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1000회 연속출연 진기록 “춤은 내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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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9.01.21 09:3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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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댄스컬 ‘사춤’ 강유진



한 명의 무명 배우를 만났다. 댄스컬 <사춤>의 강유진(34). 어느새 1000회 연속 출연이라는 공연계 진기록을 세웠지만 여전히 그의 이름을 아는 관객은 많지 않다. 그렇다고 출연작이 대한민국 제일의 공연도 아니다. 그러나 첫 무대에 선 이후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때론 관객의 냉대로 가슴 시린 적도 있고 한 쪽 다리를 영영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위기도 찾아왔지만 견뎌냈다. 춤과 무대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고 이젠 인생 그 자체가 됐으니까. 서울 종로 낙원상가 4층에 자리한 댄스컬 <사춤> 전용관. 강유진에게 그곳은 마치 ‘결혼 10년 만에 마련한 내 집’과도 같다. 2004년 10월26일 <사춤> 첫 공연 후 대학로 공연장 몇 군데를 떠돌다가 지난해 겨우 터를 잡았다.



원래는 <사랑하면 춤을 춰라>였지만 팬들이 <사춤>으로 부르며 바뀌었다. 젊은이들의 성장과정을 춤으로 표현한 댄스뮤지컬. 공연팀도 해외 등 외부 공연까지 소화하도록 2팀으로 늘어났다. 그는 <사춤> 배우 가운데 초연 후 현재까지 무대에 서는 유일한 인물이다. 30명 가운데 제일 연장자. 격렬한 춤 동작이 주를 이뤄 동료들은 21살에서부터 대부분 20대다.



“환갑이 지났을 나이지만 체력은 지금도 제일 강해요. 요즘은 공연 한 번 하고 나면 진이 빠지긴 합니다. 공연시간 70분 중 50분 가까이 무대에 서니까요. 지난 연말 한 달간은 심야공연까지 44회 공연했어요.”

주·조연이 따로 없는 작품이긴 하지만 강유진은 주연급 앙상블이다. 그가 맡은 역할의 춤이 가장 화려하고 다양하다. 현대무용부터 발레·힙합·디스코·탱고·비보잉·아크로바틱·재즈까지 선보인다. 신장 173㎝에 “몸매만은 이효리 부럽지 않다”는 늘씬함에다 유연성과 파워를 지녔다.

무대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2년 뮤지컬 <블루사이공>으로 데뷔하면서다. 대진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몸이 약해 배우기 시작한 춤이 계기가 됐다.



그러나 춤을 배우면서 인생의 최대 고비도 맞았다. 대학 2년 무렵 골수염이 찾아왔다. 처음엔 몸까지 아프다고 하면 집에서 춤을 더욱 반대할까봐 숨겼다. 결국 오른쪽 다리가 시커멓게 변하고 완전히 걸을 수 없게 됐을 때 병원으로 실려갔다.



“의사 선생님이 수술 후에도 ‘80%는 다리절단을 각오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청천벽력이었죠. 20%에 희망을 걸고 두 달간 생지옥을 몇 번 오갔어요. 다행히 다리절단은 면했어요. 다시 걷고 춤추기까지 1년 이상 재활했죠. 그 고통 말로는 표현못합니다.”

두번째 시련은 2005년 <사춤> 배우로 한창 활동할 당시 찾아왔다. 스물아홉살의 늦은 나이에 <사춤> 오디션에 도전해 인생을 건 후여서 좌절도 컸다.

“점프 연습 중에 무릎 연골이 찢어졌어요. 물이 차오르고 당장 수술해야 했지만 공연을 중단할 수는 없었죠. 은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수술을 거부했어요. 2년간 약물치료를 받았죠. 믿기지 않겠지만 평소에는 목발을 짚고 다니거나 걸음을 걸을 수 없어도 무대에 나갈 시간만 되면 저도 모르게 목발을 내던지고 올라섰어요.”



지난해 12월14일 기록한 1000회 연속 출연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2년 전에는 폐암을 선고받은 아버지가 수술실로 들어가시는 것을 보고 공연장으로 향하기도 했다. 지금도 투병 중인 아버지를 생각하며 더 열심히 하고 있다. 뛰어난 후배들이 들어올 때면 위기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하루하루 도전하듯 산다. 오디션 심사에도 참여하고 팀의 안무자로 활약하는 등 역할이 커졌다. 올해는 <사춤>의 해외홍보 활동에도 주력할 생각이다. 지난해 참가한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무명의 공연이었지만 마지막 3일간 완전매진을 기록하기도 했다.



“처음엔 관객과, 무대와의 약속이라고만 생각하고 한 번도 빠짐없이 공연장으로 향했어요. 이해못하는 동료들도 있었죠. 그런데 사실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하자는 신념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초창기 때는 작품이 비웃음을 사기도 하고 배우를 냉대하기도 했거든요. 잘 견딘 덕분에 저도, 작품도 성장할 수 있었고 관객의 사랑도 커졌죠. 어느 무대든 거짓없이 최선을 다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최고의 무대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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