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아직도 이루지 못한 ‘난장이의 꿈’조세희 ‘난쏘공’ 출간 3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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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11.20 09: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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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문인들·권성우씨 등과 함께
ㆍ기념문집 <침묵과 사랑> 펴내
ㆍ14일 낭독회 겸 출판기념회도

‘1978년 6월 첫 출간. 96년 4월 100쇄, 2005년 11월 200쇄 돌파. 2007년 9월 100만부, 2008년 11월 현재 통산 105만부 판매.’
작가 조세희씨(66)의 대표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의 30년 시간표다. 한국문학 사상 이 같은 성과를 이룬 소설은 없었다. 평단에서는 1960년대 이후 한국문학의 전환점을 만든 작품이라고 했다. ‘스타카토 문체’도 화제였다. 접속사와 수식어의 배격, 주관적인 생각을 배제한 단문의 문장이 그랬다. 암울했던 70년대 독재정권치하에서 자행된 고도성장의 그늘이 난쟁이 가족을 통해 밀도 있게 조명됐다. ‘문학으로서의 문학’과 ‘운동으로서의 문학’에 대한 격렬한 논쟁도 촉발시켰다.

<난쏘공>이 올해로 출간 30주년을 맞았다. 스무 살 무렵 <난쏘공>을 처음 읽은 독자들은 이제 오십이 됐다. 여러 평론가들이 지적하듯, “하루하루가 롤러코스터를 타듯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한국사회에서 30년간 읽힌 소설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며 축하할 일이다. 14일 선보이는 기념문집 <침묵과 사랑>(이성의 힘)의 탄생 배경이다. 지병에 시달리며 좀처럼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던 작가 조세희씨도 이번만은 얼굴을 내밀었다. 11일 서울 인사동 한 식당에서 열린 <침묵과 사랑> 출간기념 간담회에서 그는 회한에 젖어 있었다.

“나는 세월을 세지 못해요. 내 감각 안에는 시간을 세는 능력이 굉장히 부족합니다. 단지 어떤 시간의 덩어리가 지나갔다는 느낌만 있어요. 그런데 이 <난쏘공>이 30년이 됐다는 걸 언제 느꼈냐 하면, 우리집에 무심히 굴러다니는 사진 한 장을 보니 청년 하나가 배시시 웃고 있어요. 그게 나야! 30년이 지나간 거죠. <난쏘공>을 쓸 때는 30년 뒤까지 읽힐 거라고 생각도 못했어요. 입시준비를 위해 이 책을 사 본다는 걸 상상도 못했습니다. 다만 내가 살기 싫은 모습의 세상이 그대로 이어지면 자식세대의 미래도 아름다울 것이 없다는 그런 마음을 갖고 썼어요.”

세월은 흘러가고 병마의 고통이 수시로 찾아오는 나이. 여기에서 <침묵과 사랑> 기획은 시작됐다. 작가가 거주하는 서울 둔촌동에 이웃하며 살고 있는 소설가 방현석, 이승우, 최인석 등 후배문인들과 평론가 권성우 교수(숙명여대)가 주축이 됐다. 세상에 나온 <침묵과 사랑>은 애정 어린 찬사로 가득하다. 후배문인들과 김우창, 김윤식, 김병익 등 문단의 원로평론가들, 역사학자 한홍구, 철학자 홍윤기씨 등 20여명이 글을 보탰다. 이들은 “<난쏘공>에 그려진 공장노동자, 철거민, 환경오염 등의 문제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듯 조세희의 문학이 여전히 매력적인 비평과 탐색의 대상”임을 고백한다. 또 이에 얽힌 추억 한 자락을 펼쳐놓는다.

조세희씨는 기념문집 출간에 맞춰 독자에게 아직 끝내지 못한 장편 <하얀 저고리>(14일 오후 5시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대강당)도 낭독해준다.
“저는 농경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산업사회에 도착해 <난쏘공>을 썼어요. 지금은 정보화사회·세계화 시대라고 하죠. 두 세기에 걸쳐 좋은 경험을 많이 했어요. 여러분이 <침묵과 사랑>을 <난쏘공>과 떨어지지 않는 책으로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현재의 <난쏘공>이 처음 세상에 선뵌 것은 75년 12월 ‘문학사상’을 통해서다. 6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작가는 10여년간 조용히 침묵하다가 ‘문학사상’에 ‘칼날’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난쏘공> 연작을 시작했다.

“70년대 발표된 이문구와 박태순, 황석영의 작품을 읽으면서, 이것들만 갖고는 안 되는 뭔가가 있는데 아무도 안 쓰더라고요. 석정남의 <불타는 눈물>이나 유동우의 <어느 돌멩이의 외침> 같은 노동자 소설을 읽으면서, 또 주말이면 경인공단이나 구로동을 취재하면서 이런 것들을 놔두고 어떻게 그냥 지나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학에서 시대의 아픔을 달래야지’ 하는 마음이었어요. 누가 이미 썼더라면 안 썼을 겁니다.”

<난쏘공>을 통해 사회 속 문학의 역할을 우화소설의 기법으로 제시했던 작가.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 대신 79년 사북사태 이후 그는 카메라를 쥐고 폭압의 현장 속으로 뛰어들어가 최근 촛불집회까지 굵직한 시위·집회 현장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글 쓰는 것은 늘 싸우는 느낌이죠. 작가에게 제일 어려운 것은 좋은 글을 쓰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어려운 것이 안 쓰는 것, 세 번째로 어려운 것이 침묵이라고 봐요. 난 침묵을 즐겁게 받아들였습니다.”

침묵의 기간 동안 80년 광주를 시작으로 한국현대사를 훑는 장편 <하얀 저고리>를 준비해왔다. 기념문집과 함께 발간할 계획이었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후일을 기약하게 됐다.
“<하얀 저고리>는 꼭 끝낼 겁니다. 한국에서 1만명 정도 읽으면 읽을 사람은 다 읽은 거예요. <하얀 저고리>를 1만명 정도 읽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병에 걸리고 글쓰다 종종 의식을 잃다보니 죽는 것이 무섭습디다. 그렇지만 진짜 힘든 건 좋은 작품을 쓰는 거예요. 내가 이 세상에 살았다는 흔적이니까요.”

그는 자신을 ‘송장세대’라고 했다. “늙어보고 아파보니 알겠어요. 죽을 무렵 정리된 글을 써야지 했는데 예순이 넘으니 병이 들어오면서, 내게 써달라고 쳐들어오던 단어들이 사라져 버렸어요. 조부모세대가 안 쓴 새 언어로 무장한 부모들이 여러분을 가르쳤다면 여러분 세대에는 좋은 변화가 있을 겁니다. 나는 젊은이들이 좋아요. 젊은 세대들을 믿습니다.”
한국사회가 흘러가는 방향에 대해 우려를 표하던 작가는 미래 세대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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