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윤석화 “부끄러움 남아있지만 맘은 자유로워졌어요”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11.13 09:45:28
  • 조회: 11395
ㆍ학력위조 파문 1년2개월 다시 무대 복귀

윤석화가 “이화여대를 다니지 않았다”고 고백했을 때 그의 나이는 쉰둘이었다. 연극배우이면서 공연 제작자로, 또 월간 ‘객석’의 발행인이자 ‘설치극장 정미소’의 대표로 1인4역을 해내며 공연예술계에서 일가를 이룬 그였다. 이제 한숨 돌리고 잠시 편안해져도 좋을 나이에 그는 ‘학력 위조’라는 불명예를 안고 도망치듯 홍콩으로 떠났다.

모습을 감춘 지 1년2개월여 만에 윤석화가 배우로 돌아왔다. 그는 관객 앞에 속죄하는 심정으로 내면을 비우고 더 낮아지기로 했다. 그래서 선택한 복귀작이 1983년 초연했던 <신의 아그네스>다. 12월6일 첫 공연을 앞두고 연습 중인 윤석화를 지난달 31일 서울 대학로에 있는 ‘정미소’에서 만났다. 그는 “당시엔 저의 상처를 끄집어내서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 참 힘들었다”며 “사건이 지나가고 난 뒤 부끄러움은 남아있지만 마음은 한결 자유로워졌다”고 말했다. 배우로 복귀하는 일에 대해서는 “관객들께서 제 연극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연극 자체로만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몇 년 만에 배우로 무대에 서는 겁니까.
“3년. <영영이별 영 이별> 후에 정극으로 이게 3년 만이죠.”
-지난해 학력 위조 사건 이후 1년2개월여 만에 대중 앞에 다시 섰습니다. 컴백을 결심했을 때는 언제 나가면 좋을지 시기를 살폈을텐데요. ‘지금쯤이면 대중이 나를 받아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까.
“그런 건 없어요. 작품을 몇가지 놓고 고민하고 생각만 해요. 그러다보면 가장 좋은 때를 만날 것이고 그 상황에서 최선의 작품을 선택할 것이고. 그렇게 모든 것을 공간과 시간에 내맡기던 중에 이렇게 됐어요.”

-복귀작 <신의 아그네스>는 83년 직접 기획해 주연 ‘아그네스’ 역할을 연기했던 작품입니다. 이번에는 ‘닥터 리빙스턴’ 역할인데요. 아무래도 나이 어린 아그네스 역은 부담스러웠던 걸까요.
“물론 연극이라는 게 영화나 텔레비전과 달리 나이를 떼어놓는 메타포가 있습니다. 제가 오리지널 아그네스였고 무엇보다 이 작품을 제가 기획·번역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나이에 아그네스를 한다면 정말 우스꽝스러운 일이죠. 언젠가는 닥터를 해보는 게 꿈이었어요. 그렇지만 제가 닥터를 하고 싶다고 느꼈을 때는 이뤄지지 않았고요. 어떤 면에서는 마음 속에서 닥터 역할을 떠나보냈습니다. 나이를 점점 먹으니까. 2006년은 제가 준비했던 안식년이고 또 지난해는 본의 아니게 얻은 안식년이었는데요. 그 시간을 통해 제가 했던 연기 생활, 작품들을 돌아보면서 <신의 아그네스>가 정말 좋은 작품이라는 점을 새록새록 느꼈습니다. 이 작품을 관객들한테 제대로 한번 보이고 싶었어요. 나이를 먹었지만 아직 닥터는 할 수 있으니까.”

-하루 연습량이 얼마나 됩니까.
“요새 보통 6시간씩 하고 있어요. 그날그날 연습한 것을 녹음해서 조연출이 컴퓨터로 보내주기 때문에 집에 가서 최소한 2시간은 리뷰를 하게 돼요. 처음엔 그게 굉장히 끔찍했는데 ‘이것도 뛰어넘어보자’ 그런 생각을 하죠.”

-‘닥터 리빙스턴’은 대사를 하며 담배를 피워야 하는 역할입니다. 이전에 담배를 끊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네, 뮤지컬 <토요일밤의 열기>를 할 때 끊었어요. 담배를 끊을 수 있으면 이 역할(20대 여성 ‘아네트’역)을 할 수 있겠다 해서 끊었다가 그 역할 끝났으니까 다시 피우죠.(웃음) 사실 건강 때문에, 나이가 만만치 않으니까 ‘담배를 한번 끊어볼까’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이게 담배 피우는 역할이네. 1막이 1시간20분 정도인데 그동안 7대를 피워요. 담배라는 게 이 여자의 심리상태 혹은 극적인 긴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연습을 통해 계산을 하는 거죠. 여기서 담배를 끄는 게 좋을까, 여기서는 훅 뿜어내야 좋을까. 어떤 날은 연습하고 나면 딱 쓰러지겠더라고요. 사람들이 그런 얘기도 해요. 대충 피워라. 그런데 이 작품에서 담배는 제일 중요한 오브제입니다. 피우는 흉내만 낸다고 해서 해결될 건 아니죠. 그래서 요새는 담배 양을 늘려보고 있어요. 연습을 통해서 목청을 늘려놓듯이. 그래서 이제 담배가 맛이 없어요.(웃음)”

-학력 위조 사건에 대해 얘기해볼까요. 지난해 8월14일 홈페이지에 ‘이화여대를 다닌 적이 없다’고 고백하고 이틀 뒤인 16일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홍콩으로 출국했습니다. 그 이후 서울에 다시 돌아온 게 언제입니까.
“그 사건이 있은 후에 한 3개월 서울에 안 왔어요. 학력 문제는 제 개인적인 일이었어요. 제가 그것으로 무슨 직장을 얻었다든지, 사문서를 위조했다든지 그런 건 전혀 아니잖아요. 물론 놀란 분들은 놀라고 섭섭한 분, 속상한 분, 욕한 분들이 있었겠지만 저는 그렇게까지 난리가 날 줄은 진짜 몰랐어요. 저는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던 일과 상관없이 다일공동체에서 하는 영성수련에 들어갔고 그때 하나님이 저한테 용기를 주셨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게 세상의 눈으로 보면 그냥 불속으로 뛰어든 것이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제가 굉장히 무모해요. 앞뒤 계산이 없어요. 아픔을 감당하기 힘들어서 용기를 못냈던 건데. 그 상처를 이 나이 먹어서 스스로 꺼내 본다는 게 참 힘들더라고요. 그러나 그건 죽어서도 한이 될 것 같았어요. 죽기 전에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만은 내가 날 용서해야 되겠고…. 그렇게까지 파문이 클 줄은 몰랐어요. 그게 현실이고 그게 제 모습이라면 그것도 제가 수용해야죠. 때로는 ‘그래, 내 청춘에서 지우고 싶은 기억이지만 누군들 털어서 먼지 하나 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위안을 갖기도 해요. 그냥 그렇게 살아요. 살아야 하니까.”

-학력 위조 사실을 밝힌 글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고백한다’고 했습니다. 사건이 지나가고 난 지금은 마음이 좀 홀가분해졌습니까.
“부끄러움의 흔적까지 없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저에게 늘 교훈으로 남아있겠죠. 그렇지만 많이 자유로워졌어요.”

-하지만 무대를 떠나는 날까지 ‘학력 위조를 한 배우’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닐텐데요.
“상관없어요. 엄밀히 말해서 (학력은) 제 연극 인생에 아무런 상관이 없거든요. 언론이 윤석화가 이화여대를 중퇴했기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저에게 더 많은 인센티브를 주었을까요? 혹은 관객이 제가 이화여대를 중퇴했기 때문에 더 많이 보러왔을까요? 글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이화여대에 다니지 않았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으로 세상에서 받은 혜택보다는 제 상처가 더 커요. 저는 어차피 무슨 스타가 되고자하는 꿈이 요만큼도 없었어요. 단지 연극이 좋아서 연극을 했을 뿐이고.”

-힘든 시기를 넘길 때 아이들이 큰 의지가 됐을 것 같습니다. 2003년 아들 수민이, 2007년 딸 수화를 공개입양했는데요. 두 아이 모두 서울에 있습니까.
“수민이는 아직 학교 갈 나이는 아닌데 홍콩에서 제일 좋다는 초등학교에 뽑혔어요. 일단 홍콩에서 아빠랑 살면서 예비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애가 없으면 너무 허전할 것 같아서 수화는 제가 데리고 있고.”

-가족이 서울과 홍콩에서 따로 살며 생이별을 하고 있네요.
“남편이 이제 한국으로 와야겠죠. 저도 일하면서 홍콩에 왔다갔다 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나이가 나이니만큼. 나름대로 가정에 헌신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남편이 저를 위해 헌신해야 할 때가 아닌가, 이런 생각도 좀 하고요. 이젠 그 사람이 한국으로 오든지, 한국으로 안 온다고 해도 이제는 자기가 왔다갔다 하고 내가 왔다갔다 하지 않게끔. 또 우리 수민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기 전에 한국에서 최소한 1~2년은 초등학교를 다니게 하고 싶거든요. 그래야 한글이 완벽해지니까. 제가 아이를 위해 조금 더 하려면 이제는 순서가 그렇게 바뀌어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어요.”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글수정
  • 글삭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