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춤꾼 하용부 “그들과 다른 ‘깊이’·신명 다 펼쳐놓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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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9.03.09 08:5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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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밀양백중놀이’ 보유자 하용부 한국춤꾼 최초 바스티유 공연
손자와 할아버지가 새벽 강물에 세수를 한다. 손자는 할아버지를 지게에 태우고 제약산을 오른다. 마침내 정상에 다다른 조손(祖孫). 아침해가 불쑥 고개를 내밀자 제약산의 윤곽이 차츰 선명해지고, 백발의 춤꾼 하보경(1906~97)이 드디어 한쪽 팔을 슬며시 들어올린다. 거침없는 활갯짓으로 훌쩍훌쩍 뛰노는 범부춤, 커다란 북을 엇박으로 치며 기우뚱 걸음을 내딛는 북춤. 손자는 그렇게 배웠다. 할아버지의 활갯짓과 호흡을 몸으로 따라 하며 익혔다. 제약산 꼭대기에서 펼쳤던 가르침은 손자의 나이 서른이 훌쩍 넘었을 때의 장면이었지만, 그는 이미 다섯 살 때부터 조부의 춤을 따라 했던 집안 내림의 춤꾼이었다.

춤꾼 하용부(54). 중요무형문화재 68호 밀양백중놀이 예능보유자. 남성춤의 진수를 보여준다는 평을 듣는 그가 프랑스 공연예술의 자존심으로 통하는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극장 무대에 선다. 한국 전통 춤꾼으로는 처음이다. 국가 홍보 차원에서 마련되는 ‘친선 무대’가 아니라, 순전히 프랑스 측의 초청에 의한 공연. 97년부터 파리에서 해마다 펼쳐지는 상상축제(Festival de L’imaginaire)의 일환이다.

“저야 뭐 늘 해오던 춤이니까, 거기서도 그냥 추는 거죠. 하지만 이제 교포들 위문 차원에서 춤을 추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일단 우리 춤의 깊이를 보여줘야죠. 그들과 ‘다른’ 깊이 말입니다. 서양예술은 우리와 호흡부터 다르지 않습니까. 윤이상 선생의 음악도 그렇고, 심지어 김연아의 피겨에도 서양과 다른 호흡이 있는 것 같습니다. 호흡이 다르면 당연히 감성도 다르죠. 바로 그 차이를 보여줘야겠죠. 그리고 제 속의 신명, 즉흥성, 남성다움… 그런 것들을 펼쳐놔야죠. 아이고, 이거 참 어렵습니다.”

하용부는 그렇게 말하며 껄껄 웃었다. 기분 내키면 무대가 아니어도 성큼 일어나 춤사위를 펼쳐놓는 이 소탈한 춤꾼은 “인간문화재라고 폼잡는 건 내 체질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홍대 앞 클럽의 젊은이들 앞에서도 춤추고, 지인들의 모임에서도 흥에 겨우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한바탕 논다. 그는 “어디서든 춤출 수 있다. 분위기만 좋다면”이라고 말했다.

“증조부(하성옥) 때부터 밀양의 춤꾼 집안이었죠. 할아버지는 97년에 돌아가셨는데, 그 한 해 전에 마지막 춤을 보여주셨죠. 음력 7월15일, 밀양 백중놀이 때였습니다. 3분 동안 추시고는 숨을 식식 몰아쉬시면서 ‘용부야, 오늘 내가 잘 추었느냐?’ 하고 물으십디다. 저는 그날 춤의 끝을 봤거든요. 91세 노인이 보여줬던, 기교도 없고 움직임도 거의 없는 춤이었지요. ‘달관의 춤’ 같은 것이었습니다. 한데도 할아버지는 마지막 춤에 만족하지 않으시더군요. 춤꾼의 길은 끝이 없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질문은 아마 그런 뜻이었을 겁니다. 그때부터 할아버지의 그 말이 제 인생의 좌표가 됐지요.”

“나보다 춤 잘 추는 이는 많다. 하지만 전통만 지키면서 공부를 안 하는 게 문제”라는 하용부는, 연극연출가 이윤택과도 오랜 ‘협업’ 관계를 유지했던 춤꾼이었다. 첫 작품은 안무가 겸 배우로 참여했던 ‘오구-죽음의 형식’이었다. 이어서 ‘죽은 영혼’ ‘길 떠나는 가족’ ‘어머니’ ‘일식’ 등에 안무가로 참여했다. ‘이윤택 연극’이 보여줬던 ‘한국적 몸짓’의 배후에는 그렇게 하용부가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배운 게 많다. 무대의 시각성과 공간성, 새로운 춤의 미학 같은 것을 이 선생 덕택에 많이 깨우쳤다”고 말했다.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극장 공연은 3월30일과 4월1일. 이에 앞서 3월9~10일에도 서울남산국악당에서 하용부의 춤판을 만날 수 있다. 원일과 바람곶이 음악과 연주를, 김주홍이 소리를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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