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이콘은 神과 감성접촉, 2000년史 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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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9.01.16 09: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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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방가르드’ 펴낸 이덕형 교수

“제가 책 뒤에 참고문헌을 잔뜩 나열한 것은 결코 현학취미가 아닙니다. 누가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다면 길잡이가 됐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이콘과 아방가르드>(생각의나무)는 초기 로마제국부터 비잔티움을 거쳐 러시아의 아방가르드 미술까지 2000년에 걸친 이콘(성상화)의 역사를 서양사상사의 계통을 따라 서술한, 600쪽이 넘는 방대한 저술이다. 그리스 교부철학의 예술로 시작해서 비잔티움(동로마)제국에서 꽃을 피웠고 그리스정교와 함께 러시아로 전파돼 칸딘스키나 말레비치 같은 아방가르드 작가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이콘의 변천사가 한눈에 드러난다. 국내에서는 물론, 외국에서도 이콘의 통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 책을 쓴 이덕형 성균관대 교수(48·러시아문학)는 미술사가가 아닌 문학연구자로서 이콘을 연구해왔다. 그만큼 이콘 자체보다는 이콘의 전통에 담겨있는 서양사상의 한 갈래와 전공인 러시아 문화예술의 뿌리를 규명하는데 더 큰 목적을 두고 있다.

“동로마제국과 서로마제국이 갈라진 뒤 서로마제국과 그 뒤를 잇는 라틴 계통의 교회에서는 이콘이 사라졌지요. 서양철학사를 보면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2세기부터 9세기까지 공백으로 남았다가 스콜라철학으로 바로 넘어가는데 이 공백기는 그리스 교부철학의 시대였고 이 시기의 중요한 예술이 이콘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중세 이후 서유럽에서는 이성과 논리 중심의 철학이 발전하면서 이콘이 배척당한다. 원래 이콘은 단순히 신과 성자의 모습을 그린 교회의 장식물이 아니라 전례 도구, 즉 그림을 통해 신과 감성적으로 접촉하는 매개물이었다. 그러나 감성이나 감각이 서유럽의 주류로부터 배척당한 뒤 이콘은 비잔티움을 거쳐 러시아의 교회와 예술로 전승된다.

이 교수가 이콘을 접한 건 1980년대 프랑스 유학시절이다. 당시는 러시아 유학이 불가능했는데 그의 지도교수가 파리 근교 뫼동의 가톨릭 예수회 수도자들의 정교 공동체인 생조르주를 소개해줘 그곳에서 4년동안 정교의 교리와 이콘의 제작기법을 배웠다. 지금은 없어진 뫼동의 예수회는 로마가톨릭 소속이지만 학문으로서 정교와 비잔틴 문화를 연구하는 곳이었다.

귀국한 뒤 이콘 연구에 본격적으로 매달린 그는 2004년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소설 <검은 사각형>을 출간했다. 출판사 사장인 윤근이 이콘을 추상화한 말레비치의 그림 ‘검은 사각형’의 기원을 찾아서 상트 페테르부르크, 파리, 피렌체, 콘스탄티노플, 카파도키아 등을 순례하는 내용이다. 그때 소설 속에서 윤근이 쓰고 있던 책이 바로 이번에 나온 <이콘과 아방가르드>이다. 그 중간인 2006년에는 <비잔티움, 빛의 모자이크>란 책을 내기도 했다.

“이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부정신학이라고 불렸던 그리스 교부철학이 미셸 푸코, 질 들뢰즈, 장 뤽 마리옹 등 현대철학자들의 주장과 비슷한 걸 알게 됩니다. 초월자를 언어라는 테두리에 가둘 수 없으며 침묵과 관조, 이콘과 모자이크 같은 ‘빛의 예술’을 통해 존재와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부정신학은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와도 통하지요. 서유럽 교회의 예술이 모든 것을 소실점으로 모으는 원근법을 발명했다면 그리스 정교의 이콘 미학은 아방가르드 작가들이 채택한 다초점과 나열의 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의 책은 이처럼 현대철학과 아방가르드 예술이 서유럽 사상사에서 사라진 교부철학과 비잔티움제국에 연원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책의 서술방식을 새로운 중심-재코드화-탈중심·재영토화-다원적 중심 등 들뢰즈의 <천 개의 고원>의 용어로 전개해나간 것도 저자의 이런 생각을 대변한다.

이번 책에서 이콘의 통사적 연구를 일단락지은 이 교수는 다음 연구과제로 “문명사를 역사가 아닌 패러다임의 구조로 묶어서 연구하는 것, 그리고 신과 인간의 매개물인 ‘빛의 예술’이 지역과 물리적 재료에 따라 달라지는 형태를 연구하는 것”을 들었다. 대학에서 종교문화론과 비교문화사상론을 주로 강의하는 그는 이콘과 탱화, 산수화의 유사성에도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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