역사정신이란 삶의 현장으로서의 국토에 아름답게 존재한다”고 말한다.

흐뭇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작가는 “그동안의 작품을 모아놓으니 자칫 회고전처럼 보일까봐 걱정이 되면서도 앞으로 갈 길이 뚜렷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80년대 민중미술의 정신을 이어받은 작가다. 홍익대 미대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뒤 종이작업을 주로 했으나 생계로 삼았던 미술학원을 접고 96년쯤 경기 안성으로 내려가면서 목판을 시작했다. 80년대 목판이 민중미술로 각광 받을 무렵, 몇몇 동료들과 마련한 그룹전 ‘목판모임 나무’가 그의 작업방향을 트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현대인은 공간감각을 잃어버렸어요. 고속도로와 내비게이션 덕분에 빨리, 정확하게 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중간 과정이 모두 생략됩니다. 여러분들이 제 그림을 보고 느끼는 건 그런 잃어버린 감각에 대한 향수가 아닐까요.”

‘21세기의 고산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그는 구곡(九曲)을 시작으로 원림(院林)문화, 성곽 시리즈를 제작했다. 대체로 넓은 시야를 확보해 산길과 물길, 그리고 그 사이에 오롯이 들어앉은 마을을 보여주는 작품이 많지만 개별적인 문화유적이나 대추리 같은 시사적 소재도 있다. 마치 입체지도를 보는 듯한 그의 그림 속에서 관람객들은 자신의 동네를 찾아낼 수 있다. 그는 해당 지역을 답사하면서 사진을 찍고 스케치를 하고 약도를 그리고 메모를 한다. 초기에는 은행나무, 요즘에는 목판용 베니어판에다 스케치를 하다 보면 연결이 안 되거나 기억이 안 나는 지점이 꼭 생긴다. 그러면 몇 번이고 그곳을 다시 찾아간다. 구상과 스케치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데 비해 조각은 한번 파기 시작하면 1주일 밤낮을 걸려서라도 끝을 낸다.

김씨는 “현대적인 상황에서 주목할 수 있는 부분을 작품화하고 싶다”며 “다음 작업할 곳은 아직 전쟁의 상처가 남아있으면서 평화와 생태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비무장지대와 임진강 일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전시회 도록의 해설은 <국토와 민중>을 썼던 소설가 박태순씨(67)가 맡았다. 박씨는 “문화·역사·지리학 현장연구의 종합보고서 같은 장엄함이 있다”며 “인문학의 위기를 발설하는 이들은 (작가처럼) 국토 방방곡곡의 현지로 나가라”고 권한다.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글수정
  • 글삭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