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늙은이가 커피숍내면 안되려나? 돕고 싶은곳이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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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11.24 09: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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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새로운 봉사위해 물러나는 박영숙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한국여성운동과 환경운동의 대모인 박영숙 한국여성연대 이사장이 올해 말 모든 공적인 자리에서 물러난다. 이화여자대학 시절부터 YWCA 연합회 일을 시작한 그는 77세인 지금도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여성환경연대 으뜸지기, 미래포럼 이사장, 희망포럼 공동대표, 뉴패러다임포럼 고문,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고문, 페어트레이드코리아 이사를 맡고 있다. 국정감사 때 하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국회의원 시절엔 ‘저승사자’란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민주화운동이나 여성운동에 동참했던 이들은 매일 집에서 푸짐한 음식을 장만해 나눠주던 후덕한 동지로, 또 후배들에게는 일에는 열정적이지만 패션감각도 뛰어난 멋쟁이 선배로 그를 기억한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환경공부를 하기 위해 영국 유학을 단행할 만큼 평생학습의 모범을 보였던 그는 “이제 인생 제3기를 맞아 여성운동이 필요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이들을 위해서, 또 노동봉사를 하며 나 자신을 고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늘 흐트러짐 없는 모습과 단호한 말투와는 달리 탤런트 송승헌을 좋아하고, 드라마를 보다가 우느라 청와대 전화도 못받았다는 박영숙 이사장. 새로 시작할 제3기 인생에 대한 기대로 눈빛을 반짝였다.

-아직 건강하고 젊어보이시는데 왜 갑자기 공적인 자리에서 물러날 생각을 하셨습니까.
“갑자기 공직에서 떠나는 게 아니라 임기가 자연스럽게 마무리되는 겁니다. 전 인생을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시기인 제1기, 보람을 찾는 제2기, 그리고 공적인 자리에서 물러나는 제3기로 나눕니다. 제 자신도 이 나이까지 현역으로 일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참여정부 출범과 더불어 세대교체 바람이 거세게 부는데 사오정이다, 명퇴다 해서 젊은이들이 생업에서 밀려나고 자원봉사활동에서도 냉소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더군요. 어딜 가건 ‘왜 저런 할머니가 왔어?’ ‘왜 저 나이에 저렇게 열심히 듣나?’하는 듯한 차가운 시선이나 달가워하지 않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주변을 정리하고 서울에서 일산 아들집으로 들어가 조용히 살려고 했는데 고령화, 저출산이 사회문제화되면서 여기저기에서 절 부르는 곳이 많아 도저히 일산에 숨어 살 수가 없더군요. 그 무렵 여러 곳에서 동시에 자극을 받았어요. 칠순때 일본에 가서 구로다 다츠히코가 쓴 <오가타 사다코가 사는 법-70세에 꽃피운 인생>이란 책을 읽고 인생 3기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제8대 유엔 난민고등판무관 오가타는 예순이 지난 나이에도 10년간 해마다 지구 세바퀴를 도는 거리를 누볐습니다. 10㎏ 이상 무게의 방탄조끼를 입고 난민이 있는 위험한 현장에서 따뜻한 모성으로 남성도 못할 일을 했어요. 실력과 체력, 의지와 자신감만 있다면 나이에 상관없이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는 걸 그분께 배웠어요. 내년부터 몸으로 하는 자원봉사, 다른 이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는 일로 나를 고용할 생각입니다.”

-돈도 안되고, 일부 남성들에겐 ‘마귀할멈’으로 불리는 여성 운동을 왜 그렇게 열심히 하셨나요.
“제가 억압받고 불평등을 겪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많이 얻었고 배워서,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일했습니다. 대체에너지를 연구했던 아버지는 1930년대에 재봉틀이 처음 등장하자마자 사와서 직접 어머니와 우리들의 옷을 만들었고 뜨개질까지 배워 예쁜 옷을 입히실 정도였어요. 어머니도 밥을 나이순으로 퍼주셨죠. 관습화된 삶의 방식을 깨트린 부모님 덕에 저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받는 차별을 겪지 않고 어린시절을 보냈어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후 할머니, 작은아버지의 도움으로 공부를 했고 또 대학시절엔 박에스터 선생님 같은 멘토(후견인)를 만나 YWCA에서 일하며 국제적인 단체 업무도 체계적으로 익힐 수 있었습니다. 그후 여성단체협의회, 여성단체연합, 크리스찬아카데미, 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 등의 일을 한 것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 힘든지도 몰랐고 고난을 겪기도 했지만 여럿이 힘을 합해 한 일이라 보람도 더 컸습니다.”

-민주화운동에도 앞장서서 수유리에 사실 때는 민주지사나 운동권 인사들의 아지트로 불렸다면서요. 많은 이들이 선생님 댁에서 맛본 음식과 선생님이 떠준 뜨개질숄 등을 기억하더군요. 또 각종 상품도 만들어서 운동가가 아니라 창의적인 시위와 집회, 상품을 만드는 예술가로 평가합니다.
“제 남편(신학자인 고 안병무 교수)을 비롯, 김대중 문익환 함석헌 선생 등 많은 분들이 투옥되셨고 민주화운동을 하던 학생들의 부모를 중심으로 민가협이 만들어졌는데 하도 감시가 심해 모일 곳이 마땅치 않았어요. 마침 우리집이 마당도 넓고 제가 어릴 때부터 살림살이 규모가 큰 할머님댁에서 자라 한번에 몇백명분의 요리를 하는 것에 익숙해 있어요. 열흘 전부터 장을 보고, 일주일 전에는 김치를 담그고 수시로 음식 장만해서 따뜻한 음식은 따끈할 때, 시원한 음식은 차게 내면 다들 맛있게 먹어서 제가 더 흡족했죠. 또 부인들끼리 모여 고난과 승리를 상징하는 보라색 털실로 ‘빅토리숄’을 떠서 번 돈으로 운동에 쓰고 YH사건 때는 흰손수건에 십자수를 놓아 팔아서 여공들 영치금으로 보내기도 했죠. 그땐 하루에 한두시간만 자도 힘든 줄 몰랐습니다.”

-평화민주당 총재 권한대행까지 하셨고 뛰어난 의정활동으로 평가를 받았는데 왜 국회의원은 한번만 하셨나요.
“정당에 뿌리내리려면 돈이 있거나 배짱이 있어야 하는데 전 둘 다 부족했습니다. 처음에 정당활동을 제안받았을 때 거절했죠. 남편이 투병중이었고 정치에 문외한이었으니까요. 지금도 남편이 한 질문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첫째, 정치계는 온갖 말들이 난무하는 곳인데 직접적 험담과 비방을 견딜 수 있겠느냐. 둘째, 자유주의자인 당신이 당론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정당이란 조직사회에 순응할 수 있겠느냐. 세번째, 경쟁할 수 있겠느냐고 묻더군요. 줄서기와 계파 중심의 경쟁사회인 정치계와 달리 여성계나 시민사회는 뜻맞는 이들끼리 모이는 연대사회이고, 여성정치인은 혼자 있을 땐 빛을 발해도 둘만 되면 남성들이 경쟁을 부추기거나 계파로 나뉘어 오히려 힘이 약해지더군요. 국정감사 등 의정활동에선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해서 능력을 인정받았고 ‘올해의 여성상’을 받을 때 여성단체연합에서 여성은 능력이 없다는 평가를 깨고 ‘여성이 정치를 하니 정치가 맑고 깨끗해졌구나’하는 신뢰감을 국민에게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칭찬해 주었지만 당내의 세력구축이나 화합 등은 체질에 맞지 않았어요. 17대 때부터 여성의원들이 13% 이상으로 숫자는 늘어났지만 줄서기 등으로 정작 여성이슈를 모성적으로 판단하는 입법활동은 하지 않아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럼 여성운동이나 여성정치인에 대해 희망은 없나요.
“그동안 여성계가 온갖 비난에도 눈물과 땀으로 이끌어온 열차에 무임승차하려는 여성들이 많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이번 촛불집회를 보고 새로운 여성, 새 사회를 발견했어요. 소수 엘리트들도 못했던 정치태도를 소녀와 주부들이 바꿔가잖아요. 지금까지 여성운동에서도 소녀들은 어른이 돌봐줘야 할 보호대상으로 인식되었는데 이제 소녀들은 당당한 주체로 자기 주권의식을 행사하는 참여민주주의 실현의 행위자임을 입증했습니다. 정치와 거리가 먼 것 같은 평범한 여성들이 피동적 대중에서 능동적 다중이 된 것은 인터넷을 통한 정보력 덕분이겠죠. 이것은 기성 여성운동의 위기이면서 또다른 여성운동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거대담론보다 개별적인 생활문제를 이슈로 해서 우리 딸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평등하게 자라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사회, 나눔과 돌봄의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엿봤습니다.”

-이번에 여성계 명사들을 시리즈로 만드는 출판사인 ‘또하나의 문화’에서 박영숙 대표의 삶을 다룬 <생을 마칠 때까지 현역으로 살고 싶다>는 책도 나왔던데요.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요.
“그 책은 제 개인사가 결국 한국여성사란 생각에 자료모음에 보탬이 될 것 같아 참여했습니다. 내년부턴 정말 ‘백수’가 되는데, 열악한 환경의 여성운동가들을 도와주기 위해 돈을 벌고 싶어요. 원로가 되니 여기저기 돈을 낼 곳도 많더군요. 아직은 청소기 없이 살림도 직접하고 건강에 자신있지만 정말 소원은 손녀가 제 생일날 준 카드에서 빌어준 ‘할머니 돌아가시려면 행복하게+즐겁게 돌아가세요’를 이루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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