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매콤하게 꿈을 버무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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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11.27 09: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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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하자센터 ‘오가니제이션 요리’ 청소년·여성가장·이주여성들 만남의 장

누군가와 친해지려면 함께해 봐야 할 몇가지 것들이 있다. 우선 같이 목욕을 해 본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서로의 알몸을 보면 자연스럽게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또 다른 사람은 “음식을 나눠 먹어 보라”고 권한다. 친한 사이에는 ‘콩 한쪽이라도 나눠 먹는’ 우리네 정서로 볼 때 먹거리를 공유하면 정을 통하게 마련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이들도 일본 영화 <카모메식당>을 함께 봤다고 한다. <카모메식당>에는 북유럽의 나라 핀란드에서 혼자 식당을 차리고 일본 전통 음식인 오니기리(일본식 주먹밥)를 팔며 여러 사람들과 따뜻한 마음을 통하는 주인공 사치에가 나온다. 사치에처럼 요리로 꿈꾸고 소통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가니제이션 요리’에서 활동하는 청소년들과 여성 가장, 이주여성들이 그들이다.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인 하자센터에서 만든 사회적 기업 ‘오가니제이션 요리’는 청소년의 자립모델은 물론이고 다양한 영역의 젊은이들과 어른, 전문가들이 함께 요리를 만들고 기업을 꾸린다. 하자센터 내부의 구내 식당과 카페 운영은 물론이고 외부로 케이터링 서비스와 요리강습도 한다. 아직은 다소 어설프게 보일지 몰라도 요리로 소통하고 요리로 희망을 키워가는 사람들의 꿈이 영글어 가고 있다.

“즐거움, 정직, 배움을 요리합니다”
지난달 29일 ‘오가니제이션 요리’ 식구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서울시립청소년직업센터인 하자센터로 향했다. 오후 3시. 센터 1층의 요리 스튜디오로 들어서는 순간 달콤한 과자 냄새와 신선한 야채 냄새가 코를 간질였다. 설석환씨(20)가 베이킹 기계에서 구워져 나온 과자를 포장하고 있었다. 케이터링을 하고 남은 것이라고 했다. 깔끔한 초코 쿠키와 아몬드 쿠키였다.

탁 트인 요리 강습실에선 오후 4시부터 우리나라에서 살고있는 이주 여성들을 위한 요리 수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총각김치 담그는 법을 강의하는 날이었다. 일찌감치 스튜디오로 나온 수강생들이 열무와 배추, 파 등을 씻고 소금과 고춧가루 등 기본 재료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인도네시아 출신인 림미화씨를 비롯한 10명 남짓한 이주 여성들이 얼굴에 웃음을 머금은 채였다.

김장 수업에 앞서 1시간 동안 오가니제이션 요리 식구들이 한 자리에 모여 대화를 나눴다. 과연 ‘청소년, 여성가장, 이주여성이라는 변종들이 만든 변종 기업’답게 요리를 전공한 20대 여성부터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 한국으로 시집온 이주 여성 등 다양한 구성원이 함께했다.

‘왜 여기서 요리를 하기 시작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답은 간단했다. ‘중뿔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요리가 좋아서”였다. 지난 3월부터 ‘오가니제이션 요리’와 인연을 맺은 이민경씨(20)는 고등학교에서 조리학과를 졸업했다. “조리학과를 거쳐 대학에 가는 틀 속에 갇힌 요리를 하기보다 또다른 것을 해보고 싶다는 호기심에 이곳에서 일하게 됐다”고 했다. 민경씨가 맡은 일은 매주 목요일마다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는 장애인 학생들에게 요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야말로 ‘요리 선생님’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이씨는 장애학생 요리 사업을 위해 사회적 기업을 후원하는 한 재단과 인터넷 쇼핑몰 업체의 공모전을 통해 기회를 얻어냈다. 그만큼 실력이 뒤따라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씨와 동갑내기인 진환씨도 이 일을 같이한다.

대학에서 요리를 전공한 정세정씨는 홍대 앞에서 오가닉 카페 창업 멤버로 참여해 본 경험도 있고 혼자 케이터링 사업도 해 본 경험이 있는 전문가다. 그는 이곳에 온 이유에 대해 “서로 도와가면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이주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을 하면서도 또다른 전문가로부터는 그가 잘하는 또다른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게 좋다고 했다. 정씨는 “다양한 소스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어떤 음식을 만들지, 어떤 콘셉트로 케이터링을 기획할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꾸미는 것이 재미있다”고 말했다.

사실 이들이 지금처럼 ‘환상의 하모니’를 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살아온 배경도, 나이도, 생각도 다 다른데 함께 같은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생각만큼 술술 풀리는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리란 게 신기하다. 아무리 창의적인 작품이 생각났다 하더라도 어쨌든 손과 몸을 써야 한 접시의 음식을 완성할 수 있는 요리사들은 12시간 넘게 몸을 부대껴가며 정이 들었다. 정씨는 “어떻게 하면 제 마음을 표현하고 남들과 잘 어울리느냐는 소통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라며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그게 잘 안될 때가 많잖아요? 상대방의 마음도 알지만 그 사람이 안 그렇게 보일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소통을 중요시하는 만큼 ‘오가니제이션 요리’에서는 서로의 별명을 부른다. 언니, 오빠, 동생 등 나이에 의해 규정되는 호칭은 되도록 쓰지 않고 일을 할 때만큼은 동등한 관계로 서로를 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민경씨는 “‘오가니제이션 요리’는 요리라는 주제를 가지고 일하는 다른 곳보다 자유롭다고 생각한다”며 “다양한 문화를 배경으로 가진 분들, 경험의 차이가 있는 사람들에게 배우고 아무런 장애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좋다”고 말했다.

세상과의 소통도 중요하다. 장애인 학생들을 가르치는 민경씨는 “과연 내 지식으로 친구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고 2시간짜리 수업을 하는데 3시간 이상 걸리는 등 긴장도 많이 했다”면서 “그러나 시간이 지나니까 힘들다가도 수업하면서 신기해하고 즐거워하는 친구들 모습 보니까 가르치는 보람을 느끼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 행복하다”며 웃었다. 진환씨도 “마음처럼 아이들이 잘 안따라 줄 때는 힘들었지만 순수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즐겁다”고 했다.

꿈도 함께 자라난다
‘오가니제이션 요리’를 만나면서 이들이 행복한 이유는 ‘꿈’을 키울 수 있어서다.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에 온 지 14년째인 림씨는 요리 스튜디오 직원이자 수강생으로 활동하고 있다. 간간이 인도네시아 음식을 이곳 식구들에게 가르쳐 주기도 한다. 림씨의 꿈은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한국 식당을 차리는 것이다.

림씨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안먹어서 현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 식당은 어려운 것 같다”며 “인도네시아에 살고있는 한국 사람들이 손님으로 올 수 있게 감자탕 같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준비가 잘 되어가고 있느냐”고 했더니 자신있게 “그렇다”고 말했다. 림씨의 남편과 아이들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고 한다.

민경씨의 꿈은 이곳에서 장애인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조금 더 구체화됐다. “예전에는 막연하게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미술을 가르치며 치료하는 것을 봤어요. 그걸 보니 저도 장애인 학생들에게 요리 교육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요리는 눈으로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가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촉감을 느끼고 그 밖의 다른 감각들까지도 총동원해서 하는 것이잖아요? 요리를 통해 치료를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 길게는 요리하면서 살고 싶다는 것이 꿈이겠죠.”

장래희망이 항공우주연구원인 진환씨. “요리와 항공우주연구는 전혀 관계 없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우주에 나갈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음식인데 우주선에 반입되는 음식은 다 진공으로 포장돼 있고 맛도 없다. 그게 맘에 들지 않는다. 그 점을 바꿔 보고 싶다”고 대답했다. ‘우주연구원이 되려면 관련학과에 가기 위해 힘들게 경쟁하고 수능도 봐야할 텐데’라는 걱정이 있을 만도 한데 진환씨는 “관련학과를 갈 수 있도록 수능을 보고 일을 하고 나서 다시 요리를 하며 노후를 보내고 싶다”고 여유있는 모습을 보였다. 요리는 요리 자체로도 행복을 주지만 또다른 꿈을 꿀 수 있도록,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개체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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