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와인,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마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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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9.03.18 09:33:39
  • 조회: 447
ㆍ와인 컨설턴트 박인혜씨의 ‘와인이야기’
한국의 술문화가 바뀌고 있다. 신세대들은 ‘부어라 마셔라’만 강조하는 회식 술자리문화에 반기를 들고 중년층에서도 폭탄주보다는 우아하고 건강에 좋다는 이유로 와인애호가가 늘어나고 있다. 어느 모임에 가도 한 두명쯤은 “부르고뉴 와인은 오직 하나의 포도품종, 즉 피노누와를 사용하기 때문에…”라거나 “아, 2005년이면 프랑스 날씨가 좋아 근사한 빈티지죠” 등 와인에 대한 상식을 뽐낸다. 어떤 이들은 프랑스인들도 잘 모르는 와인산지나 경작자 이름까지 줄줄 왼다. 즐겁고 행복하게 마셔야할 와인이 이젠 스트레스를 주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프랑스에 살며 25년간 와인을 공부하고 보르도의 와인전문학교 CAFA의 교수인 박인혜씨(47)는 “와인은 마음으로 마셔야하는데 한국인들은 머리로 마시려는 것 같다”며 한국에 부는 이상 와인열풍을 염려했다.

-최근 몇년 사이의 한국의 와인열풍을 어떻게 봅니까. 물론 요즘은 유로화가 너무 올라 와인수입이 줄긴 했지만요.
“보통와인의 수입은 줄었지만 최고급 와인은 여전히 한국에서 잘 팔린다고 들었어요. 와인열풍은 여러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가장 주목할 수 있는 이유는 웰빙이기 때문이지요. 생활이 풍요로워지면서 식사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듯이, 취하기 위해서 술을 마시던 음주문화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즐기면서 건강도 돌볼 수 있는 것에 많은 시선과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포도주의 열풍을 불러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급와인이 유독 한국에서 잘 팔리는 이유는 와인이 서민적이라기보다 부유층들이 즐기는 문화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것은 아직 포도주가 일반화되기에는 더 많은 시간과 관계자분들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와인만화 ‘신의 물방울’은 물론 영화 등에서 와인을 마셔보기만 해도 산지며 담근 연도까지 정확히 맞히던데 프랑스엔 그런 전문가들이 많은가요? 그리고 그건 개인의 능력인가요, 혹은 노력의 결과인가요.
“적어도 저는 단 한명도 와인 한모금을 마셔보고 와인품종과 빈티지를 정확히 알아내는 프랑스인을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자신이 유독 즐겨마시는 와인이라면 이미 맛과 향이 입력되어 있으니까 기억해서 맞힐 수는 있겠지만 다양한 와인을 척척 맞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죠. 독특한 맛에 따라 지역을 구분하는 정도는 소믈리에가 아니라도 가능합니다.”

-언제부터 와인에 관심을 갖게 됐나요.
“1985년에 처음 프랑스로 유학갔다가 프랑스 남자를 만나 결혼, 아이를 4명이나 낳고 평범한 주부로 살았어요. 와인을 물처럼 마시는 프랑스에서, 프랑스인과 사니까 자연히 와인에 관심을 가져서 휴가 때면 와인산지를 찾아 와인도 마시고 포도며 땅에 대한 공부도 했죠. 그러다 막내가 아홉살이 되어 엄마손이 별로 필요없어지자 제 일을 갖고 싶었어요. 그 무렵엔 이미 와인에 푹 빠져서 보르도의 프랑스 와인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와인의 매력은 바로 ‘먹을 때마다 새로운 와인의 맛’에 있어요. 똑같은 마트에서 똑같은 와인을 구입해도 같은 맛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죠. 또 누구와 마시는지, 어떤 음식과 함께 마시는지에 따라 와인의 맛은 천지 차이가 나는 게 너무 신기했죠. 막상 와인전문직업학교에 가고 보니 아무리 프랑스에서 오래 살았어도, 언어에서 오는 한계가 있잖아요. 특히 전문용어가 너무 많아서 정말 힘들었어요. 수업은 무척 재미있어서 하루에 9시간씩 공부하는데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고 자신감도 생기더군요. 소믈리에 과정만 마치면 와인전문가가 될 줄 알았는데 욕심이 생겨 또 다른 와인전문학교에 들어갔죠. 하지만 와인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의 와인을 모두 경험하고 일상에서 많은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합니다.”

-최근엔 프랑스 와인학교에 한국 유학생들도 많다던데 어떤 공부를 합니까. 또 자격증이나 취업에 도움이 되나요.
“교육과정보다 본인의 의지와 열정이 중요하죠. 학교에서 알려주는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현지에서 수없이 많이 열리는 시음회, 박람회, 현장실습 등 경험을 쌓는 것이 한결 유익하리라 생각합니다. 외국인들의 가장 큰 장애는 언어 문제입니다. 언어 준비가 잘 안돼있거나 또는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궁금증이 있어도 혹시나 싶어 질문을 하지않거나 이해 못한 부분을 그냥 묻어둔다면 포도주 종주국에 유학온 궁극적인 목표를 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호기심과 적극적인 태도가 가장 중요합니다. 프랑스 와인학교에선 실습을 위주로 해서 능력만 있으면 취업 연결도 가능하고 귀국해서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죠.”

-명함에 와인컨설턴트라고 적혀 있는데 정확히 무슨 일을 합니까.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손님에게 권하고 조언해주는 사람이 바로 ‘소믈리에’이고, 저는 좋은 와인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일을 합니다. 와인중매업자라고나 할까요. 프랑스에 살고 있는 한국인으로 프랑스의 싸고 맛있는 와인을 한국에 소개하는 일에 보람을 느껴요. 제가 프랑스에 살지만 매일 한식을 해먹어요. 집에서 김치전과 김치전골, 호박전 등의 안주로 와인을 마시다 보니 신기하게도 우리나라 음식이 대체로 와인과 무척 잘 어울리더군요. 우리 음식은 자극성이 강해서 와인과 어울리기 힘들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또 프랑스 와인 중에는 우리 식성에 맞는 싸고 맛있는 포도주가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한국의 와인구매자들에게 우리나라 사람 입맛에 맞는 좋은 포도주를 추천하고 어떤 음식과 잘 어울리는지 소개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대기업들이 직접 프랑스 등 와인산지에서 수입하고 중소업체들은 자금난에 시달려 제 역할이 많이 줄었어요.”

-실수하지 않고 좋은 와인을 마시는 방법은 없나요.
“무조건 브랜드 있는 비싼 와인을 살 필요는 없죠. 주머니 사정에 맞게 매장이나 와인바에 가서 취향에 맞는 와인을 마시고 싶다고 설명하면 소믈리에가 적당한 포도주를 추천해주죠. 초보자가 처음부터 비싸고 좋은 포도주를 먹는다고 ‘맛있다. 좋다’고 느끼기란 쉽지 않습니다. 와인 초보자들에게는 ‘단맛’ 나는 와인을 권하고 싶군요. 떫은맛이 느껴지면 시작도 하기 전에 와인에 정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가장 좋은 와인은 바로 신맛, 단맛, 떫은맛이 적절히 융화되어 3개의 맛 중에 어느 하나도 두드러지게 느껴지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맛이 어우러지는 게 바로 전문가들이 말하는 최상의 포도주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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