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배추’ 방동규 “요즘세상 의리가 없어 서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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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12.17 08: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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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지 못한 세상에서는/ 꼭 엉뚱하기는/ 천장에 매달린/ 대들보 같은 사람이 있어야 했다/ 힘깨나 쓰지만 힘자랑보다/ 입심좋아/ 그 입심에 술자리 눈과 귀 집중하다가/ 술자리 입들 짝 벌어져/ 와/ 와 웃음터진다.”
10여년 전에 발표된 연작시 만인보에서 고은 시인은 방동규씨(73)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땅에 튼튼하게 뿌리를 박고 천장을 받치고 서 있어야 할 대들보가 천장에 매달린 형국이라니 방씨의 인생이 그만큼 기묘했다는 얘기일 거다. 게다가 힘깨나 쓴다고 하고 거기에 입심도 좋다고 하니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인가.

‘배추’라는 별명이나 소설가 황석영, 재야운동가 백기완과 함께 ‘조선의 3대 구라’ 중 한 사람으로 더 잘 알려진 방씨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이부영·김태홍 전 국회의원, 작가 구중서 등 수많은 재야세력과 교분을 쌓고 민주화 현장을 지켜본 목격자다. 그도 1973년 강원도에서 노느메기밭을 일구며 공동체생활을 꿈꾸다 재야인사들을 접촉한다는 이유로 간첩 혐의로 복역하고, 86년에는 또다시 ‘말’지 사건에 휘말린 김태홍 전 의원을 숨겨줘 고문기술자 이근안에게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정작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 흔한 ‘명함’ 하나가 없다. 다만 그는 몸으로 세상을 살아왔을 뿐이다. 어린 시절에는 ‘시라소니 이후 최고 주먹’으로 통했고 서른 되던 해에는 파독 광부생활을, 70~80년대 중동 아랍에미리트 현장을 누볐다. 예순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헬스클럽 강사로 활동했고 일흔에는 경복궁 관람안내 지도위원으로 일했다. 얼마 전에는 서울시장배 보디빌딩 대회에 최고령자로 참석해서 입상했다. 그의 다음 목표는 전국대회 출전이다.

남들은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두고 ‘한 번쯤 풍운아처럼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는 “당신들이 내 ‘구라’를 들으면서 웃는 것을 보면 나는 아주 환장할 노릇이야. 평범한 게 좋은 거야”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특히 어머님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는다. 머리가 하얗게 센 칠순 노인이 어머니 생각에 눈물을 지은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의리 하나로 살아온 그는 요즘 자본이 근본이 되는 세상이 서운하다고 했다. “의리나 사람이 근본이 되어야지 세상이 좋은 건데 요새는 자본이 근본이고 재산이 근본이 아닙니까. ‘자본’이 어떻게 ‘주의(主義)’가 되지요? 의리고 뭐고 없고 이기는 놈이 장땡이고 이기려다보니 모략하고 배신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 결과 잘된 놈은 잘된 놈들끼리만 모이고 안된 놈은 사그라지는 것 아닙니까.” 세속의 틀과 이기심에 갇혀 사는 우리에게 배추의 파란만장 일대기가 주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시라소니 이후 최고 주먹’, 배추

-이름보다 ‘배추’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어떻게 별명을 얻게 됐습니까.
“배추는 배추장수의 약자예요. 아 왜 유명한 사람이 되면 단축하잖아요. 두 글자로. 나도 유명해지니까 짧아졌더라고요. 6·25 뒤에 대부분 학교가 폭격으로 부서져 종합학교라는 것을 운영했어요. 여러 학교가 한군데 모여서 공부했지요. 내가 다니던 경신은 대광, 정신여고 등과 함께 인사동 정동교회 쪽에 있었어요. 다른 아이들은 여학생과 한방에서 같이 공부하니까 모양도 내고 면도도 하더라고요. 그런데 나는 뭐 집이 가난해지면서 교복도 못 사입고 베잠방이 한복 반바지에 조끼 같은 민소매 옷 하나 걸치고 다녔죠. 운동은 그때부터 좋아해서 민소매 입어야 몸이 나타나니까. 신발도 그때는 게다짝이라고 했는데 나무판에 못 쓰게 된 타이어 같은 것 못 박아서 찍찍 끌고 다니고, 밀짚모자까지 썼어요. 그러니 배추장수 같다고 여학생들이 붙여준 거예요. 게다가 어렸을 때였지만 담배를 많이 피웠어요. 한마디로 불량학생이죠.”

-싸움을 조금 하신 정도가 아니라 ‘시라소니 이후 최고 주먹’이라고 불리시잖습니까.
“몇 년 전인가 보니까 학생들 싸우는 영화가 한참 유행하더구먼요? <말죽거리 잔혹사>던가? 참 잘 싸우더라고. 17 대 1로 싸워서도 이기고. 그런데 나는 진짜 17 대 1로 싸워봤어요. 영화에서는 이기던데 난 졌지. 아 도대체 17명을 어떻게 이기느냐고. 저쪽도 날고 기는 놈들인데. 그래서 병원에 한 두어 달 입원했었죠. 요새는 괜히는 안 싸우잖아요. 이해관계가 있다든지 시비가 있다든지 해야 싸우는데 예전에는 그런 것 없이 괜히 싸웠어요. 그때는 전화도 없으니까 상대편에서 쪽지를 들고 나와요. ‘나 영등포 아무개인데, 너 요즘 좀 잘나가더라? 한 수 겨뤄보자’라는 식이죠. 그럼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붙는 거예요. 보통 장소는 지금의 창경궁이었는데 전쟁 때 창경원에 넣어뒀던 동물들이 없어져서 아주 휑했지요. ‘코끼리 앞에서 보자’ 하면 널찍한 코끼리 우리 앞에서 붙는 거죠. 방법은 천하 없어도 1 대 1이었어요. 그런데 내가 힘은 세지만 싸움을 특별히 잘한다고 볼 수 없거든요. 계속 약한 상대들만 걸린 거예요. 그러다보니 내가 이미 센 놈이 되어 있더라고요. 삼국지에서도 보면 자기 나라에서 얌전히 왕 노릇하면 되는데 꼭 옆 나라를 치고 망신당하잖아요? 동네에서 골목대장 하면 유명해질 텐데 제가 유명하다고 하니까 도전했다가 번번이 깨지더라고요. 저는 그러니까 도전자를 계속 받아주면서 센 사람이 되어버린 거죠. 커닝해서 한 번에 입학한 것이 아니라 꾸준히 밤새워 공부해서 우수한 성적으로 서울대에 입학한 격이지.”

-전쟁 때문에 가난해졌지만 그 이전에는 개성에서 유복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걸로 압니다.
“내가 학벌이 화려한 게 그 당시 유치원을 다녔어요. 개성 주민이 10만명이었는데 개성백화점 하는 사장이 3륜 오토바이를 가지고 있었고 우리 집에는 승용차가 한 대 있었죠. 컨버터블 카. 원산만 근처 송전이라는 곳에 우리 별장도 있어서 차 타고 1년에 한 번씩 놀러 갔어요. 우리가 부자가 된 것은 할아버지 덕분이죠.”

-어떻게 그렇게 부자가 됐습니까.
“증조부는 아주 망종이었다고 하더군요. 우리가 그때까지만 해도 똥구멍이 찢어질 정도로 가난했대요. 할아버지가 아버지인 증조부에 이를 갈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으신 것이죠. 할아버지께서 어느날 ‘돈 벌어 오마’라는 말만 남기고 황해도 신천의 운수회사인 부잣집으로 종살이를 하러 갔죠. 개성에는 특별한 관습이 있는데 객지에 나가면 10년에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죠. 10년이 넘어 돌아오면 개성 시내의 가장 큰 다리인 야다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는다고 했어요. 지방색이 강한 것이죠. 할아버지는 9년 만에 돌아왔어요. 5층 건물을 지을 만큼 큰돈을 들고 오셨죠. 그리고 그 건물에 편리화라고 지금으로 치면 구두 공장을 만드셨고 밀짚모자 공장도 했어요. 또 정미소도 했고요. 그렇게 악착같이 모으신 거지요. 저는 그래서 어렸을 적에 항상 구두만 신고 다니고 잡곡밥을 먹은 적이 없어요.”


백기완과의 숙명적 만남과 조선의 3대 구라

-선생님은 재야의 여러 친구분을 역사를 통해 지켜봐 오셨습니다. 처음 그 분들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이 백기완 선생님을 만나면서부터이지요?
“그게 19세 때예요. 내 친구가 ‘머리 좋은 너 같은 놈은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면서 자기 친구 하나를 소개해 줬어요. 그 친구가 당시 백기완하고 친했죠. 그 아이들이 당시 이승만 자유당 때 부패하고 엉망진창이니까 나라를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산에 나무 심는 운동도 하고 그랬어요. 겨울에는 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운동을 하고요. 그때 백기완을 처음 만났죠. 참, 내가 보기에는 사람 같지도 않더이다. 바싹 마른 것이. 내가 그때는 힘을 엉뚱한 데 쏟으면서 유명해질 때라 백기완이도 나를 알더라고요. 그런데 나를 보자마자 앉은 채로 올려다보며 ‘네가 배추냐?’ 하더니 ‘너 주먹 한 번에 몇 명이나 쓰러뜨릴 수 있느냐?’라고 묻는 거예요. 그래서 ‘한 10명이야 자신 있지’라고 대답을 했어요. 그랬더니 아 느닷없이 일어나더니 ‘귓방망이’를 때린단 말이야. ‘남자가 주먹을 들면 3000만이 울고 웃고 해야지 넌 10명이 뭐냐. 조자룡보다 못하잖아. 조자룡은 10만 대군을 물리쳤는데’라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참 가소롭고 북어대가리 같은 게 내 따귀를 때린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그런데 그렇게 맞고 한 일주일을 잠을 못 자겠는 겁니다. 그 말이 자꾸 머리를 맴돌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백기완 똘마니가 됐지. 에이, 그때 그냥 백기완이 몇 대 때리고 나왔어야 내가 지금 조폭 두목이라도 하고 빌딩이라도 갖고 있을 텐데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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