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이상적 남성 그리며 옷 만드니 지치질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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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9.01.20 09: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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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남성복 만드는 국내 유일 여성 디자이너 우영미
ㆍ男子의 스타일을 만드는 女子

눈물의 폭탄세일, 땡처리, 폐업정리…. 불경기로 인한 유명 남성복업체의 부도가 줄을 이으면서 요즘은 멀쩡한 남성 정장 한 벌을 단돈 몇 만원에도 살 수 있다. 이처럼 좋은 품질의 옷을 싸고 쉽게 살 수 있지만 대한민국 남성들의 옷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최근 기업체들이 ‘비즈니스 캐주얼’을 강조하면서 패션 연출감각까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남성의류업체나 소비자인 남성들 모두 한숨을 쉬고 있지만 국내 유일의 남성복을 만드는 여성 디자이너 우영미씨(50)는 미소를 감추지 못한다. 해외 명품 브랜드와 별로 가격 차이가 나지 않는 그의 옷은 불경기에도 아랑곳없이 잘 팔리는 데다 지난해 말엔 국내 패션디자이너들에게 최고 영예인 ‘대한민국 패션 대상 디자이너 부문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또 자신의 브랜드인 <솔리드옴므> 런칭 20주년 기념 패션쇼에는 대한민국 패션 사상 최대인 3000여명의 관객들이 몰려들었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단독매장의 수입은 물론 수출도 호조를 보여 달러나 유로화가 올라도 행복하다. 그의 옷은 왜 잘 팔리는지, 남성들이 패션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는 방법은 무엇인지, 불경기와 남성복의 연관성은 무엇인지를 계절을 1년 앞서 2009년 파리컬렉션용 가을겨울 의상을 준비하느라 바쁜 우영미씨를 만나 물어봤다.

-얼마 전 고급 남성 정장 폐업 세일에서 남편 겨울모직코트를 9만5000원에 샀다. 정장도 10만원이면 훌륭한 제품을 살 수 있더라. 요즘 같은 상황에 제가격을 주고 남성복을 사는 것이 오히려 미친 짓인 것 같은데 ‘솔리드옴므’의 옷이 고가에도 잘 팔리는 이유가 뭔가.
“우영미란 디자이너와 솔리드옴므란 브랜드에 대한 신뢰감 덕분이 아닐까. 20년간 한결같이 절제된 선의 옷을 만들어왔고 브랜드도, 디자이너도 바뀌지 않아 충성고객이 많다. 특히 우리 주요 고객들은 철지난 싼 상품보다는 신상품을 제때 사서 먼저 유행을 즐기는 계층이어서 경기엔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 또 전에는 아르마니, 구치 등 해외 유명 브랜드만 선호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요즘 패션리더들은 브랜드보다는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제품을 구입하기 때문에 오히려 명품들과도 경쟁력이 있다.”

-프랑스 파리에도 단독 매장이 있고 전유럽에 제품이 수출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서양 남성들과 한국 남성들의 패션 감각이나 취향의 차이는 뭔가.
-유행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대한민국 남성들, 특히 젊은층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본인의 열정만으로 패션감각이 돋보이는 것은 아니다. 양복이 한국에 들어온 지 겨우 100여년임을 감안하면 우리는 양복을 입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내는 내공과 연륜이 부족하다. 옷을 구입할 때도 서양 사람들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 혹은 자신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것을 선택하지만 우리나라 남성들은 그 시기에 어떤 디자인과 색상이 유행이고 인기 아이템인가에 더 신경을 쓴다.”

-1981년 반도패션 디자이너로 출발, 솔리드옴므란 자신의 브랜드를 만든 지 21년째다. 지난 20여년간 한국 남성이나 남성패션의 가장 큰 변화라면 무엇인가.
“20여년 전만 해도 남성복시장에서 디자이너 브랜드는 거의 존재하지도 않았고 전형적인 신사복이나 점퍼뿐이었다. 또 당시엔 남자들이 패션에 신경을 쓰거나 옷을 잘 입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 부정적인 인식이 더 강해서 멋을 부리고 싶어도 제대로 부리지도 못했다. 하지만 요즘은 남성들이 옷을 못입는 것이 비난 받는 세상이다. 패션 정보도 풍부해지고 세상 모든 것이 비주얼화되면서 남성들의 자기표현 욕구도 과감해지고 대범해졌다. 또 몸관리를 잘해 20년 전에 비해 남성들이 많이 날씬해져 사이즈를 수정해야 할 정도다. 젊은 남성들의 신체 사이즈가 완전히 달라져 모델들의 경우엔 한국 모델들이 서양 모델에 비해 키도 크고 팔 다리도 더 길다. 신인류가 등장한 것 같다.”

-한국 중년 남성들의 패션 감각에 대해 어떻게 보나.
“한국 중년 남성들은 너무 불쌍하다. 아이들 교육 등으로 정작 자기 취미생활이나 옷에 투자하기가 참 힘든데 최근 각 기업체마다 비즈니스캐주얼로 옷차림을 규정한 곳이 늘어나면서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스트레스 받고 전쟁을 치른다고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패션에 관심이 많을 때는 돈이 없고,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면 몸매가 따라 주지 않아 아저씨패션을 입게 되고…. 남성들에게 옷은 그저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하러 가는 노동복이자 치열한 경쟁사회에 나서는 전투복이다. 매일 전쟁을 치르러 나서는 이들에게 너무 초라한 옷차림도 서글프지만 우리 사회가 옷입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주는 것도 가혹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비즈니스 캐주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한다면.
“캐주얼이 들어갔다고 무조건 독특한 재킷이나 블루진을 입으라는 것은 아니다. 정장에 와이셔츠 대신에 폴라 니트를 입거나 요즘처럼 추울 때 셔츠에 카디건을 덧입으면 된다. 넥타이 등 전형적인 신사정장 차림만 아니면 되지 않을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남성패션이 있다면?
“그래도 요즘은 많이 교육이 되어 정장차림에 흰 면양말을 신거나 벨트와 멜빵을 함께 하는 실수를 하는 남성들이 급격히 줄었다. 다만 스팡클이나 인조보석이 장식된 넥타이를 매는 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어두운 남성복에 화사한 무늬의 넥타이로 포인트를 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무대복에 쓰이는 스팡클이 장식된 넥타이라니….”

-일본에서 ‘레옹족’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할 만큼 반향을 일으킨 중년 남성 패션지 레옹을 보면 머리가 벗겨진 50, 60대 영감님들이 가죽 점퍼에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온갖 멋을 다 부리는 패션화보들이 가득하다. 중년 남성들의 패션로망을 담아 화제가 되었는데 한국은 어떤가.
“이제 패션에서 숫자상의 나이는 의미가 없다. 자신의 마음과 눈높이, 취향이 패션 연령을 결정짓는다. 20대에도 매우 보수적인 옷차림을 입는 이가 있는가하면 60대에도 청년패션을 즐기는 어르신들도 많다. 단 패션은 마음만이 아니라 체형 등도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무조건 젊은 옷차림을 선호하면 멋지다기보다 주책스럽게 보인다.”

-국내 유명 인사 중 옷을 잘 입는 사람을 고르라면….
“이명박 대통령은 코디네이트가 꽤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테니스 등 운동으로 몸 관리를 잘해서 옷을 입으면 선도 잘 산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이 옷차림에 대한 자신감이 있는 것 같다. 결코 잘생긴 얼굴이 아닌데 멋쟁이로 보이는 이유가 자신감 덕분이다.”

-지금도 올 가을과 내년 겨울 작품을 준비하는데 1년 전에 어떤 옷이 유행할지 어떻게 예측하나.
“20년 가까이 세계 각국을 다니며 트렌드를 분석하고 남성복의 흐름을 보면 어떤 옷이 잘 팔릴지 막연하지만 감이 온다. 또 내 경우 해마다 1년 먼저 파리컬렉션을 통한 국제무대에서 시험을 치르는 셈인데 해외 언론이나 바이어들의 반응과 주문을 보면 한국 시장에서도 호응을 얻을 것 같은 예감이 거의 맞아 떨어진다.”

-여성이 남성복을 만드는 것이 장점인가, 단점인가.
“처음엔 여성복으로 출발했는데 지금까지 여성복을 만들었다면 옷도 나처럼 나이들고 지루해져 벌써 포기했을 것이다. 디자이너란 자신을 중심으로 옷을 만들기 때문이다. 난 여성이기 때문에 내 마음속에 있는 가장 이상적인 남성을 그리며 옷을 만들어 지치지도 않고 해마다 더 옷이 젊고 신선해진다는 평가를 받는 것 같다. 실존하진 않지만, 부드럽고 상냥하며 여성을 배려할 줄 아는 늘 젊은 남성을 위해 옷을 만든다. 유럽에서도 날 소개할 때 ‘남성복을 만드는 한국 여성디자이너’로 소개하는 걸 보면 장점임에 틀림없다.”

-그 흔한 사교모임에도 안 나가고, 인터넷도 못하고 휴대폰도 최근에야 구입해 문자 메시지 보낼 줄도 모르고 운전도 못한다고 들었다. 그렇게 박물관에 어울릴 듯한 성향인데 어떻게 기발한 아이디어의 패션쇼로 주목을 받고 잘 팔리는 남성복을 만드나.
“패션디자인은 첨단기기들이 해주는 것이 아니다. 아이디어란 사소한 곳에서, 우연히 떠오르기도 하고 그렇게 외부의 잡다한 일이 없고 혼자 고립된 상태에서 옷 만들기에만 열중할 수 있다. 나를 들들 볶고 괴롭혀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 그저 옷만 열심히 만드는 디자이너란 신뢰감 덕분에 이 불경기에도 옷이 잘 팔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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