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참 곱게 늙은 절 가을이 와 절하네” 구례 화엄사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10.24 09:26:52
  • 조회: 10714
늙고 큰 절의 미덕은 작은 것도 아름답다는 것이다. 근래에 불사를 일으켜 법당을 증축한 절도 꽤 많지만 막상 가서 보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경우가 많다. 규모만 앞세우다보니 자연에 어울리지 않게 톡톡 튀는 절도 있고, 중생을 주눅들게 하는 절도 있다. 이런 절에선 여행자도 마음이 편치 않다.

구례 지리산 화엄사에 다녀왔다. 화엄사는 544년 백제 성왕때 지은 고찰이다. 창건 이후 1500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법당도 여러번 고쳐세웠을 것이고, 탑비도 늘어났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옛 당우들이나 탑비는 서로 모나지 않게 잘 어울린다. 중뿔난 사람처럼 어색하게 튀는 것이 없다. 절은 커도 화려하다기보다는 검박하다. 늙은 고승의 깁고 기운 누더기옷 같다.

화엄사 마당 한 귀퉁이에서는 건축 공사가 한창이었다. 어수선했다. 때를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공사판을 지나쳐 보제루의 울퉁불퉁한 받침기둥을 보고서야 마음이 풀어졌다. 보제루는 대웅전 앞마당에 있는 강당이다. 받침 기둥은 둥글둥글 잘 깎아놓지 않고 원목을 그대로 썼다. 목재와 목재의 이음새도 모든 기둥이 다 똑같지 않았다. 목재에 맞춰 제각각 달랐다. 만약 톱밥을 갈아 압축해 만든 MDF처럼 공장에서 생산된 동글동글한 기둥에 볼트와 너트로 조여놓았다면 눈길을 받지 못할 게 분명하다. 규격화되지 않아서 자연스럽다.

처음 명산대찰을 찾게 될 때는 규모와 역사에 눈이 휘둥그레지지만 나중에는 작고 소박한 것들에 눈길을 주게 된다. 화엄사가 그랬다. 작은 것에 마음이 갔다. 보제루에선 템플스테이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이중 가장 아름다운 사진은 사람이 찍은 사진이 아니라 나무 창 밖으로 보이는 나무들이다. 창이 사진틀이라고 보면 된다. 그 너머 기와법당 앞 나무는 단풍이 들어가고 있다. 보제루 자체가 미술관이자 작품인 셈이다. 먼 옛날 보제루를 지었던 목수들은 창틀을 화폭 삼아 산도 담고, 나무도 담았던 모양이다. 천장의 서까래도 자연목을 써서 휘어져있다.

화엄사에서 가장 위엄있는 법당은 대웅전이 아니라 각황전이다. 각황전은 2층 누각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법당이다. 큰 법당이지만 단청은 일부만 했다. 그나마도 희미하다. 그래서 더 좋다. 가끔 진하게 새단청을 해놓은 옛 절집을 볼 때가 있다. 오방색으로 치장한 단청을 볼 때마다 감동보다는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마치 꼬부랑 할머니에게 신부 화장을 해놓은 것 같이 어색하다. 지나치면 경박해 보인다. 그 먼 옛날 꽃과 열매를 통해 색을 얻었던 자연 염색이 페인트처럼 저리 강렬했을까 의구심이 들 때도 있었다. 진한 단청보다 ‘민낯의 처마’가 외려 감동적일 때가 많다.
각황전의 받침돌도 수수했다. 받침돌은 잘 갈아만든 대리석 바닥처럼 반들반들하지 않았다. 자연석을 그대로 놓아 울퉁불퉁했다. 나무 기둥이 바윗돌의 접점에 맞춰 올록볼록하다. 바위로 쌓은 축대도 그렇다. 큰 돌의 틈새를 주먹만한 작은 돌로 끼워 맞췄다. 아무 장식도 하지 않은 녹슨 문고리는 자세히 들여다보니 꽤 디자인적이다.

화엄사에선 이렇게 작은 것들이 아름답다. 나무 기둥들이 의장대 병사들처럼 각이 딱딱 들어맞고, 빈틈 하나 없었다면 위엄은 앞세울 수 있겠지만 정감을 느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실 위엄과 법도로 사람의 마음까지는 굴복시키진 못한다. 포용과 자비심이 마음의 자물통을 따는 법이다. 화엄사의 법당에선 이런 포용심을 찾을 수 있다. 큰 돌과 작은 돌이 법당을 받치고, 비뚤어진 기둥이 저마다 처마를 이고 있는 모습이 마치 인간 세상하고 비슷하다. 잘난 것뿐 아니라 보잘 것 없는 미물들이 제 이름표를 달고 부처를 지키고 있는 셈이다.

가끔 불사란 이름으로 옛절에 어울리지 않는 번듯한 건물들이 마구잡이로 들어선 것을 볼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재개발 문화’가 심산고찰에까지 번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 사학자 박한제 교수는 <제국으로 가는 긴 여정>이란 책에서 “불상 조성, 사원 건립, 범종 주조를 불사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불사란 부처가 중생을 구제하려고 베푸는 자비활동이다. 사찰이나 불상 세우기만으로 굳어져 버린 불사문화는 분명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라고 썼다.

여행길잡이

●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전주까지 간다. 전주IC에서 빠져나와 남원방향으로 간다. 춘향터널을 지나 우측 순천행 19번 산업국도를 타면 된다. 구례IC에서 19번 국도로 진입. 구례읍 못미쳐 화엄사 이정표가 보인다. 문화재관람료 3000원. 화엄사 (061)782-7600
● 25일 화엄사에서 화엄제가 열린다. 세계적인 영성음악가들이 모인 영성음악제와 학술제 등이 이어진다.
● 지리산 단풍은 성삼재까지 내려왔다. 피아골 절정기는 10월말로 예상하고 있다. 지리산 남부관리사무소 (061)783-9100
● 여행상품 중 우리테마투어(02-733-0882)의 지리산 일주 단풍트레킹 상품이 눈에 띈다. 함양 칠선계곡, 남원 뱀사골, 구례 피아골, 산청 대원사계곡을 둘러본다. 1박2일 코스로 18일, 23일, 25일, 31일 출발. 11만9000원.

화엄사 입구 복원센터서 무료관람

<배낭여행자의 바이블>이라고 불리는 여행안내서 론리 플래닛은 얼마전 멸종위기 동물을 볼 수 있는 지구촌 생태관광지 12곳을 선정했다. 론리 플래닛은 이 중 지리산을 10월 가볼 만한 곳으로 꼽았다. 선정 이유를 늦가을 지리산의 환상적 단풍과 멸종 위기에 처한 반달가슴곰이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실 여행자들이 산에서 반달가슴곰을 만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화엄사 입구 멸종위기종 복원센터에선 반달가슴곰을 볼 수 있다. 50년 전만해도 지리산에는 반달곰이 100마리 이상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초반에는 개체수가 5마리 정도로 준 것으로 파악됐다. 그대로 둘 경우 근친교배로 자연도퇴되거나 멸종될 가능성이 높아 정부가 반달곰 복원사업에 뛰어들게 된 것이다. 복원센터는 지금까지 27마리의 반달곰을 방사했다. 현재 지리산에는 16마리 정도가 생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복원센터에선 곰에 매달아 놓은 발신기를 통해 곰의 위치와 생태를 연구하고 있다.
“성공적으로 적응한 것으로 보이는 곰도 있지만 올무에 걸려있다가 구조된 곰도 3마리나 됩니다. 안타깝게도 사냥꾼에게 포획된 것으로 보이는 곰도 있죠. 한 번 사람이 먹이를 주면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낼 수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 회수된 곰을 통해 반달곰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죠.”
지형우 대외협력팀장은 복원센터에는 현재 8마리가 있다고 했다. 현장에선 곰방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왜 복원이 시급한지에 대해 설명해준다.
“최소 생존존속 개체수는 30마리입니다. 안전 개체수는 100마리입니다. 2012년까지 방사를 통해 개체수를 늘려야지요. 곰이 늘어나면 멧돼지 피해가 줄어들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곰이 동면 준비에 들어가기 전인 11월말까지 오전 10시30분, 오후 2시30분, 오후 4시 등 하루 세차례 일반인들도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무료다. 종복원센터(061)783-9120.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글수정
  • 글삭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