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혹한 속 ‘깨달음의 향기’ 피어나네…백담사 ‘무금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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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9.01.29 09: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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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바깥 세상과 절연한 무문관
ㆍ대부분 중년 ‘늦깎이 출가자’
ㆍ하루 12시간 이상 목숨건 정진

아득하게 올려다보이는 설악 영봉은 흰눈에 파묻혔고, 물소리 청청했던 백담계곡은 꽝꽝 얼어붙었다. 수심교(修心橋) 건너 내설악 깊숙이 들어앉은 강원도 인제 백담사 ‘무금선원(無今禪院)’. 만해 한용운 선사의 수행처이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운둔지로만 알려졌던 백담사는 1998년 회주 오현 스님이 무금선원의 문을 열면서 설악산에 선풍(禪風)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무금’은 ‘무고무금(無古無今)’을 줄인 말로 ‘본래 성품은 맑고 고요해서 예도 없고 지금도 없다’는 뜻이다.

무금선원은 행자교육을 마친 조계종 출가자(사미승)들이 안거기간에 선의 기초를 다지는 ‘기본선원’과 법랍(출가한 이후의 햇수)이 높은 스님들이 폐문정진(閉門精進)하는 ‘무문관(無門關)’ 특별선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본선원은 백담사 오른쪽 만해기념관 뒤편에 있다. 조계종 출가자들은 사미계를 받은 뒤 봉암사와 백담사에서 의무적으로 4년 동안 공부를 해야 비구계를 받을 수 있다.

난분분 난분분 눈발이 흩날리는 지난 16일 새벽. 도량석 목탁소리가 눈덮인 겨울 산사의 고요를 깨운다. 기본선원 스님들은 이미 좌복 위에 가부좌를 틀고 선정에 들었다. 올해 동안거에는 사미 1년차와 3년, 4년차의 예비승려 30여명이 엄격한 규율 속에 참선 수행을 하고 있다. 대부분 30, 40대인 ‘늦깎이’ 출가자들로 박사 학위를 지닌 50대도 있다.

지난해 11월11일 동안거를 시작한 지 두 달째. 기본선원 하루일과는 새벽 3시 예불로 시작된다.이어 2시간 동안 참선을 하고, 5시부터 108배 참회정진을 한다. 오전 11시에는 나한전 법당에 삼배를 올리고 예불문에 맞춰 장엄한 예불을 드린다. 아침 공양이 끝나면 1시간 동안 운력(運力·노동)을 한다. 하안거 기간에는 농사일을 하지만 요즘은 마당의 눈을 쓸거나 선방 청소를 한다.

선방에서는 하루 12시간 이상씩 참선을 하는 혹독한 수행이 이어진다. 참선 중 조금이라도 자세가 흐트러지면 선감 스님이 사정없이 죽비를 내리며 정진을 독려한다. 또 철마다 반드시 7박8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화두를 참구하는 용맹 정진을 해야 한다.

무금선원 선방은 외부인 출입이 허용되지 않지만 이날은 선원장 신룡 스님(53)과 선감 대전 스님(57)의 배려로 선방문을 열었다. 예비 선승들이 벽을 향해 두 줄로 앉아 참선 중이었다. 벽에는 각자 맡은 소임을 적은 ‘용상방(龍象榜)’이 붙어있다. 수좌(참선을 주로 하는 스님)의 길을 걷기 위해 ‘화두’ 하나를 들고 참선 중인 예비스님들의 꼿꼿한 자세가 자못 오연했다. 지난 3일 동안거 용맹정진을 끝낸 스님들의 눈빛도 형형했다. 이들이 온몸으로 뿜어내는 정진의 열기가 설악산의 혹한을 녹이고 있었다.

사미승들과 똑같이 생활하며 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대전 스님은 “기본선원은 철저한 수행과 습의를 통해 청규정신을 키우고 번뇌를 버리는 정진을 하는 수좌사관학교”라며 “특히 묵언수행이나 포살(布薩·스스로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는 의식) 등을 통해 출가 초심(初心)을 잃지 않고, 수좌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친다”고 말했다.

무문관은 기본선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삼엄한 수행처다. 기본선원에서 백담사 경내를 가로질러 계곡 위쪽으로 1백50m가량 떨어져 있다. 선원장 신룡 스님의 안내로 침묵 속에 조심조심 무문관을 돌아보았다. 3채의 건물이 ㄷ자 모양으로 늘어선 무문관 안마당은 무서우리만치 깊은 적막에 잠겨 있었다. 스님 10명이 독방마다 한 명씩 들어앉아 있을 텐데도 기척조차 없다. 바깥에서 굳게 걸어잠근 자물쇠와 공양을 넣어주는 쪽문(공양구)에서 바깥세상과 절연하고 목숨 건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겠다는 선승들의 결연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사방이 꽉 막힌 2~3평의 독방 안에는 수세식 좌변기와 간이 샤워기가 설치된 화장실이 딸려 있을 뿐이다.

이번 동안거에 무문관에 든 수좌들은 11명. 법랍 42년의 정송 스님(64), 전 전국수좌회 의장 영진 스님(54), 보문사 주지인 지범 스님(53) 등 법랍 30년 이상, 안거 30차례 이상인 스님들이 절반을 넘는다. 무문관 스님들은 보통 3개월에서 1년, 3년, 6년 등으로 스스로 기간을 정한다. 한번 들어가면 바깥 출입뿐만 아니라 전화와 편지는 물론 독서와 취미생활도 일절 금지된다. ‘일종식’(一種食·한루 한 끼)을 하며 스스로를 침묵과 고독 속에 가두고, 화두와의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무문관이 외부와 연결되는 것은 하루 딱 한 번. 오전 11시쯤 기본선원의 사미승들이 공양구를 열고 한 공기의 밥과 국, 세 가지 반찬, 과일 몇조각이나 우유가 전부인 공양을 들여놓는다. 이 짧은 시간이 지나면 문문관은 또다시 깊고 깊은 침묵에 빠져든다.

무문관 수행은 오직 화두밖에는 의지할 것이 없는 지독한 감옥살이인 셈이다. 왜 이런 고행을 자초하는 것일까. 신룡 스님은 황벽선사의 선시로 대답을 대신했다. ‘뼛속에 사무치는 추위를 견디지 않고서야 어찌 코끝을 찌르는 매화 향기를 얻으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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