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아/교육] 상실의 역사, 상속된 상처 상실의 상속 / 키란 데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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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11.07 08:4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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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 루시디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루시디의 문제의식이 젊은 세대, 여성에게서 어떻게 발화되는지 관심있게 지켜볼 만하다. 인도 출신 작가인 키란 데사이(37)는 35세때인 2006년 제38회 맨부커상을 최연소로 수상해 화제가 된 인물. 노벨문학상·공쿠르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리는 맨부커상은 1년에 한번 영연방의 작가를 대상으로 시상한다. 40년을 맞은 올해 ‘부커 오브 부커즈’(최고의 부커상)를 루시디가 수상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영국의 식민지였던 지역의 작가들이 만들어내는 탈식민의 서사가 최근 들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올해 <화이트 타이거>란 작품으로 수상한 아디가 역시 인도 출신 작가다.

키란 데사이는 ‘인도의 제인 오스틴’이라고 불리는 작가 아니타 데사이의 딸로, 인도에서 성장한 뒤 영국을 거쳐 미 컬럼비아대 문예창작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재원이다. 첫 장편 <구아바>에 이은 8년 만에 내놓은 두번째 소설에서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영국의 식민통치를 겪은 인도인이 어떤 모습으로 왜곡되는지, 그리고 식민통치가 끝난 현대세계에서 미국이 비서구인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피식민지인의 저항이라는 전통적인 내러티브를 새로운 형태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작품이란 평가를 받았다.

소설은 히말라야 산중의 작은 도시인 칼림퐁과 뉴욕의 할렘가를 오가며 진행된다. 칼림퐁에 위치한 집 ‘초오유’에는 은퇴한 판사 제무바이와 부모를 잃고 외할아버지 손에 맡겨진 열여섯살난 소녀 사이, 힌두어밖에 할 줄 모르는 요리사, 제무바이의 애견 무트가 살고 있다.

안개가 짙은 오후, 사이는 자신이 ‘애인’이라고 부르는 수학 가정교사 지안을 기다린다. 그러나 지안 대신 한 무리의 청소년들이 판사의 총을 빼앗기 위해 집을 덮친다. 한편 뉴욕의 핫도그가게에서는 요리사의 아들인 비주가 불법이주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저임금 일자리를 찾아 전전하는 그는 불안에 떨면서 ‘그린카드’를 꿈꾼다.

소설은 또 과거로 돌아간다. 사이의 어린시절, 수도원 부설학교의 기억과 모스크바에서 죽은 부모의 이야기가 등장하는가 하면, 할아버지 제무바이의 영국 유학시절도 나온다. ‘공부야말로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이라고 믿었던 엘리트인 그는 사실 영국에서 지독한 열등감에 시달렸으며 영국인에 대한 부러움이 극에 달해 인도인을 극단적으로 싫어하게 됐다. “그는 자신의 피부색이 이상하고, 자신의 말투가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웃는 법을 잊어버렸고, 입술을 들어 간신히 미소를 지을 수 있을 뿐이었다.”(77쪽) 그러나 그로 인해 그는 나약해졌다. 제무바이의 요리사 역시 인도가 아닌 ‘다른 곳’을 동경한다. 아들 비주를 미국으로 보낸 걸 자랑스럽게 여기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는 ‘미국보다 인도에 먼저 아침이 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거의 다 서양과의 만남으로부터 상처와 열등감을 얻었다. 식민지를 겪은 기성세대는 ‘제 영혼을 파멸시키면서 배운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도인들’로, 쓸모없는 인간이 됐으며 지안 같은 젊은이들은 소수민족의 독립운동에 가담해 자신의 분노와 좌절감을 터트린다. 이를 놓고 작가는 “해묵은 증오는 더 순수하다. 과거의 슬픔은 이미 사라지고, 분노만 남아서 증류되고 해방된다”고 표현한다.
결국 비주는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먹으며 “아시아의 새로운 시장에서 큰돈을 벌었다”고 기뻐하는 사업가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순수하고 깨끗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으로 고향행을 택한다.

그러나 그곳은 평화와 안식 대신 분규로 시끄러운 곳이다. 제국주의에서 경제적 세계화까지 넓은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소설의 결론부에서 작가는 사이의 생각을 통해 “인생에는 하나의 이야기밖에 없고, 그 이야기는 오로지 자신에게만 속해 있고, 자신도 이제 곧 하찮은 행복을 만들어 그 안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는 두 번 다시 생각할 수 없다”는 음울한 결론을 내린다. 김석희 옮김.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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