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률] 성폭력 ‘알려야’ 응어리 풀려요, 겁내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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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9.01.06 09:19:36
  • 조회: 330
ㆍ교수 성폭력 첫 형사처벌 이끌어낸 최아룡씨

최아룡씨는 ‘최김희정’이라는 가명으로 언론과 인터넷에 알려졌다. 대학내 교수 성폭력 사건으로 형사 고소를 통해 최초로 해당 교수에게 벌금을 선고 받게 한 당사자이다. 2001년 이른바 ‘ㅅ대 ㄱ교수 성폭력 사건’이다. 그가 일을 당했을 당시에는 이미 서울대에서 ‘신 교수 사건’(‘우 조교 사건’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피해자를 부각시키는 표현은 부적절하므로 신 교수 사건으로 표기한다)으로 교수와 학생 간의 성폭력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상태였다. 신 교수 사건이 민사 소송을 통해 성희롱에 대한 손해배상을 인정한 첫 판결이라면 그는 한 단계 더 나아간 셈이다. 지난 18일 자신이 운영하는 광화문의 요가원에서 그를 만났다. 아직은 상담도 받고 있고 가끔씩 눈물이 나기도 하지만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최씨는 사건 이후 “타인의 눈으로 자꾸 나를 보게 되고 스스로를 ‘나쁜 아이’로 규정짓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며 성폭력 피해자로서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 괴로운 일이라고 했다. 성폭력 피해를 공론화하는 과정도 힘들었다. 최씨는 “믿고 의지했던 사람들이 ‘가해자인 교수도 가정이 있지 않으냐’며 사건이 커지는 것을 말렸다”면서 “혼전순결 등을 강조하는 문화이면서 그 도덕을 깨는 행동을 한 남성에게는 어떻게 관대할 수 있는지 우리 사회 도덕의 이중잣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성폭력 사건의 경우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가 용기를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힘들더라도 용기를 내서 피해자 자신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가해자도 피해자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해요. 처음부터 ‘재판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피해자는 거의 없어요. 아무리 재판을 거치고 피해자가 이긴다고 해도 결국 승자도, 패자도 없어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건이니까요.”

-사건이 일어날 당시 상황에 대해서 다시 말씀하시는 게 아직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조금씩 편안해지고 있어요. 밖으로 자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안하는 것보다 좋은 것 같아요. 상처가 옅어지는 효과도 있을 것 같고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안으로만 향하는 것은 덮어두는 것뿐이니까요.”

-그렇다면 사건에 대해서 말해 줄 수 있습니까.
“문제의 교수는 제 지도교수였고 대학원 원장이었어요. 저는 박사과정이었는데 간담회 겸 학생들과 만나는 자리를 만들었죠. 식당을 예약하고 후배들에게 연락해서 참석을 부탁하는 일을 제가 했습니다. 문제는 1차 밥을 먹는 자리에서부터 있었어요. 교수님은 숟가락으로 남학생의 머리를 때리고, 고기를 굽는 집게로 배를 찌르며 폭언을 했어요. 교수님들과 석·박사과정 학생들이 회식을 여러번 했지만 그런 경우는 처음이라 다들 충격이었지요. 그러는 사이 이미 교수님은 ‘2차로 가자’며 일어섰고 제가 여학생 후배들을 집으로 보냈어요. 저도 자리만 만들어주고 나오려 했는데 그렇게 못했어요. 1차에서 본 것도 있어 나는 교수님과 멀리 떨어져 앉았는데 교수님이 옆자리 의자를 손으로 탁탁 치면서 옆으로 와서 앉으라고 했어요. 당시 모두 남학생이었고 석사과정 학생들이었는데 ‘누나, 옆으로 가서 앉아요’라고 말하는 바람에 옆으로 가서 앉았지요. 교수님은 ‘내가 너를 여자로 만들어주겠다’고 말하더군요. 너무 황당해서 눈만 끔뻑거렸는데 교수님이 ‘그게 무슨 뜻인지 아냐’고 다시 물어봤어요. ‘네?’라고 되묻자 씨익 웃더니 끌어안고 뽀뽀를 했어요.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지요.”

-어떤 마음이 들었나요.
“문제는 내일도 봐야 하고 계속 논문 심사도 받아야 하는 교수님과의 사이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었죠. 당시 가해자인 교수님은 학생들로부터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고 비판 받았던 사람이었어요. 그때 교수님에 대해서 비판하는 글이 학교 내부 게시판에 올라왔는데 교수님이 저한테 그 글에 대한 반박문을 써달라고 하더라고요. 저의 양심에 반했지만 그것까지 써줬어요. 그런데 그런 내가 바로 피해자가 된 것이죠. 그런 일이 나한테는 안 일어날 줄 알았어요. 반박문을 써준 죄책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지요. 사건이 있고 처음에는 교수님에게 e메일을 보내서 사과를 요청했지만 답변이 없었어요. 피해자들은 피해 그 자체만으로도 아주 힘들어요.

-사건 후에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요.
“자꾸 사건의 장면이 떠오르고 못견디겠다는 상황인 거예요. 밥도 못먹고 한달 동안 죽만 먹었습니다. 안 아픈 데가 없었고요. 2002년 재판이 모두 끝났을 때는 두드러기가 온몸에 나기 시작했고요. 더 큰 문제는 나 스스로를 자꾸 ‘나쁜 아이’로 규정짓게 된다는 거예요. 타인의 눈으로 나를 보게 되는 거예요. 누가 나를 쳐다만 봐도 ‘내가 뭐가 문제가 있나’라고 생각하게 되고 피해의식이 생기고 움츠러들었죠. 여성으로 보여지는 것에 대해서도 두려워졌고요.”

-피해자로서 가명을 썼다고는 하지만 피해 사실을 알리고 언론 인터뷰에 응하고 인터넷 카페에 칼럼을 쓰는 등 사건을 적극적으로 공론화했습니다. 덕분에 서울 5개 대학이 모인 ‘교수 성폭력 사건 뿌리뽑기’ 연대체도 결성됐고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왜 그렇게 열정적으로 나섰습니까.
“억울했어요. 위에 언급한 반박문을 써준 것에 대해 죄책감도 컸고요. 그 반박문을 쓴 대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학교는 당시에 올랐던 ㄱ교수 비판글과 내 반박글 모두를 삭제하고 그 사건을 덮고 넘어갔는데 결국 일이 이렇게 터졌죠. 학교가 이런 일들을 제대로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내 사건을 계기로 전체 교직원이나 학생에게 투명하게 알리고 경고나 주의를 주는 등 절차를 당장 시작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교수의 신상을 공개하라는 것도 아니었고, 다만 이 사건 자체를 투명하게 처리했으면 했는데 그것도 제대로 안됐어요. 나는 감춰져야 하는 사람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건이 공론화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줬을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말렸어요. ‘대학원이 위기인데 이런 문제를 일으켜서 되겠느냐’는 식이었죠. 지금도 가슴에 사무치는 말이 ‘별 볼일 없는 학생이 이 사건을 계기로 삼아서 커보려고 한다’는 말이었어요. 가해자들이 자신의 행위를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를 깎아 내리려 하는 것이 이런 사건 이후 전형적인 패턴인데 박사과정인 내가 나이가 많은 것은 당연한 것인데도, ‘나이 많은 학생이라 덮고 가지 못한다’라는 식으로 나이까지 걸고 넘어지더라고요. 또 ‘교수의 사회적 지위도 있고 가정도 있으니 양보하라’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 피해자인 나는 가정을 이룰 수 있을지 그 자체도 걱정하는 상황인데 말이죠. 혼전순결이나 남녀칠세부동석을 강조하면서 그것에 반하는 행동을 한 ‘남자’에 대해선 관대하고 오히려 피해자를 손가락질 하는 이중잣대를 처절하게 느꼈지요. 저를 도와주신 분들만 봐도 남자냐 여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남성 중에서도 도와준 분들이 있고 여성 중에서도 아닌 분들이 있어요. 양성 평등의 의미를 깨닫게 됐지요. 그리고 전혀 얼굴조차 모르는 많은 분들이 언론사에 사건을 제보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 주셨어요. 서울대 신 교수 사건이 성희롱 배상 판결을 받으면서 제 사건도 그나마 수월하게 처리된 것이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도 초석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생겼어요.”

-남편을 만나는데 불편함이 없었나요.
“다른 것은 없었어요. 오히려 한국 남자들의 경우엔 성폭력 사건 이야기를 하면 괜찮다고 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본인이 괜찮다고 해도 시댁에서 그것을 제대로 받아주지 못하잖아요. 외국인이다 보니 이해의 폭이 넓어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는 분위기라 편하고 좋아요. 다만 저를 ‘교수만 꼬드이는 아이’로 볼까봐 걱정됐었죠.”

-이 사건 자체가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지만, 법정투쟁까지 겪으면서 개인적으로 깨달은 게 있다면 뭡니까.
“한편으로는 나를 성장시켜 준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남편도 만나게 됐고요. 사실 없었어야 할 일이죠. 그렇지만 피해 사실이 극복되니까 이런 얘기도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행복한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아직도 가해자 생각하면 힘들어요. 재판에서 이겼지만 승자도 패자도 없지요. 나의 교수였고 아는 사람이었고 그 사람은 가정도 있고. 그런 거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아요. 결국 이런 일 자체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건의 투명한 공개가 우선돼야 합니다. 피해자로서는 힘들겠지만 사과만 받고 무마하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나중에 후유증이 크게 나타나거든요.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처음엔 사과 등으로 사건을 대충 덮고 나서 나중에 비슷한 맥락의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면 극도로 흥분하거나 힘들어합니다. 특히 학교 폭력의 경우엔 더 그렇습니다. 상대가 교수인 경우 남녀를 떠나 ‘권력을 이용한 폭력’이잖아요. 피해자가 힘들더라도 용기를 내야 합니다. 어려워도 제2, 3의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도 그것이 좋은 일입니다. 가해자로서도 ‘실수’라고 하면서 넘어가면 그 실수가 바로 다음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어요. 피해자에게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지요. 그게 서로에게 좋고 또다른 사건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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