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義人은 무슨…두 다리 잃었지만 전 예전과 똑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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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11.14 09: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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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곡역장 김행균씨는 지난달 27일 한 영화의 시사회에 참석했다. 2001년 일본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중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고 이수현씨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너를 잊지 않을 거야>였다.
지난 2003년 열차에 치일 뻔한 아이를 구하다 두 다리를 잃은 김씨 역시 느끼는 감정은 남다를 법도 했다. 하지만 그는 담담했다. “이수현씨는 의로운 일을 하고 목숨을 잃은 것이고 저는 제가 하는 일이 그것이었을 뿐”이라고 했다.

29일 일터로 찾아가 만난 그 역시 평범한 직장인일 따름이었다. 인터뷰 도중 엘리베이터 고장 신고가 접수되자 양해를 구하고 나가 능숙하게 일을 처리했고, 역 구내를 소개해 주며 플랫폼으로 걸어 내려가면서도 계단이나 난간 위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웠다. 간간이 그를 알아보는 시민들과 눈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사고 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 등 달라진 것이 많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예전처럼 똑같이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다리를 다쳤다는 것도, 사람들이 알아본다는 것도, 내가 누구를 구했다는 것도 모두 의식하면 힘들고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닥친 여러 일들을 자연스럽게 그저 일상처럼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했다.

그런 그에게도 요즘 걱정이 하나 생겼다. “역에 근무한 지 28년이 넘었는데 지난 IMF 금융위기 이후에 달려오는 열차에 투신하는 분들이 많았다. 혹시 이번 금융위기에도 그런 분들이 많아질까 걱정이 된다”는 것이었다. “자살바위에 올라갔다가도 담배 한 대 피우고 다시 내려오는 분들도 많아요. 막다른 길 같아도 슬기롭게 이겨내시고 희망의 끈, 생명의 끈을 함부로 놓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큰 좌절을 슬기롭게 이겨낸 김행균씨가 힘들어 하는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였다.

그는 남북한 철도가 머지않아 연결되고 중국, 만주,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까지 철도가 뻗어나갈 미래를 대비해 서울사이버대학의 중국통상학과에 등록해 강의를 듣고 있다고 했다. 장애인 또는 남을 구한 의인(義人)이 아닌 희망을 가지고 일상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법을 그는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사고 당시 상황을 다시 떠올리는 게 고통스러우신가요.
“영등포역에서 근무할 당시 제가 하던 업무가 승·하차 관리였습니다. 그날도 평소와 똑같았고 7월이라서 방학 전후로 어머니 손을 잡고 나온 어린이들이 많았어요. 시끄럽게 들어오는 디젤 열차와 달리 새마을호는 앞모양도 유선형으로 빠졌고 미끄러지듯 들어오거든요. 그래서 사고가 날 뻔한 것이었죠. 열차사고는 당사자는 물론이고 가족들도 참 힘듭니다. 많이 놀라기도 하고 상처도 크지요. 당시 우리 아이들도 중학생, 초등학생이었어요. 자식 키우는 부모 입장은 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7번의 수술과 재활 치료 과정이 험난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좌절을 이겨낸 힘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습니까.
“사실 7번까지는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됐는데 절단된 다리를 접합 수술을 했다가 다시 의족을 하게 되고 수술이 잘 안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어요. 지금 현재 왼쪽은 의족이고요 오른쪽은 발등 부분이 없어요. 그거 말고는 특별히 어려운 점이 없었습니다. 사실 철도 관련 업무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순직하기도 하고 다치기도 해요. 열차 사고가 나기도 하고 감전사고도 나죠. 그래서 어찌보면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려고 했어요. 내상을 입거나 뇌를 다친 것은 아니니까 마음의 안도는 했어요. 의술이 발달했으니까 잘 되면 ‘지팡이라도 짚고 의족이라도 달고 일어설 수 있겠구나’ 그런 희망을 잃지 않았죠.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오. 그런 끈을 놓지 않고 있으니까 ‘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다시 ‘복직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주위 분들의 격려도 도움이 됐고 가족들도 큰 힘이 됐어요.”

-아픈 본인이야 더 말 할 것도 없지만 갑자기 남편 또는 아빠의 사고를 지켜봐야 했던 가족들도 힘들었을 것 같아요.
“아픈 사람이야 누워 있으면 되지만 환자 뒷바라지 하고 한창 사춘기인 아들을 키우느라 아내가 고생을 했죠. 알게 모르게 저 때문에 가족들이 힘들었을 거예요. (그는 이후 한참동안 침묵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치료하는 과정에서 편안하게 해주려 하고 재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요. 사고 이후에는 저도 가족들이 충격을 받을까봐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아이들이 의족이나 장애를 의식하지 않고 아빠한테 ‘이것 좀 해줘’라며 이것저것 시키기도 해요. 아이들도 잘 이겨낸 것 같아요. 현재는 괜찮습니다.”

-2004년 8월 현업에 복귀하셨습니다. 어떤 심정이셨어요?
“매우 기뻤죠. 그러나 복직을 하더라도 제가 직원들에게 신세를 지면 안되잖아요. 제가 맡은 업무를 혼자 할 수 있도록 몸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걷는 것은 물론이고 속보가 가능해야했어요. 빨리 뛰지는 못하더라도.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공원에서 트랙을 돌고 훈련을 했지요. 지금은 등산도 가능합니다. 다만 예전과 다르게 산을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어떤 인터뷰를 보니까 ‘사고 이전과 이후가 변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그럴 때마다 ‘스스로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신다고 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아프다는 것을 인식하면 제가 더 피곤해요. 그래서 저는 항상 예전처럼 하려고 합니다. 불편하지 않으냐고 많이 물어보시지만 그것을 의식하면 제가 힘들 거 같아요. 언론에서도 ‘아름다운 철도원’ 등등 많이 써주셨는데 혹시 저를 알아보시는 분 있으면 인사드리고 그게 다 입니다. 예전과 똑같이요.”

-사고 이후에 여러 사회 활동을 하고 계시는 것으로 압니다. 적극적으로 사회 참여활동을 하시는 데에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김씨는 사고 이후 올림픽 성화봉송, 5㎞ 마라톤 완주, 야구 시구, 장기기증 서약, 다문화 가정 돕기 걷기대회, 킬리만자로 희망원정대 산행, 보육원 아이들과 정동진 기차여행 등 다양한 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제 성격이 적극적이지 않아요. 그런 행사들에도 제의가 들어와서 참여하게 된 것이지요. 그렇지만 마다하지 않을 뿐이에요. 어떨 때 제 스스로도 의지가 나약해질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 그런 경험을 함께 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아, 할 수 있다’라는 목표가 생기니까요. 특히 킬리만자로 원정대 같은 경우에는 저는 힘들 거 같아서 하지 않겠다고 했었어요. 그런데 주최 측에서 저보다 더 심한 장애를 가진 분들도 간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요. 그래서 저도 오히려 용기를 얻고 떠나봤습니다. 비록 정상을 100m 앞에 두고 포기했지만요. 그런 제 모습에서 다른 분들이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 없이 좋은 것이고요.”

-지금 경제가 침체되고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합니다. 어떤 말씀을 해주시고 싶은가요.
“제가 28년째 철도역에 근무 중입니다. IMF 금융위기가 지나고 나서 철로에 투신하시는 분들이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당시 시흥역 부역장으로 있었는데 자살사고가 상당히 많았어요. 마음이 아팠죠. ‘오죽했으면 저런 선택을 했겠나’ 싶더라고요. 올해와 내년이 참 걱정됩니다. 살다보면 참 답이 안나오는 경우가 있어요. 힘들다고 생각하면 힘든 것밖에 안보이는데 이번 역경만 슬기롭게 헤쳐나가면 길은 보일 거예요. 그래도 ‘다시 한번’ 말입니다. 자살바위에 올라갔다가도 담배 한 대 피우고 다시 마음을 고쳐 먹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그런 생각도 해보시고. 희망의 끈, 생명의 끈을 함부로 놓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돌아가신 분은 물론이고 남아있는 가족도 힘드니까요.”
김행균씨는 이런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어떨 때 술 한잔 드신 분들이 여기 역무실에 오십니다. 사회에서 소외되고 직장에서 힘들고 하소연 할 곳이 없으시니까요. 그럼 함께 차 한 잔 하고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언제든지 오세요.” 역곡역 역무실에 들르면 하루에 꼭 한 병은 마셔야 한다며 뚜껑까지 따서 건네주던 비타민 음료처럼 상큼한 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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