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돈벌이 ‘농업’ 아닌나눔의 ‘農’으로 자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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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10.20 09: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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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경기 시흥 ‘연두농장’

부쩍 높아진 하늘과 끝을 맞댄 푸른 배추밭. 잎을 활짝 벌린 배추들이 꽃처럼 피었다. 농장 한 편의 탁자에서는 갓 따낸 상추·치커리 등 쌈채를 포장하는 손길들이 분주하다. 지난달 26일 경기 시흥시 계수동 ‘연두농장’의 아침이다.

변현단 대표(43·여)는 잡초를 솎아내는 ‘풀작업’을 하기 위해 배추밭으로 나섰다. 개량한복에 흰 고무신 차림. 능숙하게 밭 이리저리를 살피는 모양새가 영락없는 농사꾼이다. “11월쯤 추수할 김장용 90일 배추들이에요. 크기가 크진 않아도 속이 꽉 차서 맛이 있을 겁니다. 저 쪽 감자는 퍼져서 영 못 쓰게 됐어요.”

그가 연두농장을 연 것은 2005년. 보건복지부로부터 비닐하우스 3동과 약 6600㎡(2000평)의 토지, 이곳에서 일할 기초생활보장수급자들의 임금을 지원받아 ‘자활영농사업단’을 꾸렸다. 10명의 기초생활보장수급 여성들과 시작한 농장은 확장을 거듭했다. 물왕동에 4950㎡(1500평)짜리, 연성동에 2640㎡(800평)짜리 농장이 생겨 지금은 총 3개 농장에서 모두 19명의 기초생활수급대상자들이 일하고 있다.
“나도 농사는 처음이었고, 직원으로 온 사람 대부분이 호미를 쥐어본 적도 없는 도시 사람들이었죠. 다 같이 낮에는 땅을 갈고 밤에는 공부하며 일했어요. 그런데 ‘선 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가뭄이 심했던 그해, 10년 농사꾼도 다 망한 고추 농사가 우리 농장에서만 대풍작이었어요.”

노동운동가·무역회사 회사원·인터넷신문 편집국장 …. 다양한 이력을 뒤로 하고 그가 낫과 호미를 든 까닭은 무엇일까.
“도시에서 노동운동을 하면서 늘 생태·순환·자유에 목말라했어요. 돈을 벌고 쓰고 즐기는 메커니즘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노동운동 역시 ‘돈’과 ‘소유’에 천착해 있는 것이 마뜩찮았죠. 돈이 점점 정신적 불행지수가 되는 것 같고…. 그러던 중 2004년 ‘농’(農)에, 소위 말해서 ‘꽂혔습니다’. 직접 생산하고 최소한의 화폐만으로 행복하게 사는 그런 삶을 살고 싶었어요.”

그는 “농업이 아닌 농(農)”을 거듭 강조했다. “ ‘농업’은 농사일까지도 하나의 산업으로 바라보는 것”이라며 ‘농’과 구분한다.
“해답은 ‘농’이라는 사회문화에 있습니다. 소비보다 생산에, 경쟁보다 나눔에 초점을 맞춘 소박한 생활이 농이죠. 저는 자유를 인간 본성과 닿은 농에서 찾아요. 우리 농촌도 이미 도시를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구조에 포섭돼 가고 있어요. 친환경도 유기농도, 돈벌이를 위한 것으로 전락하고 돈으로 도시와 모든 걸 똑같이 소비하려 합니다. 농의 정신은 떠나고 ‘농업’만 남아선 안돼요. 농으로 돌아가야죠.”

혼자가 아니라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들과 함께 귀농한 것 역시 ‘나누는 공동체로 돌아가자’는 생각에서다. 연두농장의 자활은 돈벌이 경쟁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한 것이 아니다.
‘농’에 가치를 둔 자립이 목표다. 농장에서 가장 중요한 약속은 ‘내 이익을 위해 남을 해치지 않는 것’이고, 일상에서도 ‘적게 쓰고 자연과 순환하며 살기’를 실천한다.

연두농장 1년차 정인숙씨(38·여)는 “집에 가서도 며칠에 한 번은 전깃불을 안 켜고 가로등 불로 생활하고 있는데 다른 식구들이 답답한가 보더라”면서 “개인적으로는 시골 빨래터에 모여앉아 함께 빨래 방망이 두들기던 그런 시절처럼 다시 살고 싶다”고 활짝 웃었다.
연두농장에서는 화학비료와 비닐을 사용하지 않는다. 한방찌꺼기와 쌀겨를 발효한 퇴비를 주고, 쇠비름 액비·돼지뼈 골분·담뱃물 등 천연농약을 이용한다.

남은 맥주를 모아 달팽이 잡는 데 쓰기도 한다. 농기계 사용도 최소화했다. 겨울에는 병충학·생리학·잡초 등에 관한 책을 읽고 세미나를 통해 자연의 원리부터 배워나간다. ‘승자독식 사회’에서 밀려났던 이들은 연두농장에서 제2의 인생을 찾고 있다. 1년6개월째 연두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조창석씨(48)는 스스로 “180도 달라졌다”고 말한다. 그는 2002년 은행 과장직을 버리고 뛰어든 건설사업에서 28억원의 빚을 지고 도산했다.

이후 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 학교 청소용역을 했다. 하지만 끝내 일확천금의 꿈을 놓기 힘들었다. ‘다른 사업을 준비하기 전에 시간이나 벌자’는 마음으로 2006년 11월 연두농장을 찾았다. “제가 돌본 닭들이 낳은 알을 처음으로 부화시킨 날이었어요. 달걀 28개를 밤새 지키는데 19마리가 알을 깨고 나왔죠. 그때 받은 생명과 자연, 노동에 대한 감동이 삶을 바꾸더군요. 그후로 계란은 입에도 못 대고 있기도 하고요.”

조씨는 “어떻게 돈을 쓸 것인지 모르는 채로 무작정 돈을 위해 살아왔다”면서 “지금 비록 일당 2만8000원이지만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내 손으로 흙을 일구고 최소한으로 쓰니 부족함이 없다”고 말했다. 남편의 실직으로 가장이 돼 어쩔 수 없이 연두농장에 온 신정숙씨(35·여)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뽑아서 버리는 ‘잡초’로 만드는 요리를 연구하는 일이다. 한식요리 자격증도 준비 중이다.

“4년 전에 ‘사는 게 정말 너무나 힘들구나’하는 마음으로 농장에 왔어요. 마음도 각박한데 공부에 시험까지 보게 하니 변 대표가 악마같았죠. 지금은 공부도 일도 재밌어요. 식당을 차려 내 돈을 벌겠다, 이런 생각보다 연두농장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내가 만든 ‘잡초 요리’를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앞섭니다.”

계수동 연두농장은 내년 초 보건복지부 지원을 받지 않는 ‘자립 공동체’로 독립할 계획이다. 변 대표는 “자활센터 중 대안적 가치를 갖는 공동체가 자립하는 것은 처음일 것”이라며 “연두 공동체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바이러스가 돼서 농의 가치를 알리고 실천하는 삶을 살도록 지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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