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률] 배신을 법으로 단죄하는 것은 타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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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11.17 08:5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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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지난달 30일 간통죄에 대한 합헌 결정을 내려 55세 된 간통죄는 또 한 번 생명 연장을 허락받았다. 1953년 10월 형법이 제정되면서 탄생한 후 숱한 존폐 논란에 휩싸였던 간통죄는 90년, 93년, 2001년의 세 차례 합헌 결정에 이은 네 번째의 합헌 결정으로 적어도 2011년까지는 존속된다. 헌법재판소 재판부는 “간통죄는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해 성적 자기결정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지 않고, 징역형만 규정한 법정형이 책임과 형별간 비례원칙에 비춰 과중하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물론 김종대·이동흡·목영준 재판관은 “간통죄는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을 어기고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의견을 내기도 했다.

이번 판결이 과거에 비해 유독 주목받은 것은 우선 유명 연예인으로 간통 스캔들의 주인공이 된 옥소리씨 등이 위헌신청을 한 것이고 재판관 9명 중 과반수인 5명이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 의견을 내 다수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다수의견임에도 위헌 결정에 필요한 정족수 6명을 채우지 못해 합헌 결정이 났다. 과거 3차례 위헌심판에서 90년과 93년은 6 대 3으로, 가장 최근의 2001년에는 8 대 1로 압도적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는 점과 비교하면 가까스로, 혹은 아슬아슬하게 합헌 결정이 나서 앞날이 순탄치 못할 것임을 예고한다. 이런 변화의 속도라면, 2∼3년 후에 제5차 간통죄 결정에서 위헌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전망하는 이들이 다수다.

특히 이번 결정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여성계의 변화이다. 합헌 결정 후 여성단체들은 논평을 내고 간통죄의 존속에 우려를 표명하는 등 변화된 사회에 맞는 실질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가정의 안녕을 위해, 그리고 조강지처를 위해서라도 간통죄는 최소한의 무기”라고 했던 과거 여성단체들의 주장에 비해 최근 여성계의 시각과 반응이 너무 달라졌다.

여성계는 왜 간통죄 합헌 결정에 회의적일까
우리나라 형법 제241조에는 “배우자가 있는 자가 간통한 때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그와 상간한 자도 같다”고 규정돼 있다.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가질 경우에 그 상대방 역시 감옥살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53년 이 법이 제정되었을 무렵엔 여성계에서 ‘축첩폐지 운동’을 주요 사업으로 삼을 만큼 남성들의 외도와 축첩, 2중혼이 흔해서 바람핀 남편을 간통죄로 고소해 응징을 하거나 적어도 “콩밥을 먹지 않으려면 당장 관계를 청산해”라고 큰소리를 칠 기준이자 본처 자리를 지키는 바람막이 역할을 하는 것이 ‘간통죄’였다. 간통죄 존폐 논란이 일 때마다 여성계 원로들이 나서 “간통죄마저 없으면 불쌍한 아내들은 무얼 믿고 사냐”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그런데 여성계가 달라졌다. 모 방송사 토론프로의 작가는 “간통죄 논란을 다루는데 간통죄를 찬성하는 여성 패널을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며 “세상이 너무 변했다”고 말했다. 간통죄 합헌 결정이 난 날 여성계가 발표한 논평이 이를 입증한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을 포함한 3개 여성단체들은 공통논평을 통해 “간통죄 존재가 많은 여성들에게 심리·정서적 위안을 주고 있는 것과 결혼관계 중 배우자의 부정행위나 혼외 성관계로 인해 상대배우자들이 겪는 고통과 분노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지만 간통죄가 부부간에 갖춰야 할 신뢰와 책임을 국가의 형벌권에만 내맡기고, 다른 실질적인 대안 마련과 인식 변화의 기회를 막고 있는 측면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또한 “간통죄는 입증과정의 인권침해, 입증을 위한 심부름센터 이용 등 이미 법 목적을 상실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으며 기소율 추이를 살펴보면 여성 간통사건의 기소율이 전체 간통사건의 기소율을 웃도는 등 가정 내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실효성도 낮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90년대만 해도 많은 여성단체들은 여성들이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고 피해를 보는 부분에 대해 피해구제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었지만 근본적으로 부부 사이의 배신이 과연 형법으로 가능한지, 그리고 운영 과정을 살펴보니 실효성이 없다는 질문을 가지게 되면서 좀더 실질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주최로 열린 ‘제40차 여성정책포럼’에서 윤덕경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해를 거듭할수록 간통죄는 법에 호소하는 경향이 줄고 있고 고소 취소 등 형사절차 과정에서 합의하는 경우 등이 반 이상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음을 볼 때 간통죄의 활용이 유일한 해결방법이 아닌 듯 보인다”고 분석했다.

가장 지고지순한 이름의 부인, 혹은 어머니로 불리는 주부들이 최근엔 성적으로 자유로워지고 본능에 충실하려는 것이 이런 변화의 큰 이유이다.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2006년 이혼소송을 당한 부인 8664명 가운데 절반 이상인 51.6%가 부정행위 때문에 이혼을 요구받았다. 부정행위를 저질러 이혼당한 여성 비율이 99년 36%, 2002년 37.8%, 2005년 39%로 날로 급증하는데 간통죄는 여성들에게 더이상 보호막이 아니다.

최근 간통죄 여성 피의자가 늘어난 것은 여성들이 성적으로 자유로워진 세태도 있지만 간통죄의 특성 때문이란 주장도 있다. 남녀간의 정사를 내용으로 하는 간통죄는 행위의 성질상 당사자간에 극비리에, 또는 외부에서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하에서 감행되는 것이어서 이에 대한 직접적인 물적 증거나 증인의 존재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모텔 등에서 두 남녀가 있는 현장을 찾아가도 두 사람이 옷을 입고 있고 주변에 화장지 등이 없으면 “깊은 대화를 나누려고 온 것”이라고 주장하면 간통죄로 인정하기 어렵다. 남성들은 최후의 순간까지 완벽한 물증을 주장하며 극구 부인하는 반면 여성들은 남편이 큰소리로 위협만 해도 스스로 간통을 자백하는 경우가 많단다.

간통죄 합헌 그 이후의 문제는…
비록 간통죄는 헌재를 통해 목숨을 유지하게 되었지만 현실에선 거의 사형선고를 받은 것으로 인정된다. 실제로 간통죄로 고소해 수사가 시작되는 사건의 범죄자수는 2001년 1만1611명에서 2005년 7575명으로 주는 등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2005년 간통죄 접수 처리 현황을 살펴보면 1224명이 간통죄로 접수돼 이 중 82명이 실형을, 592명이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404명은 공소기각 처리됐다.

문화평론가 홍현종씨는 “대한민국엔 구멍가게보다 모텔이 더 많고 그곳에서 현실적 간통이 1년에 수백만건씩 일어나는데 겨우 몇십명이 실형을 사는 법률은 이미 실효성이 없어진 것”이라며 “아침 드라마부터 주말 드라마까지 모두 불륜이나 간통을 아름답게 다루고, 한 여자가 두 남자와 이중결혼 생활을 하는 <아내가 결혼했다>란 영화까지 관객을 끌어들이는 등 불륜이 일상화되었는데 간통죄를 존치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가 얼마나 위선적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하대 법대 이재교 교수도 “국민 70% 정도는 간통죄 폐지에 찬성하면서도 자신이 피해자가 될 경우 고소하겠다는 비율은 12%에 불과한 것은 우리 국민이 허위의식에 빠진 것”이라며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근대적이고 실효성 없이 폐단만 조장하는 간통죄는 차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주부 김정희씨는 “아무리 간통죄가 유명무실하다고 해도 여전히 가정을 평화롭게 지키고 남편의 사랑을 기대하는 아내들에게는 그나마 위안이 된다”며 “다만 복잡한 증거 확보라거나 무조건 감옥에 넣는 형벌 외에 다른 별도의 보완이나 법적 장치를 해주길 바란다”고 제안했다.

아슬아슬하게 살아 남았어도 간통죄의 폐지는 시대의 흐름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간통죄의 폐지가 혼인상의 성실의무 자체를 폐지하는 것으로 오인될 경우에는 심각한 가정파괴 문제로 연결되어 숱한 사회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그래서 많은 법학자들이나 여성계에서도 간통죄의 폐지 이전에 그 전제조건으로서 효과적인 민사법적 억제장치, 예를 들어 간통한 배우자에 대한 강력한 손해배상의 입법화 등의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 등 서구에서는 간통죄를 형사처벌의 대상에서 배제하는 대신에 간통이 발각되어 배우자에 대한 혼인상의 성실의무를 위반한 것이 확인될 경우에는 민사상의 배상을 철저하게 인정한다. 간통한 배우자는 이혼을 당할 뿐만 아니라 이혼시 엄청난 손해배상을 감수해야 한다. 간통이 형사처벌의 대상이 아니더라도 간통이 허용되거나 묵인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 분명하다. 젊은 여자와 바람을 핀 도널드 트럼프 등 유명인사들이 전처에게 수백억원의 위자료를 주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법원의 판결에서는 간통한 배우자에 대해 서구의 예와 같이 고액의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경우를 찾기 어렵다. 심지어 간통한 배우자에 대한 이혼청구에 소극적인 판례도 있었다.

이지은 변호사는 “여성들은 바람난 남편을 간통죄로 고소해 응징을 하고 이혼후 재산분할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간통죄는 이혼을 전제로 하므로 함부로 결정할 일이 아니다”라면서 “대부분은 아내가 자신을 고소했다는 것에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또 영악한 남성들은 단순한 외도가 아니라 제2의 인생을 고려하는 상대를 만났을 때는 사전에 재산을 은닉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확실히 이혼을 결심한 후에 간통죄로 고소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충고한다. 도처에서 불륜이 만연하고 바람을 조장하는 시대에 어쩌면 결혼하면 한 사람만 평생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간통을 피하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 되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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