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아/교육] 국영수보다 살림교육 “노는 게 수업이래요” ㆍ변산공동체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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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10.17 09: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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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담집 짓기도 보리농사도 아이들에겐 신나는 놀이로 스스로 ‘더불어 삶’ 깨우쳐”
‘경쟁, 공해, 스트레스, 짜증, 욕심, 컴퓨터, 멜라민….’ 숨이 턱 막히는 생각들이다. 이런 건 어떨까. ‘자유, 송아지, 즐거움, 태평, 산바람, 토담집, 주먹밥….’ 전북 부안 변산반도국립공원 한 자락에 그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흙 한 평만 있으면 세상살이 걱정 없이 사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심사가 편할 날이 없는 세상. 그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다는 설렘이 변산행 국도길을 재촉했다.

변산면에 도착해 전화를 통해 알려준 대로 서해할인마트를 찾았다. 선물용 화장지를 주문하며 “변산공동체학교는 어디로 갑니까?”라고 물었다. 40대 초반이 됨직해 보이는 주인은 반복되는 질문에 이골이 난 듯 말했다. “여기 초등학교 옆길을 쭉 따라가면 산 밑에 보일거요.”
변변한 푯말 하나 보이지 않았다. 촌로들에게 물어물어 십여리를 들어가자 제법 번듯해 보이는 2층 건물과 옹기종기 주변을 둘러싼 토담집들이 눈에 들어 온다.

변산공동체학교 김희정 교장(40)은 감식초 담그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방인의 방문을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에 심통이 오른다. 때깔나지 않은 개량 한복에 덥수룩한 머리칼, 구릿빛 피부가 영락없는 촌 농부다.
그는 13년 전 도시를 버리고 이곳에 왔다. 27세의 젊은 나이였다. 혈기왕성한 총각이 왜 산골로 찾아들었을까.

“대학 스승인 윤구병 교수님과 이곳을 일궜지요. 스승님은 늘 아이들을 제대로 기를 수 있는 길을 고민했습니다. 어른들의 문제이기도 했죠. 아이와 어른들이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도시를 떠나야 한다고 결론냈지요.”

평생이 보장되는 국립대 교수였던 윤구병 선생은 자신의 손에 움켜쥘 수 있었던 것들을 모두 놓아 버렸다. 홀연히 사표를 던진 후 바람처럼 전국을 훑다가 무릎을 치고 1995년 안착한 곳이 여기다. 사재를 털어 농지를 매입한 뒤 이곳에서만 10년 넘게 농부로 살아온 그는 지난 6월 ‘발길 닿는 대로 살고 싶다’며 어디론가 다시 떠나버렸다.
흙이 좋고 스승이 좋아 내려온 김씨는 이때부터 공동체 학교 ‘지킴이’가 됐다. 아내 박선희씨(38)도 여기서 만났다. 아내 역시 도시를 버리고 농사를 지어보겠다며 공동체 학교로 들어온 처지. 그들의 운명적 만남은 아들 나무(9)와 함께하고 있었다.

적지 않은 세월 동안 변산공동체 학교를 거쳐간 이는 많다. 문턱은 없다. 어느 누구든 농사를 지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 식구가 될 수 있다. 돈도 받지 않는다. 그러다가 싫으면 그만이다. 떠나는 것도 자유다. 자급자족의 지혜를 터득한 이들은 주변 마을에 자연스럽게 귀농했다. 공동체학교의 성공은 귀농으로 연결되는 셈이다.
현재 이 학교에 둥지를 튼 사람들은 20여명. 초등부 8명과 중등부 5명, 고등부 2명의 학생들이 있다. 선생님 2명과 고등부를 졸업한 후 아예 공동체 식구로 눌러 앉은 박아루씨(19)도 식구다.

그들의 생활은 ‘원시 부족’을 연상시킨다. 흔한 텔레비전과 컴퓨터 하나 없다. 하지만 자유분방함 속에 질서와 규칙이 있다. 여름철 기상시간은 새벽 5시. 더워서 아침 일을 한 뒤 쉬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동체는 농사 외에 된장, 고추장, 간장, 효소, 젓갈 등을 무공해로 만들어 수익원으로 삼는다. 함께 일해 번 돈은 공평하게 나눠 운영 경비로 쓴다.
초등학교 아이들의 생활은 ‘노는 것’에 충실하다. 밥 때 맞춰 일어나면 되고 싸주는 도시락을 들고 학교로 간다. 아이들의 교실은 귀농한 학부모들의 집이다. 요일을 정해 부모들이 선생님이 된다. 역사와 수학 등 기본교육만 마치면 도시락도 까먹고 어른들 일하는 것도 구경하면서 논다.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놔두는 게 초등학생들의 생활지도다.

“좋은 학교 보내는 것이 가르침의 목표가 아닙니다. 스스로 앞가림을 하고 남들과, 자연과 더불어 해치지 않고 사는 마음씨를 길러내는 게 중요하지요. 물론 아이들이 필요로 하면 검정고시를 치르고 대학도 가게 하지만 그건 전적으로 강제가 아닌 아이들의 결심에 의한 것이지요.”

중·고등부 학생들은 역사, 수학, 과학, 영어, 산처럼 물처럼(철학과목을 이렇게 불렀다) 등의 기본교육을 받지만 더 재미있어 하는 것은 살림교육이다. 목공기술과 염색, 바느질도 배운다. 산에서 더덕이나 고사리를 캐고, 머루를 따는 일도 일과 중 하나다. 요즘엔 감 주우러 다니는 일이 흥겹다. 할당된 농지에서 직접 씨를 뿌리고 수확의 기쁨도 맛본다. 올해 아이들은 보리농사를 지었다. 토지임대비용과 퇴비, 기계비용 등을 뺀 수익이 100만원이나 됐다. 이 돈은 공동명의의 통장에 저축했다.

격포에 사는 박형진씨(51)는 자식 넷을 모두 공동체 학교에 넣었다. 막내 딸은 제도권 중학교에 다녔지만 사는 모습이 다른 애들과 차이가 났다. 박씨는 막내 딸을 중학교에서 빼내 이곳으로 보냈다. 그는 “모든 것을 시켜야 따라하고 스스로 찾아서 하지 못했기 때문에 공동체 학교에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어른들과 힘을 합쳐 지은 토담집 기숙사에서 모기장을 치고 생활한다. 최근 완성된 2층짜리 조립식 도서관 건물을 제외한 도자기동과 목공방, 메주 숙성실, 살림집 등도 모두 토담집이다. 아이들은 흙벽돌 찍는 일이 신난다. 지난해 고사리들이 찍어낸 황토흙벽돌만 4000장이 넘었다.
“도시아이들은 일을 겁냅니다. 그래서 처음에 이곳에 오면 2주간 그냥 먹고 자면서 지내보라고 합니다. 그 아이들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죠. 남는 아이들은 적응을 하게 되고 건강과 자신감을 찾습니다.”

변산공동체학교가 꿈꾸는 목표는 무엇일까. 답은 간결했다. ‘제 앞가림을 하며 살 수 있는 능력 기르기’다. 더 보태면 ‘함께 어우러져 사는 삶’이다. 그런 희망을 일궈가는 터는 흙 냄새와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시골이어야 했다. 김 교장은 다 버리고 살아도 시골에는 흙이 있고 정녕 아름다운 교감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동체학교는 귀농의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겁니다. 몰라서 귀농을 못하는 분들에게는 빈손으로 와서 농촌생활을 익혀 자리잡도록 해야하고 아이들에게도 먹고, 자고, 입는 정도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줘야 합니다. 이 아이들이 티 없는 햇살과 공기를 마시며 자란 뒤 마을 공동체에 남아 튼튼한 울타리가 돼 주길 바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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