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아이들 떠나면 앓아요, 그래서 또 데려오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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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12.29 08:5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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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15년간 71명과의 만남, 70번의 이별
ㆍ그래도 또 행복한 이별 준비하는 위탁모 김복순 씨

5년 전쯤이다. 연말 기획기사 때문에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의 동방영아일시보호소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위탁모 체험을 나간 적이 있다. 의료자격증이 없는 일반 자원봉사자 자격으로 건강한 28명의 아이를 돌봤다. 비교적 쉬운 일이었지만 젖병을 물리고, 트림을 시키고, 기저귀를 갈고, 옷을 입히는 반복되는 일에 정신이 없었다. 아이를 안는 자세가 어설퍼서인지 두 팔도 저려왔다. 초보의 손길이 불편했던 아이들이 하나 둘씩 울기 시작하더니 단체로 울음을 터뜨려 방 전체를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실수도 저질렀다.

정신이 없었던 그때 ‘사랑이’ 엄마를 만났다. 소위 언청이라고 불리는 구순구개열을 앓다 수술을 끝낸 사랑이를 돌보던 위탁모 김복순씨(당시 57세)였다. 김씨는 10년째 위탁모를 하고 있다고 했고 그의 손을 거쳐간 아이들이 52명이라고 했다. ‘고작 하루 아이 돌보는 일도 이렇게 정신이 없는데 어떻게 50명이 넘는 아이를 10년 동안이나 돌봤을까’라는 생각에 그를 따라 그의 집으로 따라가서 인터뷰를 했다.

5년이 지나 다시 찾은 그의 집은 변한 것이 없었다. 방 하나를 통째로 비워 아기침대를 두었고 한쪽 벽면 전체는 장난감이, 또다른 벽은 아기 모자가 가득차 있다. 거실 벽은 그동안 김씨의 손을 거쳐 해외 또는 국내로 입양된 아이들의 얼굴 사진으로 도배돼 있다. 달라진 것은 사랑이가 있던 방을 12개월이 지난 규민이, 5개월된 정은이, 3개월된 막내 지우가 차지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15년 동안 위탁모로 입양을 기다리는 어린 천사 71명을 돌보는 사이 그도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됐다. 아이를 돌보는 것이 힘에 부치는 나이인데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힘들 것 같죠? 귀찮을 것 같고. 그런데 얘네들이 없으면 심심하고 서운해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오히려 아이들이 있어서 좋아요. 가정이 화목해지는 것 같고. 남편이 은퇴하고 몇년째 아이들을 같이 봐주는데 말다툼이라도 하려들면 애들이 우릴 쳐다보고 방긋방긋 웃는데 어떻게 싸워요. 부부싸움이 안되죠.”
김씨의 몸에 밴 봉사활동은 손자·손녀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모범이 되고 있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동생들이 입양돼 집을 떠나는 날 유치원에 다니는 손자는 실내화 한 켤레를 사들고 와서는 “아기한테 꼭 선물로 싸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고 한다.

15년을 반복해 왔지만 여전히 어려운 것은 아이들과의 이별이다. 김씨는 “아이들이 떠나고 나면 한 일주일은 앓아야 하고 밤에 잠도 잘 못잔다”며 “그래서 또다시 다음 아이를 데리고 오고, 데리고 오고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새로운 아이가 왔기 때문에 옷이나 신발을 빨아서 입히고 신겨야 하지만, 지난달에 미국으로 입양된 아이가 눈에 밟히는 바람에 체취가 스민 신발을 아직도 빨지 못하고 있단다.
무엇이든 ‘체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10년, 15년 동안 반복해서 하다보면 그 자체가 ‘삶’이 된다.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체험’이 아닌 ‘삶’으로 70명의 아이들과 함께 해온 김씨는 “앞으로도 기력이 떨어질 때까지는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다.

-위탁모를 처음 시작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1993년에 조카의 딸을 키우게 됐어요. 5살 때까지 키웠는데 데리고 가니까 너무 서운하더라고요. 그때 우리 딸은 28살이었고 몸이 좋지 않아서 일을 못하고 집에 있었어요. 뒷집에도 위탁모 하시는 분이 있어서 ‘우리도 한번 키워 보자’는 생각에 아이 한 명을 데리고 온 것이 시작이었어요. 그때는 아기가 오면 무조건 딸 차지였어요. 어찌나 귀여워하는지 전 안아보지도 못했다니까요. 그렇게 5~6년 딸이 같이 키워줬는데 몸이 좋아져서 직장생활을 하게 됐지요. 그 이후부터는 남편이 도와줬어요. 정년 퇴직하고 나서도 잘 도와줘서 집에 있는 장난감이나 모자, 신발 같은 건 다 남편이 사온 거예요. 익숙해지면서 2명도 데리고 오고, 3명도 데리고 오고 그렇게 됐어요.”

-위탁모를 하려면 조건이 따로 있나요.
“그런 건 아니에요.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시작 전에 교육을 받고, 한 달에 한 번씩 육아와 관련된 강의를 들어요. 우유 온도는 어떻게 맞추는지, 체온은 어떻게 재는지 그런 것을 잘 설명해 줍니다. 분유나 기본적인 예방접종 이런 것은 동방사회복지회(김씨는 이 기관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쪽에서 지원해 주지요.”

-그동안 사생활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셨겠어요. 아이들 보느라 어디 동창회라도 제대로 나가셨겠습니까.
“그건 맞아요. 동창회도 거의 못나가고 나가도 애들 한 명씩 꼭 데리고 나갔으니까 제대로 즐기진 못했죠. 그런데 제 마음은 하나예요. 친구들이나 친척들은 제 곁에 늘 있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은 길어야 1년이고 몇 개월만 지나면 저를 떠나버리잖아요. 그러니까 옆에 있는 사람들보다는 아이들이 먼저지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키운 아이들 이름을 모두 기억하시나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기억나지는 않지요. 그래도 얼굴은 다 기억나요. 잠깐만요. (일어서서 방으로 들어가서는 육아수첩 70여권을 꺼내 왔다.) 이것이 아이들 처음 왔을 때부터 우리 집에 있을 동안 예방접종한 것, 키나 몸무게 등이 얼마나 변했는지에 대해 기록한 수첩이에요. 사진이 들어있는 것은 우리 집에 있으면서 돌을 지낸 경우에 동방사회복지회 쪽에서 단체 돌잔치 해줄 때 찍은 것이고요. 여기 맨 뒤에는 아이들이 떠나는 날 제가 느낀 것 등을 기록해 놓은 거예요. 울면서 쓴 것도 있어서 삐뚤빼뚤하고 맞춤법도 틀릴 거예요.”

-이 아이들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아이들이 있습니까.
“3명 정도가 선명하게 기억이 나요. 한사랑이요. 미숙아에다 언청이로 태어났어요. 2003년에서 2004년 사이에 우리집에 있었는데 우유도 제대로 못먹었어요. 기도가 얇아서 우유를 잘 못삼켰어요. 한번에 10㏄ 정도밖에 못 넘겼고 많아야 50㏄ 정도? 숨이 꼴깍꼴깍 넘어가는 모습을 보면 아주 힘들었지요. 우리집에서 언청이 수술도 하고 돌 지나고 나서 입천장 수술도 했어요. 수술 한 부위를 자꾸 만지니까 손을 묶어두는데 안쓰럽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그랬어요. 사랑이는 미국으로 입양 갔어요. 창희는 심장병이 있었는데 울면 온 몸이 새파랗게 질려서 키우기가 힘들었어요. 심장 수술을 여러차례 받았는데 괜찮다고 하기에 목욕을 시켰더니 숨이 넘어가려고 하더라고요. 슬리퍼만 신고 뛰어서 병원에 데리고 간 적도 있어요. 결국 제 손에서 못키우고 병원에 입원시켰어요. 제가 데리고 있으면 아이를 더 힘들게 하고 혹시나 잘못되면 어떻게 하겠냐고 해서 데려다 줬지요. 제 손에서 입양 보냈으면 했는데…. 경훈이도 기억이 나요. 항문이 없었어요. 항문이 없으니 호스를 달아서 위로 똥을 다 빼내야 했지요. 그 호스가 수입품이었는데 하루에 5~6번씩 똥을 빼주고 나서는 호스도 다 빨아 썼어요. 그건 남편이 다 빨아줬어요. 항문 수술을 했는데 수술 후에 얼마나 아팠는지 변만 보면 우는 거예요. 인공으로 수술을 해놨으니 그 어린 것이 얼마나 쓰라리고 아팠겠어요. 경훈이도 울고, 저도 울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저는 종이 기저귀를 쓴 지가 얼마 안됐는데 당시에 경훈이는 조금만 변을 봐도 아프다고 하니까 기저귀를 바로바로 갈아줘야 했어요. 하루에 기저귀를 70개까지 쓴 적도 있어요. 우리집에 사람들이 냄새 난다고 못들어 올 정도였어요. 변이 제대로 처리가 안되니까요. 애가 힘들어하니까 저도 어찌나 힘들고 많이 울었던지. 제가 힘든 것도 힘든 것이었지만 입양을 못보낼까봐 걱정을 많이 했어요. 결국 입양 잘 갔다고 하더라고요. 경훈이는 연락이 안돼요. 힘들게 키웠는데 연락이 안되더라고요.” (세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인터뷰 내내 웃기만 하던 김씨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아이 71명을 키우면서 70번 정도의 이별을 경험하신 셈입니다. 그런 이별이 힘들지 않은가요. 그때마다 어떻게 극복하세요.
“아이들 입양 들어가면서 집 떠나고 나면 몇 일이 뭐예요, 일주일씩 아주 힘들어요. 지난달 3일에 갔다는 아이는 지금도 눈에 밟혀요. 여기에 아이가 신던 신발이 있는데 빨아서 다음 아이들 신겨야 하는데 빨지도 못하고 있어요. 그거 보면 자꾸 생각나니까요. 그래서 큰 애로 이번에 한명 더 데려온 거예요. 보낸 아이를 잊으려고. (김씨의 눈시울이 빨개졌다.) 아이들 보내고 나면 잠도 안와요. 행복할까 걱정도 되고 잘 갔나 걱정도 되고….”

-이제 환갑이 지났고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 그만둘 생각은 없습니까.
“다른 건 힘들 게 없어요. 생후 1년 넘은 아이들 같은 경우에 예방접종 한번 다녀오면 기운이 쫙 빠지지만 어린 아이들은 별로 많이 힘들진 않아요. 아이 2~3명이 동시에 울어버리면 좀 힘들고.(웃음) 오히려 아이들이 있어서 좋아요. 가정이 화목해지는 것 같아요. 부부싸움이 안되거든요. 남편하고 말다툼을 하려고 해도 애들이 우리 보면서 웃고 있는데 부부싸움이 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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