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가족은 애틋한 또는 고통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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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9.01.08 09: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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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소설집 ‘착한 가족’ 낸 서하진씨

착한 가족…서하진 | 문학과지성사

오전 10시. 그녀는 보푸라기가 인 낡은 점퍼에 목도리를 두르고 화장기 없는 맨얼굴이다. 초췌하고 불쌍해 보이는 그녀는 아들이 저지른 폭행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피해 학생의 부모에게 용서를 구하러 가는 길이다.
오후 2시. 검은 모직코트를 입은 그녀는 신발장에서 9㎝ 높이의 하이힐을 신고 우아한 걸음걸이로 남편의 회사로 들어간다. 그녀는 남편이 회사에서 밀려나는 것을 막기 위해 화려한 분장과 화술로 남편의 경쟁상대와 독대한다.

그리고 저녁.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찾아간 그녀는 어머니에게 죽을 떠먹이며 하루에 일어났던 일들을 아이처럼 종알종알 늘어놓는다. 소설가 서하진(49)의 새 소설집 <착한 가족>의 주인공들은 이렇게 여러 가지 가면을 바꿔 쓰는 ‘팔색조’와 같다. 표제작 <착한 가족>의 주인공 여자는 아들, 남편, 어머니를 위해 전혀 다른 세 개의 가면을 첩보 영화의 주인공처럼 능숙하게 척척 바꿔 쓴다.

<아빠의 사생활>의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시인 겸 교수이자 자상한 아버지는 딸에게 “사는 일은 연극 같은 거라고, 무대가 바뀌면 다른 배역을 맡듯 눈빛을, 표정을, 마음을 바꾸어보라”고 말을 건넨다. 완벽해 보이는 아버지였지만, 사실 그는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 아버지와 ‘미상녀’의 밀월 여행을 ○○○아 홍콩으로 간 딸은 평소의 모습과 전혀 다른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혼란에 빠진다. 혼잡스러운 곳은 싫어하던 아버지가 사람들로 붐비는 놀이공원에 가고, 차가운 음식을 싫어하던 아버지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천진스레 웃는다. 딸은 말한다. “나는 이제 아빠라는 사람에 대해 헷갈리기 시작했다”고.

서하진은 이렇게 가장 기본적이고 가까운 관계인 가족관계를 통해 ‘우리는 매일 어떤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가’에 대해 묻고 답한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은 다양한 역할에 맞는 다양한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착한 가족>의 주인공은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슈퍼우먼’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가면은 가면에 그치지 않는다. 가면은 종국에 우리 내면으로 침투해 어느새 무엇이 진짜 얼굴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거나, 자신의 진짜 얼굴을 잊어버리게 된다. <슬픔이 자라면 무엇이 될까>의 주인공은 말기 암에 걸린 평범한 주부. 가족에게 봉사하는 것까지도 모자라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며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아온 그녀는 정작 자신은 돌보지 않는다.

그런 그녀가 암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그녀의 친구는 “너는 다른 사람 상처 내는 일, 싫은 소리, 해 되는 짓 절대 안 하잖아. 그게 다 네 상처로 돌아간 게 아닌가 싶어”라고 말한다. 그녀는 “병에 걸리는 일은 참으로 쓸쓸하구나”라고 혼자 중얼거린다. 하지만 가면을 비집고 본 얼굴이 맨살을 불쑥 드러내는 순간이 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떠먹여주는 죽을 받아먹을 때(<착한 가족>), 강아지에게 밥을 줄 때(<인터뷰>) 그녀들은 무거운 가면을 내려놓고 숨을 고른다. 그것은 사회적 관계와, 고단한 일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순간에 찾아온다.

문학평론가 정여울씨는 “상대의 몸짓 언어와 옷차림에서 내면의 동작까지 읽어내는 기술에 도가 튼 우리 시대의 사모님들은 서하진 소설의 단골 주인공”이라며 “자신의 패를 결코 들키지 않는 도박사가 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현대인, 그 핑계를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는 캐치프레이즈로 돌리는 그녀들에게 가족은 고통과 행복의 진원지이자 타락의 진원지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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