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맵고 붉은 고춧가루 한국인 근성 닮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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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11.24 09: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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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밥의 사회성 포착한 ‘부뚜막꽃’ 이어…억척스러운 한국·한국의 땅 표현

“시장에 즐겨 갑니다. 뭔가 새로운 게 나왔나 관찰하러요. 김장철 재래시장에 수북이 쌓인 고춧가루가 스펙터클하게 다가왔어요. 재밌겠다 싶었죠.”
사물에 숨겨진 시각성을 경쾌한 느낌의 사진으로 제시해온 사진작가 방명주씨(38). 그동안 율무, 보리, 검은쌀, 노란쌀, 강낭콩 등 곡물을 익혀 근접촬영한 ‘부뚜막꽃’ 연작을 통해 “밥의 사회적, 심리적 의미를 포착”하려 애쓰더니 이번에는 붉은 고춧가루다.

서울 대학로 샘터갤러리에서 열고 있는 여섯번째 개인전 ‘매운 땅-Redscape’는 붉은 고춧가루의 향연이다. 실크로드 어디쯤에서 퍼온듯한 붉은 황토 더미. 실은 고춧가루를 쌓아올린 것이다.
“멕시코가 원산지인 고추가 오늘날 우리 부엌에서 한 끼도 빼놓을 수 없는 양념이 되었다는 현실에 경외감을 느꼈습니다. 매콤하면서도 개운한 고춧가루의 맛을 붉고 억척스러운 한국인, 한국의 땅과 매치시켜 고춧가루 산을 만들어 나갔죠. 그런데 가루만으로 스펙터클한 시각적 결과물을 얻는 게 쉽지 않더군요.” 시행착오 끝에 주변의 도움을 받아 스티로폼 구조물을 만들고 그 위에 약 60㎏의 고춧가루를 뿌려 매혹적인 ‘붉은 땅’ 연작을 탄생시켰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지하작업실에 있던 고춧가루 산에 습기가 차면서 자연스럽게 표면이 다져졌고 곰팡이도 피어났다. “처음에는 곰팡이를 없애느라 애를 썼는데 없애려 하면 할수록 더 피어오르더라고요. 어느날 썩고 버려지는 것이지만 곰팡이 역시 생명체라는 점이 매혹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전시실에는 ‘붉은 땅’ 연작 외에 ‘부뚜막꽃’의 연장선상이라 할 ‘둥근’ 연작도 선보인다. 실치, 누룽지, 밥알 등을 투명 아크릴의 공모양에 붙여 촬영한 사진이다. 이 연작이 탄생하게 된 배경은 여성, 주부라는 작가의 정체성과 무관하지 않다. 탐폰과 콘돔, 식재료에 인공광을 비쳐 촬영한 ‘판타스마’ 연작은 ‘자연과 생산’의 에코페미니즘적 주제의식을 담은 작품들. ‘매운 땅’의 모태가 된 ‘부뚜막꽃’ 역시 이로부터 출발했다.

“결혼하고 아침밥을 지으면서 ‘부뚜막꽃’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밥짓기에 대한 생각을 사진으로 풀어놓았죠. 한 작가가 작업하면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은데 ‘부뚜막꽃’은 제 인생에서 평생 이야기할 수 있는 작업에 가까웠습니다.”
화학을 전공한 대학시절에는 영화에 빠졌고, 이후 동네사진관 아저씨의 레슨으로 사진과에 입학해 사진을 공부했다는 작가. 2003년부터 해마다 빠짐없이 개인전을 열었다. 웬만큼 바지런하지 않고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해마다 다른 작업을 선보여왔다. 자본과 소비 등 거대담론을 다룬 ‘판테온’ 연작(2004년)과 사회를 보여주는 구조물로서의 냉장고인 ‘스토리지’ 연작(2006년), 물에 반사된 네온사인을 저속촬영해 도시의 욕망을 담은 ‘헬리오폴리스’ 연작(2007년) 등 삶을 구성하는 거대담론도 사진으로 담아왔다.

“제 작업은 두 개의 축으로 이뤄집니다. 미시적인 일상에 대한 관심과 거시적인 공간에 대한 관심이죠.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같이 가는 작업입니다. ‘매운 땅’ 연작을 통해서 미시적인 사물로도 거시적인 형상을 만들 수 있음을 확인했어요. 요즘은 집안의 사물과 집 밖의 산업사회를 어떻게 연결시킬지 궁리 중입니다.” 전시는 19일까지. (02)3675-3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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