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사박 사박 발자국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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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9.02.20 08:5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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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안반덕 마지막 겨울 여기는 강릉의 안반덕이란 고원이다. 고랭지 배추를 많이 심는 산골마을인데 사진작가들에겐 제법 유명한 곳이다. 여름엔 푸른 배추밭이 아름답고, 겨울엔 설경이 장관이다. 지난주 말 서울은 봄빛이 완연했지만, 안반덕은 아직도 한겨울이었다.

안반덕의 행정지명은 강릉이지만 대개 평창에서 들어간다. 평창 도암면 수하리와 강원도 왕산면 대기리의 경계다. 안반덕은 대기리에 속한다. 안반덕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마을이다. 용평리조트 바로 옆에 있다. 도암댐 방향으로 가다보면 ‘강릉 대기4리 안반덕’이란 이정표가 나온다. 산길을 따라 2.7㎞를 오르면 안반덕이 나타난다. 길은 잘 포장됐지만 겨울엔 승용차로 오르기 힘들다. 제설 작업을 했어도 중간에 미끄러운 부분이 많다. 여름엔 10분이면 차로 올라가지만 겨울에는 걸어서 1시간이나 걸리니 멀다고도 가깝다고도 할 수 없다.

어쨌든 이 구간을 올라서면 안반덕이 나타난다. 횡계의 눈은 다 녹았는데도 안반덕은 아직도 설원이었다. 눈밭이 너무 아름다워 트레커들도 종종 찾아온다. 등산 코스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트레커들은 마을을 한바퀴 돌거나 임도를 걷다 돌아간다고 한다. 얼마 전엔 여행상품도 나왔다. 배추밭이 트레킹 코스가 되다니 10년 전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촬영하고 있을 때 사진작가 몇 명이 찾아왔다.
“지금도 아름답지만 감자꽃 필 때도 장관입니다. 그땐 작가들이 더 많이 몰려와요. 지금하고는 또다른 분위기죠.”
그러고보면 여행지도 세월따라 바뀐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수력발전 댐이나 하구언, 간척사업지가 인기 여행코스였다. 60년대엔 괴산 갈론마을, 80년대엔 소양강댐이 단골 수학여행 코스였다. 당시 정부는 ‘국토를 개조했다’거나 ‘지도를 바꿨다’고 홍보했다. 지금은? 외려 훼손되지 않은 자연에 사람들이 더 끌린다고 한다.

안반덕은 20년 전만 해도 눈길 한 번 받지 못한 ‘깡촌’이었다. 90년대 중반에 언론을 한 번 탄 적이 있다. 96년 잠수함으로 들어온 간첩이 안반덕에서 하룻밤 머문 것으로 밝혀졌다. 그래서 지금도 마을엔 수상한 사람을 보면 신고해달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안반덕은 특이하게 생겼다. 고랭지 채소밭인데 가운데가 움푹 파였다. 사진만 보면 홋카이도의 비에이 구릉지대라고 할 수도 있겠다. 비에이는 일본 사진작가 마에다 신조의 사진을 통해 유명해진 명소다.

안반덕이 사진찍기 좋은 것은 ‘선’(線) 때문이다. 땅이 일직선으로 평평하지 않고 굴곡이 있다. 능선이 ‘S’라인을 형성하고 있다. 임도를 따라 걸으면 산너머에 또다른 구릉이 펼쳐진다. 마을 언덕에는 바람개비 같은 풍력발전소가 두 개 서 있었다. 마을 유래도 알 겸 서너 집 대문을 두드렸는데 마을은 텅 비어 있다. 밖에서 자물통을 채워놓은 집들이 많았다. 나중에 마을에서 내려와 물어보니 농사철에만 사람들이 산다고 했다. 겨울엔 대부분 비어 있다. 가구수로 치면 20~30여가구 될 듯한데 서울에서 내려온 노인 1명만 살고 있다고 했다.

농사철에만 산다면 그럼 옛날부터 있던 마을은 아닌가? 평창 도암면 산골식당 김금자씨(52)는 마을이 처음 생기던 당시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5~6세쯤 됐을 거예요. 횡계에서 살다가 아버지가 식구들을 데리고 안반덕으로 이사를 갔는데 어찌나 춥고 황량했던지 별로 먹을 게 없었죠. 그럴 때면 헬리콥터가 와서 먹을 것을 던져주고 갔거든요.”

마을이 개간된 것은 45년 전쯤으로 보면 된다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 때 화전민들을 산간 황무지에 정착케 했다. 산에 불을 질러 화전 부치지 말고, 돌밭을 개간해 살아보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비옥한 땅이었으면 눈밝은 조상들이 먼 옛날부터 땅을 차지하고 앉았을 터. 하지만 돌멩이뿐인 황무지였다. 김씨는 옥수수 농사를 해봤지만 실패했단다. 바람이 거세서 옥수수 농사가 안됐다. 결국은 아버지와 함께 평창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부쳐먹던 밭 2만평도 그대로 버려두고서.

돌멩이 밭이라도 부둥켜안고 시린 세월을 살아왔던 사람들은 소처럼 일해 황무지를 감자밭으로, 배추밭으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안반덕 설원을 자세히 보면 포대가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져 있다. 퇴비다. 안반덕은 ‘재밌는’ 여행지다. 화전민들의 개척 역사가 남아 있는 땅인 데다 지형도 특이하다. ‘뻔한 산행 말고 새로운 곳 없나’ 고민하는 사람들이 찾아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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