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이청준 소설 ‘눈길’의 무대 전남 장흥 진목마을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12.11 08:48:28
  • 조회: 11483
ㆍ발길 끊긴 그 길,어린시절 아픔과 만나다
소설가 이청준의 고향인 전남 장흥 진목마을에 다녀왔다. 그의 소설 <눈길>의 무대를 직접 밟고 싶어서다. <눈길>은 이청준이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썼다. 내용은 이렇다. 술 버릇이 사나운 형은 ‘내’가 고교 1학년 때 전답을 팔고, 선산을 팔고, 고향집까지 남에게 넘겨버린다. 어머니는 타향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이 주인이 바뀐 고향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빈 고향집에서 기다린다. 물론 새 집주인에게 통사정을 했다. 옛집에서 아들을 하룻밤 재운 뒤 다시 대처로 내보내는 이튿날. 새벽길은 밤새 펑펑 내린 눈으로 덮였다. 어머니는 눈길을 따라 아들을 읍내까지 바래다 준 뒤 다시 발자국을 오목오목 되짚어 온다. 소설 속의 ‘나’는 물론 이청준이고, 집이 넘어간 것은 그가 광주일고 1학년 때쯤이다.

이청준의 고향 진목마을은 초라했다. 회진포구를 지나 고갯길을 막 넘어 진목마을에서 만난 첫번째 건물은 녹슨 양철판을 겹겹이 댄 창고였다. 창고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지붕마다 허름한 양철이나 함석에 푸르고 붉은 페인트칠을 한 진목은 2000년대에서 한 세월이 뚝 잘려 1970~80년대쯤으로 넘어간 것 같았다. 거름을 실은 50년은 족히 돼 보이는 ‘자무시 트럭’(GMC트럭)이 마을 어귀에 주차돼 있었는데 새마을 노래가 불쑥 튀어나오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았다.

마을 고샅길은 굽고 좁았다. 차가 골목길을 달팽이처럼 기어올라 마당까지 들어간 집도 있긴 했다. 골목길을 짚어가다 이청준이 나고 자란 집을 찾았는데 소설 속의 내용과는 달라 보였다. 어머니는 ‘옛날 살던 집이야. 크고 넓었제. 다섯 칸 집집에다 앞뒤 터가 운동장이었더니라…’라고 했지만 집은 작았다. 마당에 자그마한 텃밭이 달린 50평 정도 되는 보통집. 그의 사진과 유물이 방안에 놓여 있었다. 진목마을엔 고래등 같은 기와집도 보이지 않았고, 작고 낮은 집들이 등을 대고 앉아있었으니 소농의 입장에선 큰 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노인은 그렇게 나에게 저녁밥 한 끼를 지어 먹이고 마지막 밤을 지내게 해주고 싶어, 새 주인의 양해를 얻어 그렇게 혼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했다. 언젠가 내가 다녀갈 때까지는 하룻밤만이라도 내게 옛집의 모습과 옛날 같은 분위기 속에 맘 편히 눈을 붙이고 가게 해주고 싶어서였을 터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문간을 들어설 때부터 썰렁한 집안 분위기가 이사를 나간 빈 집이 분명했건만.’(눈길)
“청준씨 학교 다닐 때 가정파탄이 났던 거지. 형은 술 때문에 망가져 부렀고, 그래도 청준씨는 티 하나 안 냈어. 정말 반듯했거든. 소설가로 유명해진 다음에도 겸손하고 조용했제.”

청준의 형과 친구였다는 이반익씨(73)는 “청준은 천재였다”고 회고했다. “국민학교 들어간 지 20일 만에 6학년 책까지 다 떼버려 선생들이 깜짝 놀랐지, 아마. 그때 교육청에서도 회진국민학교는 잘 몰라도 청준인 다 알았다 카더라고. 지금도 우리 마을선 공부를 할라믄 청준이처럼 해란 말을 한단 말이제.”

이청준은 54년 회진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호남의 명문 서중·일고로 진학했다. 이청준은 군계일학이었다. 조상대대로 내려온 집마저 잃어버린 어머니는 ‘잘난’ 아들에게 한없이 미안했을지 모른다. 어머니는 걸어서 1시간 거리인 대덕읍 근처에 단칸집을 얻었지만 행여 아들이 옛집에 올까봐 고향집에서 기다렸던 모양이다. 이청준의 가슴에 또렷하게 생채기를 냈을 법한 이 집은 2005년 장흥군이 매입, 생가로 복원했다.

작품 속의 무대가 된 그 <눈길>은 어디 있을까?
“저 뒷산인디, 그 눈길이 코흘리개 때부터 어머니 치마 잡고 댕기던 길이여.”
<눈길>의 무대인 마을길을 직접 보고 싶어 이장에게 길 안내를 부탁했다.
“거긴 지금 댕기기 힘들어요. 잡초가 많이 자란데다 길도 형태만 남아있는디….”

이장은 농사도 짓지 않아 잡초가 무성한 다락논 옆 길을 가리켰다. 길은 허물어져서 흔적만 남았다. 다락밭 고랑을 딛고 흐르다 산허리를 파고 드는 그런 길이다. 대덕 읍내까지는 4.5㎞.
“옛날엔 정말 큰 길이었어라. 우리 진목뿐 아니라 안살금, 산저, 선자 등 모두 6개 마을 사람들이 이 길을 따라 다녔거든요. 당시엔 회진은 자그만 마을에 불과했고, 대덕 읍내에서 큰 장이 섰어요. 지금은 사람들이 안다닝께 길이 망가졌는디, 군에선 복원한다긴 한다드만….”

이 길이 쓸모없어진 것은 80년대 말 즈음이다. 회진이 면으로 승격됐고, 옛길 옆으로는 트랙터와 차가 다닐 만한 좁은 흙길이 새로 뚫렸다.
‘신작로를 지나 산길을 들어서도 굽이굽이 돌아온 그 몹쓸 발자국들에 아직도 도란도란 저 아그 목소리나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는 듯만 싶었제. 산비둘기만 푸르르 날아올라도 저 아그 넋이 새가 되어 다시 되돌아오는 듯 놀라지고, 나무들 눈을 쓰고 서있는 것만 보아도 뒤에서 금세 저 아그 모습이 뛰어나올 것만 싶었지야. (중략) 울기만 했겄냐. 오목오목 디뎌논 그 아그 발자국마다 한도 없는 눈물을 뿌리고 돌아왔제.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부디 몸이나 성히 지내거라. 부디 부디 너라도 좋은 운 타서 복 받고 잘 살거라….’(눈길)

소설 속의 길은 이미 20년 전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졌다. 노모는 90년대 중반 작고했다. 길도 죽고, 어머니도 죽고, 이청준도 죽고 없는데 눈길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가끔 찾아온단다. 장흥군은 문학관을 먼저 짓고, <눈길> 복원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눈길>을 찾아간 날 장흥엔 비만 내렸다. 이튿날에야 빗발이 그치고 말간 해가 솟았다. 득량만 검은 개펄도 빨개졌다. 동이 터오는 바다로 나이든 촌로들이 배를 몰고 나갔다. “아따, 꽤 추워졌구만. 우리 아그들도 따숩게 지내나 모르겄네.”

길잡이
□ 호남고속도로 광주 톨게이트를 지나 달리다 보면 나주 방면 고속도로가 나온다. 지난해 5월 뚫린 고속도로를 타고 가면 동신대 앞으로 나온다.
□ 회진 읍내에 여관이 3~4개 정도 있는데 별로 기대할 만한 수준은 못된다. 낡고 허름하다. 식당도 고만고만하다. 장흥읍은 25㎞ 떨어져 있다.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글수정
  • 글삭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